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얼마 전, 갑자기 작은 아이가 물었다. "아빠,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지?" 그러자 큰 아이가 곧바로 끼어들었다. "당연하지. 제일 좋아하니까 결혼했지." 아이들에게는 이혼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사정이생겨 따로 살게 되었다고 말했을 뿐. 그리고 우리 부부는 꽤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늘 둘 중 하나만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내가 바쁜 날엔 애들 엄마가. 애들 엄마가 바쁜 날엔 내가 아이들을 돌봤다. 아이들은 그 상황에 익숙했기에, 둘 중 한 사람의 집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쉽게 받아들였다. 아이들이 크게 동요가 없었던 것이 무척 고마운 일이지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무척 곤혹스럽다.
뭐라 답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엄마가 더이상 아빠를 사랑하지 않고, 아빠도 더이상 엄마를 사랑할 수 없는 상황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조차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운데.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혼자 밖에서 담배를 태우면서 계속 울었다.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내가 못난 탓이다 라고 생각했고, 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생각과 달리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렀다.
청바지 이야기
그게 몇 해 전이었던가? 15년쯤 전이었던가? 처음 시민단체 활동을 시작했던 단체의 중간 간부 쯤 되는 국장님께서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지 말라고 나에게 경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럼 뭘 입어야 하냐는 물음에 기지바지 같은 걸 입고 오라고 했다. 기지바지 같은 옷을 전혀 입지 않던 나로서는 입을 옷이 없었다. 그 국장님은 나에게 애처럼 그런 옷을 입는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옷 외에는 입을 옷이 없었다. 그렇다고 활동가가 어울리지도 않게 정장을 입고 다닐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중에 서울에 올라가 고시원에 살면서 학원강사를 하던 시절에는 비슷한 스타일의 정장 바지를 몇 벌 사서 번갈아 입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은 맨날 같은 옷만 입고 다닌다고 뭐라고 했다. 그럼 나는 옷장에 같은 옷이 수십벌 있다고 뻥을 쳤다. 그땐 오히려 정해진 옷만 입고 다녀야 했으니 더 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주말마다 고시원에서 공동으로 쓰는 세탁기를 돌리고, 역시 공동으로 쓰는 다리미로 옷을 다리고 걸어두는 일이 귀찮긴 했지만, 그래도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아마 고3때였던 것 같다.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나가려는데, 마침 벗어놓은 청바지를 어머니가 빨아버렸다. 입을 옷이 없었다. 답답해진 나는 여동생에게 옷을 빌렸고, 허리쪽에 꽃무늬가 박혀 있는 여성용 청바지를 입고 나갔다. 당시 내 허리는 여동생과 같은 옷을 입을 수 있는 사이즈였기 때문에 가끔 여동생 바지를 입고 나가기도 했다. 나는 옷이 거의 없었고, 여동생은 옷이 많았기 때문에 그랬다.
그날은 찬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한 가을 무렵이었고, 데이트가 끝날 무렵 그 여자 아이가 목에 걸고 있던 스카프가 바람에 날려서 내가 달려가서 주웠다. 스카프를 줍기 위해 쪼그려 앉은 순간, 허리 쪽에 프린트 되어 있던 꽃무늬가 보였던 모양이다. 그 아이는 이게 뭐냐고 막 웃도리를 들추며 자꾸 놀렸고, 나는 여동생 청바지를 빌려 입고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 아이는 어떻게 여동생 옷이 들어가냐며 놀랐고, 내 허리를 껴안고 내게 몸을 기댄채 한참 시간을 보냈다.
지금 자주 입지 못하는 옷 중에 애들 엄마가 작어서 입지 못한다고 준 옷이 있다. 나한테 허리는 충분한데, 사타구니 부위가 불편해서 입기가 어렵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갈 수록 나팔바지처럼 퍼지는 모양이라 썩 모양이 예쁘지도 않다. 그래서 자주 입지는 않지만, 가끔 입을 옷이 없을 때 급하게 입기 위해 그냥 계속 갖고는 있다.
