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신드롬


오래 전 영화 [쉬리]가 개봉했을 때, 주위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영화를 봤다고 얘기하곤 했었고, 언론에서도 다루는 걸 봤었다. 나는 이상하게 삐딱한 기질이 있어서 남들이 다 하는 건 일부러 피하곤 하는데, 남들이 다 보는 영화는 이상하게 보고 싶지 않았었다. 그래서 영화관을 찾지 않았다. 남들이 잘 보지 않을 것 같은, 그러나 나에게는 뭔가 끌리는 영화를 찾아보곤 했었다. 문득 [쉬리]의 관객수가 궁금해 찾아보니 580만 가량이다. 언젠가부터 천만 관객 영화가 종종 나오곤 했던 걸 생각하면 [쉬리]는 내 기억과는 달리 그렇게 크게 유행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일까? 아니면 당시로서는 그 정도 관객수도 많았던 것일까? 내 기억에 비슷한 시기에 [쉬리] 보다 더 크게 흥행했던, 정말 내 주위에 안 본 사람을 찾을 수 없었던 영화 [타이타닉]의 흥행성적도 궁금해 찾아보았다. 세계적으로 크게 흥행했던 것으로 아는데, 우리나라에서는 590만으로 추정한다고 나온다. 재개봉 포함 전국 635만이라고 나온다. 그럼 확실히 당시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의 총 인원수가 적었던 것이다.


암튼 삐딱한 나는 저 두 영화를 일부러 보러 가지 않았다. 남들이 그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듣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두 영화는 아주 나중에 티비로 봤다. [쉬리]는 재미있었지만, 그냥 딱 재미있는 오락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그렇게 유행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과 일부러 극장을 찾지 않은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타이타닉]은 달랐다. 와! 영화의 스케일 자체가 달랐고, 그때까지 보았던 어떤 영화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압도하는 느낌이 있었다. 저 영화는 극장에서 보았으면 더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올해 초 나는 우연히 작은 아이와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을 극장에서 보았다. 원래 영화를 볼 계획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즉흥적으로 영화를 보자고 했고, 마침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들 중 제일 끌리는 영화가 바로 그거였다. 암튼 그렇게 아바타를 보고 또 한번 감탄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극장에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비나 태블릿으로 봤으면 이 정도의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 [쉬리]와 [타이타닉] 이야기를 한 것은 요즘 언론과 사람들 사이에 폭발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 때문이다. 지금 이 분위기 어쩐지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만 떠올려보니 딱 저 두 영화의 개봉 시기의 내 기분이 지금과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외에 다른 영화들도 제법 있었을 것이다. 이 사회는 좀 과할 정도로 유행에 민감하고, 뭔가 하나가 회자되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그에 편승해 더 많은 이야기들을 퍼트린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다만, 내 개인적인 기억에서는 저 두 영화가 제일 먼저 떠올랐을 뿐이다. 최근의 흐름으로 보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나 [더 글로리]의 흥행과도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서울의 봄] 흥행은 두 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일단은 12월 12일이 다가오는 시기에 저 군사 쿠테타의 부당함과 죄상을 전 국민들에게 다시 상기시키고, 그래서 다함께 전씨와 그 일당들에게 분노하는 국민적인 유행을 일으킨 것에 대한 반가운 감정이다. 아마 저 영화가 이렇게까지 흥행할 수 있는 요인 중에는 전씨와 노씨의 죽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과거 영화 [26년]은 제작과정에서 수차례 외압을 받아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와해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고 들었다. 게다가 전씨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이 영화에 저렇게 유명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 며칠 동안 언론과 각종 유튜브 채널에서는 앞다투어 그날의 실제 이야기, 영화 속 배역의 실제 인물들, 당시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를 결정적인 순간들 등의 다양한 연관 콘텐츠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내용들이 충분히 널리 알려지는 것은 이 영화의 힘이자, 매우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도둑질 했던 독재자의 죽음 이후 다시 또 다른 군부 독재자가 내란을 통해 정권을 훔친 과정을 잘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후 우리나라는 87년까지 많은 희생을 치르며 간신히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으나, 그것은 제도적 민주화에 그쳤을 뿐, 살인마이자 학살자의 친구가 다시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후 삼당 야합으로 이뤄진 소위 말하는 문민정부 역시 권위주의 정권으로서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민주화라는 관점에서 얼마나 많이 퇴보하게 만든 사건인지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면 좋겠다.


두 번째 드는 생각은 아쉬움이다. 물론 나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내 의견을 잘못된 편견일 수도 있다. 일단 [서울의 봄]이란 제목은 80년 5월 15일 서울역 회군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광주 학살의 간접적인 원인이 된 이 일로 인해 1212 군사 쿠테타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그 사건 말이다. 결국 오지 못한 '서울의 봄'을 제목으로 쓴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으니 이 답은 나중에 영화를 본 후에 더 고민해봐야겠다.


