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른다는 것
우리가 사는 세상은 3차원이라고 하더라. 만약 4차원에 사는 어떤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시간까지 초월한(?) 존재인걸까? 테드 창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컨택트]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우리와 다른 외계 종족이 나온다. 주인공은 그 외계 종족과 소통을 시도하면서 그들처럼 미래를 미리 느끼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런 이야기 자체는 정말 재미있지만, 그런 상황을 실제로 겪은 일처럼 느끼기는 쉽지 않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시간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것과 다르게 흐르는 세계라는 것. 당연히 겪어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는 것이겠지. 상상해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오늘은 SF읽기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지난 모임에서 내가 이번에 읽을 책을 내가 좋아하는 필립 케이 딕 으로 추천했고 다들 동의했다. 내가 추천한 책이라 더 열심히 책을 읽었고, 모임을 어떻게 운영하면 더 효율적이고 재미있을지 생각하면서 사전에 이야기 꺼리들을 각자 자유롭게 제시하고, 이것들을 모아서 마인드맵 형태로 만들어 차례 차례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머리속으로 오늘 어떻게 진행할지 나는 어떤 이야기들을 준비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불행한 소식들이 들렸다. 누군가는 오늘 야근을 해야해서 못 온다고 했고, 그러자 또 다른 누군가도 요즘 일이 많아서 빠지겠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이번주 토요일 총회 때문에 부담스럽다고도 했다. 나 역시 2월과 3월이 일 년 중에 제일 바쁜 시기다. 다들 바쁜 것은 당연히 이해하고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일 수 밖에. 특히 야근 때문에 못 오신다는 선배님은 엄청 긴 시간 다른 독서 모임을 이끌어오시면서도 거의 빠진 적이 없는, 아니 한번도 없는 분이라 이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암튼 갑자기 모임이 연기되어서 나는 달리기를 하러 나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내 몸은 옷을 갈아입고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침대에 누워 폰을 들고 북플 앱을 열고 있었다. 음, 이 글만 쓰고 달리러 나가야지.
예전에, 아마 거의 20년 전에 필립 케이 딕 단편들을 제법 많이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단편집을 구매하면 읽었던 단편이 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 읽기로 한 책은 헐리우드에서 두 번이나 영화로 만든 [토탈 리콜]의 원작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가 수록된 책이고, 나는 이 책을 구매하면서 역시 영화로 만들어진 단편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있는 책도 함께 구매했다. 책을 받고 보니 둘 다 700쪽이 훌쩍 넘는 벽돌책이었다. 특히 먼저 읽고 있는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에는 25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이중 23편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이라고 했다. 어쩐지 특유의 분위기는 익숙하지만 딱 읽었었다라고 기억나는 작품이 계속 안 나와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미리 읽었을 수가 없는 것들이었구나.
내가 책을 읽는 순서는 판권면을 가장 먼저 보고, 서문, 해설이나 후기, 부록, 역자 후기 등을 다 살펴보고 그제서야 목차를 확인하고 읽는다. 본문도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지 않고 목차를 보면서 제일 끌리는 곳으로 먼저 가곤 한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야 할 장편소설이면 이러면 안 되지만, 단편집은 상관없으니. 역자 후기에도 적혀있지만, 필립 케이 딕은 헐리우드에서 가장 많은 영화의 원작을 가진 작가일 것이다. 공식적으로 원작으로 인정한 것들도 그렇지만, 실은 이 다작 소설가의 소설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원작으로 인용하지 않은 영화나 드라마들도 제법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그가 현재의 영화와 드라마 산업에 미친 영향은 훨씬 더 클 것이다. 온라인 상에 필립 케이 딕의 영향으로 만든 영화 라고 언급된 영화들 중 하나는 놀랍게도 짐 캐리 주연의 [트루먼 쇼]도 있었다. 와! 이것도 필립 케이 딕의 소설에서 영향을 받은 거였다니. 나는 아직 읽어보지 않은 [어긋난 시간]이란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와 유사하다고 했다.
사실 이런 부분이 또 필립 케이 딕의 한계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사람은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결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다. 매끄럽고 매력적인 문체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고, 이야기를 촘촘하게 잘 짜는 사람도 아니다. 살아있는 듯한 흥미로운 인물들을 잘 만드는 사람도 아니다. 그는 엄청나게 극적인 인생을 살았고, 그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바쁘게 글을 써내느라 개별 작품에 크게 공을 들이지는 못한 것으로 추측한다.
