브레인맨, 천국을 만나다
다니엘 타멧 지음, 배도희 옮김 / 북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기억력이 좋지 못하다. 나는 내 경험과 닿아 있지 못한 지식과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내가 기억하는 건 언제나 전체가 아닌 단편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에게, 내 심장에, 깊은 울림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면, 내 피부로 느껴지는 무엇이 아니라면, 그것은 무심코 흘러가버릴 뿐 저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온몸과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그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종류의 사람들을 내심 질투하기도, 부러워하기도, 미워하기도 한다. 적당한 때에 적당한 정보와 지식을 늘어놓는 그들의 능력이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날 때도 있다. 지적 처리 능력은 부족하나 지적 호기심만은 왕성하기에.

그런데 브레인맨은 나와 다르다. 그는 서번트 증후군을 갖고 있는 천재다. 나는 숫자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지만 그는 숫자의 세계에 매혹된다. 나는 암기라면 질색이지만 그는 모든 정보를 그냥 빨아들인다. 언뜻보면 매우매우 부러운 그 사람.

하지만 우리가 지식을 학습하듯, 그는 생활을 학습해야 한다. 버스를 타는 것도, 이빨을 닦는 것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그에겐 생경하고 두려운 일일 뿐이다. 그러니 그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여러 번에 걸쳐 좌절하며 공부에 도전하듯, 그는 지식 습득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계속 좌절하고 실패하며 겨우 그것을 해낸다. 그러니 그나 나나 쌤쌤인 셈이다.

이쪽 세계에 있는 나는, 저쪽 세계에 있는 그가  조금 안쓰러웠다. 그에겐 지적 즐거움의 세계가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감정적이거나 감성적인 감각들을 더 깊이 느끼지 못하기에,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아주아주 미세한 인간의 감정이 주는 놀라운 세계를 그도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각자에겐 각자의 그 세계가 좋은 것이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가끔 남의 세계가 부럽고 탐날 수 있겠지만, 자기 세계에서 경험한 최고의 환희를 남의 세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에겐 그의 삶이, 나에겐 나의 삶이 있고, 우리는 조금 다를 뿐. 이 세계에 공존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 지구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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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8-30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범함을 느끼고 즐길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