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먹이를 준 고양이가 복덩어리였나. 오늘 아침에도 그 고양일 만났다. 여전히 차와 벽 사이에 숨어 예의 그 상냥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처음엔 그 고양인줄 몰랐는데 손을 내밀자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또 눈을 살짝 감으며 온몸을 부벼댄다. 아, 이 애교쟁일 어쩜 좋아. 맨날 지각해서 오늘은 좀 정각에 맞춰보려 밥도 안 먹고 나왔건만. 요 애교쟁이가 지그재그로 걸어가며 은근슬쩍 내 앞길을 막는다. 그리고 또 슬며시 내 다리에 자기 얼굴을 부빈다. 에헷, 그렇게 애교를 떠는데 그냥 갈 수 없잖아. 천천히 고양이랑 놀다가 "나,  이제 정말 가야 돼." 그랬더니 요 녀석 말귀를 알아듣는 건지 그자리에 그냥 남아 있다. 요 녀석 참 신기하네.

 

그리고 회사엘 갔는데, 한 5시쯤인가 아는 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언니 혹시 박민규 좋아하냐고 자기 오늘 박민규 콘서트 보러 홍대 간다고. 사실 그 동생이 미니홈피에 같이 가고 싶은 사람 연락바람이라고 써놓았었는데, 뭐랄까 먼저 가겠다고 한 사람도 있을 것 같고, 왠지 미리 약속을 정해놓으면 약속 당일 내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성격이라 머뭇머뭇하던 차에 연락이 온 거였다. 아, 민규 씨 인기 많아서 누군가 당첨됐을 줄 알았는데, 하면서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싸라비야콜롬비야!

 

박민규를 좋아한다. 핑퐁에서 살짝 실망하긴 했지만. 마이너를 바라보는 따듯하고 다정한 그의 시선을 좋아한다. 술술 잘 읽히는 가벼운 문체로 글을 쓰면서도 매번 마음에 잔-하게 남는 슬프고 따듯한 그의 글을 좋아한다, 나. 그래서 언제나 "박민규 씨 아는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요."라며 헛된 부탁을 해보기도 하고(난 이상하게 좋은 사람 있으면 언제나 만나서 술 한 잔 하고 싶다. 영화감독들도, 작가들도, 화가도) 홍대에 단골로 가는 술집이 있다길래 몇번 그곳에 간 적도 있다. 못 만나면 그만이지만 만나면 좋잖아, 그러면서. :) 그런데 드디어 만나는구나, 싶어서.

 

동생은 꼬박 1년 반만에 만났다. 인도여행에서 만나 한 일주일 정도 같이 여행했나? 행동이나 분위기나 언제나 나이어린 사람 같지 않고, 취향도 비슷해서 좋아라 하는데. 둘다 연락을 기다리는 편이라 한국에 와서 몇 번 만나지 못했다. 만나자마자 튀김집으로 가서 떡볶이랑 모듬튀김에 맥주를 마셨다. 40~50분가량 앉아 있었는데, 아, 정말 어제 만난 사람처럼 따다다다다- 많은 말을 쏟아냈다. 그리곤 시간이 없어서 공연장으로.

 

허걱, 민규 씨 인기 많구나. 정말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공연장에. 분홍빛 셔츠에 분홍빛 기타를 든 민규 씨가 있었다. 아, 귀여워라. 마이크를 들고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말투가 굉장히 어눌하고 차분하고 조심스러웠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신뢰하지 않는 나에겐 정말 매력적이었다. 왠지 민규 씨가 말하면 나도 입을 헤-벌리고 바보스럽게 아-아-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여줘야 할 것 같은, 그렇게 다정하고 어눌한 말투. 미리 인터뷰한 내용인지 본인이 만든 것인지 혼자서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작가의 의도 따위 알 필요없다고 말했다는 것, 역시. :) 그리고 말했다. 자신의 책을 읽어준 독자들과 놀아보는 마당을 만들고 싶었다고, 음치에 박치지만 여러분과 함께 즐기고 싶다고. 그래서 나중에 하늘에 가서도 헤밍웨이나 톨스토이 같은 작가를 만나서도 자랑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노래 부를 때 꼭 따라불러 달라고. 다정한 사람.

 

그리고 황신혜 밴드와 서울전자음악단과 지하철3호선의 멋진무대. 그리고 민규 씨는 이름모를 노래 다만, 엄마-를 계속 반복하고 중간에 '운동이 몸에 좋다더라, 씨발(이 대목에서 정말 꺄르르르 웃었다)'라고 하는 이름모를 노래와 Knockin' On Heaven's Door, 그리고 들국화의 '축하합니다'를 불렀다. 동생은 아, 너무 좋다,를 반복했고 나도 너무 좋았다. 중간에 탁구공을 뿌려주었는데, 우리가 민규 씨를 정말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아니면 동생이 두리번거려서였는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탁구공을 여러개 주었다. 아, 다정한 사람들. 황신혜 밴드는 신나고 즐거웠고, 서울전자음악단은 무아지경이란 게 저런 건가보다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열정적인 기타 연주를 보여주었다. 지하철3호선도 두말할것없이 멋졌음.

 

다만 아무 준비도 없이 구두를 신고 무거운 가방을 매고 갔던 나는.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서(스탠딩이었다-_-) 지하철3호선 공연 때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구두를 살포시 벗어놓고 공연을 구경했다. 열한 시가 넘은 시각 공연장을 나와서 목이 마르다는 것을 핑계 삼아 캔맥주를 사서 마시며 역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다정하게 바이바이.

 

아, 정말 다이내믹하고 신났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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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11-24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좀 괴짜들을 좋아하는 편인데, 박 민규,,, 이 양반, 삼미슈퍼스타즈~~~ 읽어보니 참 괴짜구나 싶더라고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11-24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괴짜들, 좋아라, 합니다. :) 실제로 보니까 어눌한 옆집 오빠 같았어요. 멋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