그럼에도 내가 그를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주제와 그 주제를 제시하는 방식의 독창성이고 그가 만드는 세계의 독창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블레이드 러너]도 [토탈 리콜]도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모두 그의 소설이 원작이지만 영화의 시나리오에서는 소설에 담겨진 내용 보다는 훨씬 더 확장된 세계에서 더 짜임새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원작인 소설은 사실 그렇게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내용까지 다루고 있지 않다. 이런 점이 그를 생각할 때 가장 아쉬운 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읽었을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 읽을 때에도 이 이야기를 내가 다시 써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을 집어넣고, 좀 더 세부적인 설정과 비어있는 이야기들을 넣어서 장편으로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 책의 서문을 읽어보니 실제로 당시 미국 SF 작가들 중 일부는 이렇게 필립 케이 딕의 영향을 받아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내가 생각한 것처럼 전적으로 모든 설정을 받아온 것은 아니겠지만.
시간의 정방향과 역방향
각 단편마다 흥미로운 설정과 이야기들이 펼쳐져서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다 좋았다. 그 중에서 오늘 얘기하고 싶은 것은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에 실린 단편 중 [약속은 어제입니다] 라는 작품은 1965년에 완성해 편집자에게 넘겼고, 1966년 발표된 것인데, 시간이 정방향으로 흐르는 세계와 시간이 역방향으로 흐르는 세계가 공존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워낙 짧아서 더 구체적인 설정을 알 수 없지만, 등장인물들 중 다수는 내일을 지내고 오늘 그리고 어제를 향해 살아간다. 하루 중에서도 밤과 저녁, 오후를 거쳐 오전으로 시간이 흐른다. 그런데 이 부분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작중 등장하는 어떤 발명품의 영향에 따라 어떤 인물들은 또 정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의 흐름대로 살아간다. 나중에는 어떤 아이디어 때문에 일정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혹은 그 세계 전체가) 특정한 시간대를 기점으로 정방향과 역방향을 계속 반복해서 오가는 일종의 시간 감옥 안에 갇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다만, 이 흥미로운 설정에서 작가는 이야기를 펼치다가 뚝 끊어버리고 끝낸다. 작가가 직접 쓴 설명이 담긴 부록과 역자 후기를 보면 이 이야기는 [거꾸로 도는 세계] 라는 장편으로 다시 써서 출간했다고 되어있다. 국내에 발행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꼭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이 이야기 완전히 생소한 것만은 아니다. 일단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라는 스콧 피츠제랄드의 1922년 소설과 이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 있다. 나는 책은 읽지 못했고, 영화만 봤었다. 이 이야기는 모두가 정방향으로 살아가는데, 딱 한 명만 기이하게도 역방향으로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 죽음까지 변하지 않고 주욱. 이걸 필립 케이 딕은 시간의 흐름이 어떤 발명품에 의해 정방향에서 역방향으로 바뀌고 그게 또 역전되기도 하는 등 복잡하게 바꾸었고, 여기서 다시 이 발명품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눠서 더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설정을 만들었다.
자, 이쯤에서 뭐 생각나는 것 없을까? 그렇다. [테넷] 이다. 나는 이 영화를 세 번이나 보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그린 스크린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즉 컴퓨터 그래픽이 전혀 없이 아날로그 특수효과만으로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큰 규모의 첩보 액션 영화이지만, 그 안에 인버전 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넣어서 시간을 역행하게 만들어 굉장히 복잡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나는 이 영화를 그냥 첩보 액션물로 아주 재미있게 보았고, 그 인버전이 이용되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인버전 부분은 영화로 본 것만 세 번이고, 이걸 해석해 준다는 영상들을 여러차레 보았음에도 솔직히 완전히 이해했는지 자신이 없다. 그런데 어쨌건 어떤 특수한 장치를 이용해 일부 등장인물만 시간이 역방향으로 흐른다는 이 이야기는 저 필립 케이 딕 소설의 설정과 같다. 찾아보지 않아서 자신할 수 없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아마 이 소설들을 읽어보지 않았을까?
