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정말로 오-랫만에 놀러갔다 왔다. 당분간 여행은 그만, 이라는 마음으로 2년을 살았다. 그동안 어찌 그렇게 잘 돌아댕겼나 싶게, 나는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발을 단단히 붙이고 사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산들바람이 온몸을 휘감는 기분으로 보내던 날들.
근데 오랫만에 길을 나설 생각을 하니까 거짓말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변산반도로 가는 버스 안, 날씨는 정말 변덕 그 자체였다.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창가를 때렸다. 가늘게 내리던 빗방울은 창문에 꼭 붙어 사선 모양을 그렸는데, 마치 물살을 거스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연어 떼 같았다. 그러더니 날이 밝고 창문은 다시금 투명하게 말라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연어떼. 빗방울이 굵어지자 방울방울 알알이 맺힌 물방울들이 버스 방향 반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처음에 올챙이 같더니 나중에는 꼭 자궁을 향해 달려가는 정자들로 바뀌었다. 귀여운 빗방울들이 긴 꼬리를 남기며 씩씩하게 앞으로 내달리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나는 그 풍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뿌연 창가 밖으로는 연두빛 논과 밭이 펼쳐져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빛깔. 자연의 녹색과 연두.
어디어디를 가는 것보다는 버스 안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고속버스는 창문을 열 수 없지만 시골버스의 창문을 열고 고개를 빼곰이 내밀어 바람을 맞으면 내 마음도 바람을 따라 넓은 자연과 높은 하늘을 나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바람과 버스와 푸르거나 혹은 가을의 황금빛 논은 내 여행의 환상궁합.
그런데 비가 와서, 꼬물꼬물 귀여운 빗방울들을 만나서 행복이 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