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이틀 연속 새벽에 깼다. 평소 새벽까지 술을 마시던 것과는 반대다. 어제는 새벽 빗소리에 깨서 아침까지 중국어 공부를 하다가,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반찬 세 종류와 국 하나를 만들었다. 공부하기 딱 좋은 조용한 새벽이었다가, 꽤나 분주한 아침을 맞았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좀 늦게 깼는데, 조금 쌀쌀한 기운에 눈을 뜬 것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고 있더라. 몸을 움직이는 게 무지 귀찮았지만, 아이들이 감가에 걸릴까 싶어 억지로 일어나 창문을 닫았다. 그러고보니 술을 마시다 제대로 치우지도 않고 잠이 들었다.
계획은 아이들을 재우고 난 계속 술을 마실 생각이었다. 토요일이었고, 연휴 중 마지막으로 맘껏 술을 마실 수 있는 날이 아닌가. 일요일은 다음날 출근을 생각하면, 더군다나 연휴 직후 월요일이라 평소보다 월요병이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으니 하루쯤 술을 마시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전날인 어제밤은 술을 더 마시고 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들은 12시가 다 되되록 잘 생각을 않고, 옷 입히기 스티커로 놀고 있었다. 난 애들을 재우기 위해 불을 끄고 함께 누웠는데,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작은 아이가 양쪽 발목을 긁느라 계속 이불을 걷어 찼다. 가엽게도 작은 아이는 유난히 모기에 잘 물린다. 집에서 물린 것인지, 어제 놀러갔던 공원에서 물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몇 번인가 더 걷어찬 이불을 다시 덮어주다가 일어났다. 방을 나와 불을 켜니 상 위에 마시던 술과 안주가 그대로 있었다.
배가 고프다거나, 술이 땡기지는 않았지만, 먹던 술과 안주를 버리는 건 아까우니 그냥 먹어버렸다. 빈 그릇을 치우고 설겆이를 했다. 밥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쌀을 씻어 불려놓고, 아침에 무얼 먹여야 할 지 고민해본다. 어제 아침에 만든 반찬은 세 개 중 하나만 남았다. 뭔가 더 만들어야 할텐데, 냉장고 안에 야채가 없다.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술과 안주거리만 사지 말고, 반찬거리도 사 왔어야 했는데, 생각이 짧았다. 일요일 아침 근처에서 야채를 살 수 있을까? 동네 슈퍼는 아침에 문을 열겠지만, 늘 야채가 신선하지 않았다.
결국 아침은 계란과 베이컨과 버섯(요건 어제 만든 거)으로 간단히 먹이기로 하고, 컴퓨터를 켰다. 유튜브에서 인도 영화음악 몇 곡을 찾아 듣다가 이 글을 쓴다.
중국어
최근 중국어, 일본어, 힌디어, 스페인어를 동시에 배우고 있다. 아니 배운다기 보다는 재미로 단어 공부하는 수준이라고 해야겠다. 중국어는 거의 20년 전에 중국에서 온 교환학생에게 배운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생활비를 위해 그렇게 중국어 가르치는 일을 여러 건을 맡아 했는데, 우린 한 6명 규모의 그룹 과외 같은 거였다. 여러 명이 함께 공부를 시작했건만, 금방 다들 그만뒀고, 결국 나 혼자 개인 과외를 받는 개념이 되어 버렸다. '오빠'라는 발음이 잘 되지 않아 나를 '어빠'라고 불렀던 그 아이는 혼자 남은 내가 혹 공부를 그만둘까봐 늘 "발음이 좋다"고 칭찬하곤 했다.
한 몇 달 전쯤 친구를 통해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중국으로 잠시 돌아갔다가 곧 다시 교환학생으로 와서 계속 한국에 살았던 모양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취직해서 서울에 있다고 들었다. 술자리에서 들었던 기억이라. 가물가물한데 결혼할 예정이란 얘기도 들었던 것 같다. 언젠가 같이 얼굴 보자고 친구가 말했건만, 그 친구마저 1년에 한 번 얼굴보기 힘들게 살고 있기에 아마 볼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암튼 20년 만에 다시 중국어를 들여다보니 정말 거의 기억나는 게 없더라. 인사말을 비롯해 몇 개의 자주 쓰는 표현만 남아 있었다. 다만 당시에 그 아이가 성조를 잘 가르쳐줬기에 성조에 대한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났다.