뫼비우스의 띠
시간이 반대로 흐른다는 이야기를 생각하면 반드시 언급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라는 일본 영화로 나나츠키 타카후미 라는 작가가 2014년에 출간한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책은 읽어보지 못했고 고마츠 나나 주연의 영화만 봤는데 정말 인상적인 작품이었고, 무조건 두 번 볼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이 영화를 참 좋아하는 입장에서 원작을 읽지는 않았지만, 원작 작가는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 진짜 천재인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필립 케이 딕의 소설을 읽고 이 영화 생각이 났다. 디테일은 많이 다르지만, 시간을 정방향으로 사는 사람들과 역방향으로 사는 사람들이 얽힌다는 부분은 혹시 여기서 가져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영화에서 미나미야마 타카토시는 후쿠쥬 에미라는 동갑내기 여성을 만나 사랑하게 되지만, 이 여성은 자신과는 시간이 반대로 흐르는 세계에서 건너온 사람이었다. 타카토시의 세계와 에미의 세계는 서로 5년에 한 번씩만 통로가 열리고, 한 번에 40일(영화에선 30일)만 열린다고 한다. 이둘의 운명은 정말 ‘운명의 장난‘ 이라는 표현 외에는 다른 말이 없을 것 같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은 느낌을 준다.
5살의 타카토시를 우연히 35살의 에미가 구해준다. 10살의 타카토시에게 30살의 에미가 상자를 건너주며 타코야끼를 사준다. 15살의 타카토시를 25살의 에미가 만난다. 그리고 20살의 타카토시와 20살의 에미가 만난다. 25살의 타카토시가 15살의 에미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눈다. 30살의 타카토시가 10살의 에미를 찾아간다. 그리고 35살의 타카토시가 5살의 에미를 구해준다.
30년 이라는 시간을 두고 서로가 서로의 생명을 구해주는 이 인연. 처음 타카토시 기준에서 우연히 어떤 어른이 구해주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에미 입장에서는 30년 전에 타카토시가 구해준 것을 갚기 위함이고, 또 두 사람이 서로의 스무살에 그렇게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서로를 반드시 구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5년 단위로 이렇게 얼핏 보면 둘이 공평한 것처럼 보이지만, 둘이 스무살인 해에 만나고 헤어지는 하루 하루를 보면 여성인 에미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왜냐하면 남성인 타카토시의 시간은 정방향으로 흐르지만, 에미의 시간은 역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둘이 공평하게 서로 반대가 아니라, 반대는 반대인데 절대적으로 유리한 정방향과 무조건 불리한 역방향이라는 방향성을 내포한 반대라서 무척 차별적인 구조다. 그러니까 만약 입장을 바꿔 에미가 정방향, 타카토시가 역방항으로 시작할 수도 있었고 그러면 그 차별은 반대로도 가능하지만 이 작품에선 에미가 불리한 방식으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어른 에미는 청소년 타카토시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아도 상관없고, 그보다 어린 10살의 타카토시에게 아무 설명도 없이 상자만 건네도 괜찮다. 타카토시는 그 모든 일들을 정방향으로, 즉 시간 순서대로 겪을 예정이니까. 하지만 어른 타카토시는 청소년 에미에게 아주 구체적인 내용들까지 하나하나 설명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에미가 타카토시를 찾아가지 못하고, 그러면 이 뫼비우스의 띠는 끊어진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에미 입장에서는 점점 자신과의 기억을 잃어가는 타카토시와 만나야 한다. 마침내 타카토시는 에미를 처음 마주치는 날 에미는 마지막 날이라 다시는 동갑내기 연인인 타카토시를 보지 못하는 날이 된다.
찾아보니 영화에는 없는 설정인데 소설에서는 에미 쪽 세계에서만 타카토시 쪽 세계로 넘어올 수 있다고 나와있다. 그러면 왜 에미만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다 배워서 반대 방향으로 시작해야 하는지가 조금 납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타카토시가 먼저 에미를 찾아갈 수 없다면 이야기가 성립될 수 없으니.
필립 케이 딕의 소설과 영화 테넷에서는 역방향인 경우 시간을 정방향에서 그대로 뒤집는 것이라서 날짜만 반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 24시간 중 시간도 반대로 간다. 밤에서 저녁으로, 오후에서 오전으로. 이 영화에서 정방향과 역방향인 두 인물이 만나면 그럼 두 사람은 실제로는 단 한 순간도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없다. 아주 짧은 순간 서로 스쳐지나갈 뿐. 각자의 시간 흐름이 적용되는 상태에서 마주친다면.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에미가 타카토시의 세계로 넘어와서 타카토시 시간대를 살아가는데 원래 세계로 넘어가면 다시 반대인 상황을 하루 단위로 반복하는 것이다.
뭔가 복잡하게 고려해야 할 것들이 더 있을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맨처음에 말했듯이 시간의 흐름이 다른 경험을 할 수 없으니, 그것을 이해하고 상상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겠지.
언젠가 나도 시간 흐름을 비트는 독창적인 글을 써볼수 있을까? 나는 그만큼 똑똑하지 못해서 어려울 것 같다. 자, 이제 달리기 하러 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