여름에 구매한 청바지는 허리는 남지만, 허벅지와 사타구니가 편한 옷으로 샀다. 쿨맵시라고 했던가. 얇고 편해서 좋았지만, 허리가 커서 불편했다. 난 평소 돌아다닐때 늘 뛰어다니는데, 뛸 때마다 바지가 흘러내렸다. 결국 십년 넘게 버려뒀던 허리띠를 찾아서 매야했다. 그렇게 허리가 큰 바지를 선택하는데 이유가 있었다. 바로 허리가 딱 맞는 사이즈를 선택하면, 허벅지와 사타구니 부위가 꽉 쬐어서 불편했기 때문이다. 허리가 맞으면 그 아래가 불편했고, 허벅지와 사타구니가 괜찮은 사이즈는 허리가 남았다.
청바지 뿐 아니라 면바지라도 허리띠를 하지 않는 편이다. 일단 아침에 옷을 입는데 하나의 단계가 더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고, 허리띠의 무게만큼 바지가 더 무겁다. 무엇보다 옷을 입으면 허리띠만큼 뽈록 튀어나와서 옷 맵시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허리띠가 필요없는 옷을 입으려하는데, 최근에는 게속 실패하고 있다.
며칠 전에도 반값 할인이라는 문구를 보고 1시간이 넘게 청바지를 입어봤으나, 허리가 맞으면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사타구니가 불편했다. 좀 편한 옷을 고르면 허리가 남았다. 허리띠를 매야 했다. 여름에 저 쿨맵시라는 청바지를 사고 후회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어 결국 옷을 사지 못하고 돌아섰다.
또 며칠 전에 겨울 청바지 하나를 수선했다. 한 5~6년 전에 누군가에게 받은 청바지였다. 두꺼운 옷이라 겨울에 주로 입었는데, 한 4년 전쯤 단추가 날라갔다. 옷핀으로 고정하고 한 1년쯤 더 입었는데, 그게 무척 보기 싫었다. 어느 여성이 술자리에서 옷핀으로 고정했어도 다 보인다고 지적을 한 후에야 그 옷을 입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전 옷수선 가게에서 단추를 다시 달았다. 몇 년 만에 다시 입어보니 그 옷도 허리는 딱 맞았지만, 사타구니가 불편했다. 어, 예전에도 그랬던가? 그땐 내가 자주 입고 다녔는데, 이렇게 불편했는데 자주 입었던가? 잘 모르겟다. 허리는 최근에 뱃살이 빠져서 오히려 살짝 큰 느낌인데, 그 아래는 불편했다.
허리띠 없이 청바지를 입고 싶은데, 왜 나는 입을 수 있는 바지가 없을까? 여동생이나 애들 엄마를 비롯해서 여성들이 입는 청바지도 허리 사이즈로는 충분히 입을 수 있는데, 다른 이유로 입을 수 없는 게 아쉽다. 유니섹스 시대라고 남녀 구분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을 판다는데, 그 부위를 조금 널널하게 만들어주면 안 될까?
더불어 청바지를 입다보면 유난히 그 부위가 빨리 해져서 못 입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 몸에 잘 맞고 색상도 맘에 들어서 좋아했던 청바지는 항상 사타구니 아래쪽 부위가 찢어져서 버렸다. 좀 튼튼하게 만들어주면 안될까? 이건 일부러 여기만 약하게 만든다는 오해가 들 정도로 늘 거기만 찢어지니 말이다.
관심 있는 책이 나왔다. 공동 저자 중에 한 사람은 아는 사람이다. 소위 하위 문화라고 불렸던 B급 문화와 철학은 연결시켰다. 내가 딱 좋아할만한 성격의 글이다. 동네 서점에서 사서 읽어야 겠다.
어제 집회에는 결국 참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교정을 많이 보지도 못했다.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집회에 갔으면 좋았을 걸.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민중 총궐기인 12일엔 아침부터 발전소 청소를 가야 한다. 그 전날엔 아이들이 와서 자는 날이어서, 일찍 일어나 아이들을 깨워서 밥을 먹이고, 빌리기로 한 트럭을 찾아서 사다리를 빌려서 발전소로 가야 한다. 생각만으로도 정신이 없을만큼 바쁜 일정이 될 거다. 발전소 청소 역시 만만한 일정이 아닐거다. 지난 번에 해보니 허리가 무척 아팠다. 그래도 오전에 청소를 끝내고, 오후엔 잠시 쉬고 집회를 나가야지. 열심히 싸워야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