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욕심이 많아서 왠만하면 책을 버리거나 팔지 않는다. 지난 번에 이사올 때 밤새 책을 쌌는데도, 반도 못 싼 상황을 보고서야 좀 정신이 들었다. 다시 이사 가기 전에 꼭 책 정리를 해야 겠구나. 함께 이사짐을 날라 주었던 후배도 이 책들 다 쌓아놓고 뭐 할 거냐고, 정리 좀 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 책들을 챙겼다. 서른 여섯 권 가량의 책을 담아갔다. 큰 등산가방 하나를 꽉 채우고, 커다란 쇼핑백도 꽉 채웠다. 무게가 어마어마했다. 등산가방을 메고 일어서는데 무릎이 아팠다.
집에서 알라딘 중고서점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없었다. 한 서너정거장 거리인데,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책이 워낙 무거워서 좀 부담스러웠다. 어깨에 맨 가방은 그래도 괜찮은데, 한 손에 든 커다란 쇼핑백 끈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손이 얼얼했다. 한 30여분을 걸어서 도착했더니 땀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책장에 얼룩이 생긴 책 한 권과, 재고가 많아서 받을 수 없는 책 한 권 그리고 아예 받을 수 없는 품목이라는 학술서적 한 권을 다시 돌려받고 나머지 서른 세 권을 팔아서 12만원 가량 현금을 받았다. 두꺼운 책이 많았고, 도감류가 몇 권 있어서 그나마 이 가격이 나왔다. 대부분의 책은 그냥 1천원이었다. 나중에 영수증을 보면서 각 책의 판매가를 보면서 1천원에 팔았던 책들은 차라리 팔지 말걸 하는 후회를 했다.
책을 잔뜩 팔았으니, 좀 사도 되겠지 하는 생각에 책을 5권이나 사왔다. 여전히 책장은 넘처난다.
나를 떠난 책들을 다 정리해보려고 이 글을 시작했으나, 도저히 다 할 자신이 없어진다. 중요한 책들 몇 권만 살펴보자.
흙의 고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알려주는 책.
예전에 잡지에 서평도 썼던 책.
흥미롭게 열심히 읽었지만,
다시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아 정리했다.
이시백 선생의 책은 늘 재밌다.
작품이 나오면 무조건 보는 작가 중 한 명.
외환은행 먹튀 사건을 꼬집은 문제작
재미있게 읽고 신문에 평을 썼던 책이다.
하지만 이시백 선생 특유의 해학이 조금 덜하다.
다시 읽을 일이 없을 듯.
청소년 활동가들이 청소년 인권에 대해 쓴 글
제목이 좀 파격적이다.
사실 전부 다 읽지는 못했다.
대체로 공감할 내용들이지만,
간혹 무슨 얘기인지 잘 이해가 안 가는 내용도 있다.
전태일 열사 분신 40주년을 기념해 만든 책
특이하게 4개의 출판사가 공동으로 작업해서 만들었다.
이렇게 2개 이상의 출판사가 함께 기획해서 낸 책이 또 있으려나?
다만 취지에 비해 내용은 아쉬움이 많다.
이것도 역시 예전에 잡지에 서평을 썼던 책.
책에 대한 책은 늘 읽어보려 애쓰는 편이다.
철학자 이정우의 책 이야기.
한 10여년 전에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다만 다시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아 판매한다.
이외에도 많은 책들을 팔았다. 이 중 완독을 한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아예 안 읽은 책도 거의 없다. 대부분 발췌독을 했고, 몇몇 책들은 2번 이상 읽은 책도 있다. 도감류 몇 권을 팔았는데,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평생 열어볼 일이 없을 책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