중국어 공부의 가장 큰 장벽은 역시 한자다. 당시에도 한자 외우기가 너무 힘들어 공부를 그만두지 않았던가 싶다. 아니 사실 당시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당장 배워서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냥 흥미다. 배워서 뭘 할 수 있을만큼 배울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은 재미있다. 그래서 재미있을 동안은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일본어
일본어는 제대로 배운 적은 없고, 혼자 책 보고 끄적거렸던 게 전부다.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을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에 제일 익숙하다. 아마 영어를 제외하면 단어를 가장 많이 아는 외국어일 것이다. 별 관심이 없었던 일본어를 배우자 마음 먹었던 건, 아마 일본 참가자들과 함께 몽골에 다녀온 이후였다. 일본에선 약 20여명의 참가자 중 대다수가 요코하마 시립대 학생 NGO 소속 학생들이었다. 한국에선 대부분 공무원을 비롯한 직장인들이 다수였고, 학생들은 나와 함께 참가했던 우리학교 동아리 후배들이 다였다. 우리 학생들은 한일몽 교류의 밤을 준비했는데, 일본 대표였던 학생과 짧은 영어로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사전 준비를 했다. 그때 잠시 생각했다. 일본어를 좀 배워뒀다면 영어보다는 훨씬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라고.
몽골에서의 짧고 강렬한 기억 안에는 일본 학생들과의 다양한 추억들이 있다. 여름 밤 사막에 갔다가 이가 딱딱 마주칠 정도로 추워서 덜덜 떨고 있을 때, 담요로 감싸줬던 여학생을 비롯해 여러 학생들과 교류했는데, 이때도 일본어를 몰라 짧은 영어로만 소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돌아온 후 일본어를 배워보자 마음 먹었는데, 금방 그만두고 말았다.
한자 때문에 중국어가 어렵듯이, 일본어 역시 한자 때문에 어려운 것 같다. 예전에 공부할 때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는 어느 정도 외웠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니 이것도 다시 외워야 할 것 같다.
힌디어
인도영화를 처음 접한 건 10년 쯤 전에 문화운동 단체에 있을 때였다. 그때 제법 나이가 많았던 한 선배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각종 연극, 영화, 공연, 미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정기적으로 인도영화를 함께 보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나에게도 함께 가자고 권했다. 인도영화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얘기했는데, 당시 난 별로 관심이 없었고, 실제로 본 영화도 그리 재미있지 않았다.
인도영화를 본격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한 건, 우연히 다운받아 본 [가지니]라는 영화 때문이었다. 헐리우드 영화 [메멘토]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가져온 이 영화는 액션과 멜로 두 가지를 반반씩 담고 있다. 영화의 완성도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 재미있었다. 그 긴 시간동안 그렇게 집중해서 본 영화는 흔치 않았다. 특히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에 마음을 완전히 뺐겼고, 그 사이사이에 적절하게 등장하는 음악과 춤이 매력적이었다.
이후 인도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흔히 '맛살라'라고 부르는 그 춤과 노래 부분은 늘 재미있었다. 언젠가부터 인도영화의 맛살라 장면만을 찾아 보는 재미가 들었을 정도였다. 힌디어을 배우고 싶다 생각한 건 순전히 인도영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다. 욕심으로는 자막없이 영화를 볼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독일어 번역을 하는 애들엄마도 자막 없이 독일영화를 오롯이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는 걸 생각해보면 무리겠지. 언제 흥미를 잃을지 모르겠지만, 재미있다고 느끼는 지금은 집중해보고 싶다.
한자도 히라가나나 가타가나도 모두 어렵지만, 힌디어를 표기하는 데바나가리 문자를 보면서 좌절감을 느꼈다. 이 그림이 정말 문자란 말이지? 나 정말 이걸 배울수 있을까? 한 가지 희망은 이 데바나가리 문자가 한글과 같은 표음문자라서 46자의 글자만 외우면 모든 글을 다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침
어제 늦게 잠든 아이들이 슬슬 깨어날 시간이다. 압력밥솥의 추가 팽팽 돌아가며 소리를 낸다. 그래 알았다. 보채지마라. 곧 갈테니. 아이들 아침을 준비하기 전에 노래 하나 켜놓아야 겠지? 내가 좋아하는 [Doom3]의 한 장면으로 활기차게 일요일을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