이 영화는 결국 내란이 성공해 군대 내부 일부 장교들의 사조직이었던 하나회와 그 수장인 전씨가 권력을 손에 넣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게다가 대체로는 실제 역사적 사건의 흐름을 담아냈겠지만, 일부 내용은 현실과 다르게 그렸다고 들었다. 이미 성공한 군사 쿠테타를 세부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 폭도들을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거둔다. 비록 전씨와 노씨는 죽었지만, 당시 쿠테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폭도들 중 다수는 아직 막대한 부와 권력을 틀어쥐고 잘 살고 있다. 혹시 이들은 이 영화를 보며 자랑스럽게 자신의 무용담을 떠올리지는 않을까? 특히 저 내란을 주도했던 폭도들의 두목인 전씨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어떻게 보면 이런 생각은 좀 과한 것일 수 있다. 다만 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영화라는 틀로 담아낼 때 그 영향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불재? 누칼협?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내가 속한 여러 조직들은 서로 어울려 노는 자리에서 초성 퀴즈를 자주 하곤 했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내가 초성 퀴즈를 잘 할 거라고 예상하며, 문제가 나오면 나를 보곤 했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초성 퀴즈를 정말 잘 하지 못했다.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의 뇌는 초성만 가지고 그에 맞는 특정 단어를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몇 년 동안 종종 초성 퀴즈를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순발력이 좋은 몇몇 사람들이 유난히 잘 맞추는 것을 깨달았다. 약간의 선입견을 갖고 말하자면 저들은 그다지 어휘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암튼 그랬다.


초성을 단어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과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분명 아는 사람이 맞는 것 같긴 한데, 그가 누구인지 얼른 기억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아주 친한 사람과 가족들의 얼굴을 못 알아보기도 했었다. 어쩌면 나는 시각적인 정보를 빠르게 내가 아는 정보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초성 퀴즈에 유난히 약한 것처럼 줄임말에도 약한 편이다. 아, 그런데 초성 퀴즈는 눈으로 보고 단어를 유추하는 것이라 시각 정보가 중요한 것이 맞지만, 줄임말은 기본적으로 발음으로 단어를 유추하는 것이라 또 성격이 다르긴 하다. 둘 다 전체 정보가 바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부 정보만을 제한적으로 제공한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물론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널리 퍼지는 줄임말들이 있고, 이미 익숙해진 줄임말은 읽거나 듣는 순간 바로 본 뜻과 연결된다. 다만 요즘은 젊은? 아니 어린? 암튼 육체적 나이로든 문화적 나이로든 나이 차에 따라 유행하는 줄임말의 숫자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아, 내 지인들이 내가 초성퀴즈를 잘 할 거라고 오해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상식 퀴즈와 같은 것들을 상대적으로 잘 하기 때문이다. 한때 국문과 전공이었다는 점, 편집자였다는 점 등이 그런 오해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와 친한 다른 국문과 전공자와 편집자들도 초성퀴즈는 썩 그리 잘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것과 그것은 크게 관계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아이들이 대화할 때 전혀 모르는 단어가 들리곤 한다. 그 뜻을 물으면 아이들은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는 외국어 아니 외계어라도 들은 느낌이 든다. 큰 아이의 자세한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안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 다른 적절한 표현이 분명 있을텐데, 왜 저렇게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 표현을 일부러 쓰는 걸까? 저 아이들은 모두 저 표현의 정확한 표현을 알고 쓰는 걸까? 하고 궁금해지기도 한다.


오늘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저 두 단어를 보았다. 스불재와 누칼협. 전혀 뜻을 짐작할 수 없는 단어였다. 평소 하는 것처럼 검색을 해 보려다가 한번 맞춰보고 싶어서 조금 생각을 해봤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연관되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검색 대신 댓글들을 읽었다. 댓글들 중에도 정확한 뜻을 알려주는 것은 없었다. 한 절반 정도는 나처럼 그게 뭐냐는 질문을 남기고 있었지만, 아무도 알려주지는 않았다. 음, 결국 검색을 해야겠네 하며 새 창을 띄우려다가 갑자기 어떤 느낌이 떠올랐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이것저것 떠맡은 일들이 많아 여러가지 일들의 마감에 쫓기고 있다는 뉘앙스의 글을 쓰면서 저 두 단어를 썼다. 갑자기 누칼협의 칼이 그 칼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누가 칼로 협박한 것도 아닌데' 라는 말이 떠올랐다. 스불재는 좀 더 고민하다가 갑자기 신해철 형님의 노래 가사가 문득 떠올랐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 즉, 시시각각 다가오는 여러 원고 마감에 쫓기는 이 상황이 남 탓이 아닌 제 탓이란 의미다.


여기까지 이해하고 나니 동지를 만난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나 역시 딱히 원하지는 않았지만, 또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은 이런저런 일들을 자주 떠안는 편이라 동시에 여러 개의 마감에 쫓기는 일이 잦다. 내일은 아이들과 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는데, 월요일 오전까지 마쳐야 할 일을 아직 절반도 못 했기 때문에 이 새벽까지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일하다 말고 약간의 리프레쉬를 위해 서재에 글을 써본다. 자, 이제 다시 일하자. 내일 운전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일찍 잠들어야지. 


마지막으로 책 이야기















어쩌다 이 책의 북콘서트 진행을 맡았다. 미리 책을 다 읽어야 재미있는 질문도 뽑고, 원활하게 진행을 할 수 있을텐데. 다가올 10일 안에 공부모임도 있어서 읽어야 할 책이 또 한 권 있다. 두 권을 최대한 빨리 읽으면서도 내용을 잘 이해할 방법을 터득하면 좋겠다. 아! 빨리 일하자. 빨리 책 읽고 빨리 대본도 작성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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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2-0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의 봄...겁나 재밌게 봤습니다.
스토리를 다 알았지만...배우들의 연기가 보는 내내 몰입하게 되더군요.
근래 본 한국영화 중 최고였습니다..^^

감은빛 2023-12-11 18:50   좋아요 0 | URL
네, 야무님.
보신 분들 모두 연기가 좋았다고 하시더라구요.
편집을 잘 했다는 분들도 계셨구요.
저도 기회를 만들어 꼭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