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포댐(정부측 주장은 '보'라고 하지만, 규격으로 보아 '대형댐'이라고 불러 마땅함!)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3분의 투사(염형철 처장, 장동빈 국장, 박평수 위원장)가 오늘 스스로 내려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부랴부랴 뉴스를 검색했다. 오늘 오후 5시반쯤 내려와서 곧바로 경찰에 연행되었다고 한다. 기습적으로 이포보 상판 교각을 점거한 지 41일 만이고, 법원으로부터 하루에 한 사람당 300만원(하루밤에 900만원)의 벌금과 함께 퇴거명령을 받은지 11일만이다.(계산해보면 9천9백만원의 벌금이 부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과 퍼붓는 빗줄기와 몰아치는 바람을 피할 곳이라고는 공사자재를 덮어놓았던 천을 이용한 임시 천막뿐이었다. 끼니때마다 선식과 물만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문명의 온갖 혜택과 동떨어진 생활을 해왔다. 철사와 노끈을 재활용하여 실과 바늘을 만들어서 손상된 현수막을 수선하고, 자가발전 손전등을 개조하여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하는 등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참 놀라운 적응능력이다!
3명의 투사들 중에서 염형철 처장님과 장동빈 국장님은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다.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새만금 투쟁때부터 몇 차례 함께 활동했던 경험이 있고, 술자리를 가진 적도 있다. 지난 주 이포댐 현장 상황실을 방문했을 때, 먼 발치에서나마 망원경을 통해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는 건강해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손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온 몸으로 4대강 사업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그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주지 못하는 내 입장이 못 견디게 싫었다.
이들이 이포댐에 오르는 날 낙동강 함안댐(역시 정부 주장은 '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댐'이다!) 공사현장 타워크레인을 점거했던 2명의 투사들(최수영 처장, 이환문 국장)도 있었다. 이들은 농성 20일만에 태풍 '덴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워크레인에서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2003년 태풍 '매미'때는 전국의 타워크레인 57대가 쓰러진 적이 있다. 태풍이 시시각각 다가오면서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를 우려하여 시민단체와 정치인들이 이들을 설득했다. 눈물을 머금고 고공농성을 철회한 2명은 경찰에 구속되었지만 삼일 후에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석방되었다.(48시간 구금 원칙 위반!)
이포댐에 비하면 함안댐의 상황은 무척 열악했다. 이포댐 투사들이 점거한 교각 상판은 그래도 안정적인 구조물이었지만, 함안댐 투사들이 점거한 타워크레인은 맘편히 몸을 쉴 수도 없는 불안정한 공간이었다. 이들은 용변문제도 원활하게 해결하기 어려워 하루 한끼 선식과 물로만 생활했다.
함안댐에서는 수영이형과 친분이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다양한 현장활동을 함께했다. 처음 고공농성 소식을 접하고 함안댐 타워크레인에 올라간 사람 중 한 명이 수영이형이란 얘길 들었을 때, 혹시 경찰의 무리한 강제진압으로 인해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봐 걱정되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 중에 수영이형의 아들이 멀리서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사진을 보았을 때, 나도 갑자기 딸아이 생각이 나서 울컥 눈물이 나올 뻔 하기도했다.
이번 환경연합의 함안댐, 이포댐 점거 고공농성은 여러모로 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실제로 1년 넘게 공사가 진행되었고, 이미 수많은 환경파괴가 자행된 시점에서 반대의견만 무성했을 뿐, 어떤 구심점으로 힘이 모아지지 못했던 상황에서 이루어진 직접행동이었다. 이들의 고공농성 덕분에 온 국민의 시선이 다시 4대강 공사현장으로 모아졌고, 농성현장을 찾는 발길도 많아졌다.
비록 이들의 요구사항들이 받아들여지지 못한 상황에서 내려온 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이제부터 더 큰 싸움을 준비해나가기 위해 일단 건강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이 오늘 이포댐 투사들을 설득시켜 내려오게 했다.
글쎄 개인적으로는 자꾸만 새만금과 천성산의 아픔이 겹쳐져서 마음이 무겁다. 4대종단(기독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을 대표하는 성직자들의 목숨을 건 3보1배 행렬이 부안을 출발하여 서울까지 도착했을 때와 지율스님께서 목숨을 건 4차례의 단식을 이어갔을 때에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물며 이명박 정부가 지금 귀를 기울여 줄 것인가 생각해본다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2008년 들불처럼 번져갔던 촛불 보다 더 큰 움직임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