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의 애창곡, 악보도 없이 구전되던 금지곡

부용산

 

도서관 서가에서 창비 20세기한국소설 전집을 펼쳐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읽고 있던 책을 서가에 꽂아두고, 아내와 아이들이 일어서기를 기다리려는데, 아직 시간이 몇 분 남았기에 생각없이 서가를 훑다가 무심코 집어들었다. 거기서 '부용산'을 만났다. 최성각 선생은 그저 환경운동가로서만 알았을 뿐, 그의 글은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산문을 스쳐 읽은 기억은 있었지만 소설은 한 편도 접해보지 못했다. 궁금했다. 마침 분량도 짧아서 금방 읽어 갔다. '부용산'이란 노래를 접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가는 내용이었다. 읽으며 이게 실제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내용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등장인물 중에 한겨레 김종철 논설위원이 있어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실화라는 생각에 무게을 실어줬다. 

 

역시 나중에 찾아보니 부용산에 얽힌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었다. 한국일보 김성우 논설위원이 두 차례에 걸쳐 쓴 글과 경기대 김효자 교수와 월북한 작곡가 안성현과 호주로 이민 간 작사가 박기동에 대한 내용 모두 사실이었다. 여러개의 토막 글을 찾아보다가 이 내용을 잘 정리해놓은 페이지를 발견했다. 이 페이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소설과 다른 지점이 있다. 소설에서는 작곡가 안성현이 무용가 최승희의 남편 안막의 조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이 페이지의 각주에는 그런 추측이 있다고 안내하면서 사실이 아닐거라고 말한다. 근거로는 북한에서 안막과 최승희가 숙청당할 때, 안성현은 살아남았고, 이후 인민예술가 칭호까지 받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노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요 아래 페이지를 참고하세요.

http://mirror.enha.kr/wiki/%EB%B6%80%EC%9A%A9%EC%82%B0#rfn4

 

그리고 호주로 이민갔던 박기동이 영구 귀국했다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와 연극인 손숙의 남편인 김성옥이 호주로 박기동을 찾아가 부용산의 2절 가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새롭게 알았다. 아 그리고 박기동이 국내에서 [부용산]이란 제목의 산문집을 출간했다는 이야기도 알았다.

 

 

 

 

 

 

 

 

 

 

 

 

 

 

웹에서 부용산을 검색해서 노래를 들었다. 안치환의 노래와 윤선애의 노래 두 개를 들었는데, 윤선애의 노래가 더 슬프고 애잔하게 들렸다. 노래를 들으며 왜 빨치산들이 이 노래를 즐겨 불렀는지, 어떻게 그 긴 세월 악보도 없이 구전되었는지를 알것 같았다. 왠지 형언하기 어려운 서글픈 감정이 흐느낌이 되어 목을 타고 넘어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윤선애의 부용산, 전주가 길다. 1분 50초 즈음부터 노래가 나온다.

 

죽음을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

글루미 썬데이

 

수많은 사람들을 자살로 이끌었다는 노래. 노래를 들어보기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노래를 듣고 사람들이 자살을 해? 영화는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픽션이지만, 그 노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내용은 사실이었다. 슬픈 곡조의 노래였다. 영화에서 여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에리카 마로잔이 부르는 노래가 참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 에리카 마로잔이 무반주로 노래를 부르며 스테파노 디오니시에게 자신을 위해 연주를 하도록 부탁하는 장면(헝가리어 버전)

 

 

한창 이 노래에 빠져 있던 시절, 나는 여러 가수들이 부른 '글루미 썬데이'를 모으기 시작했다. 빌리 홀리데이, 사라 맥라클란, 비욕 등 유명한 가수들이 부른 노래가 많았다. 내 엠피쓰리 플레이어에는 폴더 하나에 '글루미 썬데이'만 예닐곱 곡이 들어 있었다. 잠이 잘 오지 않는 밤, 불을 끄고 누워 글루미 썬데이만 무한 반복으로 듣다보면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스쳤다. 아, 자살 충동을 느끼지는 않았다. 다만 여러 추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떤 기억은 아주 자세하게, 어떤 기억은 흐릿하게 떠올랐다 사라졌다.

 

같은 장면의 독일어 버전, 에리카의 노래를 자주 들었기 때문에 'trauriger sonntag' 으로 시작하는 이 장면이 무척 익숙하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노래다. 영혼을 울리는 노래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부용산을 듣고 나서 이 노래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