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이야기


매일 아침 북플이 알려주는 과거의 오늘 쓴 글들을 읽는다. 어떤 날에는 없기도 하고, 어떤 날엔 대여섯개나 있는 경우도 있다. 최근 과거의 오늘 쓴 글들을 읽다보니 김장 이야기가 하나씩 섞여 있더라. 그리고 오늘 확인해보니 4개의 글 중에 2개가 김장 이야기를 써놓았더라.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300포기 김장이 그 중 하나였다. 안 그래도 지난 주 금요일에 또 동네 채식식당 김장을 하러 가서, 그 300포기 김장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나눴다. 아마 매년 잊지않고 그렇게 자랑삼아 말할 것 같다. 아, 내가 자랑한다는 뜻이 아니라 당시에 300포기 김장을 함께 했던 분들 중 한 분이 늘 그런다는 이야기다.


이혼을 하기 전에는 해마다 김장을 했다. 아내가 채식을 하기 때문에 채식김치를 담궜다. 아주 소량만 젖갈을 넣어 담그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냥 채식김치만 만들고 말았다. 이혼하고 나서는 김장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녹색당 당원 텃밭에서 함께 기른 배추와 무로 김장을 하기도 했고, 녹색당 당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로컬푸드 식당에서 해마다 김장을 했다. 그 로컬푸드 식당이 이젠 채식식당이 되어 채식김치를 담궜다. 이 식당의 공동주인인 조합원들은 대개 비혼이거나 미혼인 경우가 많아서 김장 경험이 많은 이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매년 김장을 했던 내가 그래도 조금 익숙한 편에 속해서 일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 재작년과 작년 이렇게 2년 동안 김장 날에 못 갔다. 올해 오랜만에 갔더니 새로운 분들이 몇 분 계셨는데, 김장에 익숙한 분들이 많아졌다. 함께 웃고 떠들며 하는 노동은 즐겁다. 저녁에 회의가 있어서 딱 3시간만 일 하다가 가야 할 상황이었는데, 그 3시간 동안 거의 김장을 다 끝낸 셈이었다. 회의를 1시간 만에 빠르게 마치고 돌아와보니, 모인 사람들끼리 김장김치와 메밀전병 등을 놓고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채식식당이라 아마도 수육 등의 육식은 준비하지 않은 것 같다.


과거 해마다 그 식당에서 김장했을 때마다 정말 긴 시간 강도 높은 노동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뭐 일한 것 같은 느낌도 없을 정도로 수월했다. 역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다르긴 다르구나 싶었다. 자, 오늘도 김장 이야기를 썼으니, 내년 11월 28일에 확인하게 될 과거의 오늘 쓴 글에는 김장 이야기가 3개가 되겠네.


어떤 인터뷰


어느 프랑스 학자가 한국 협동조합 사례를 연구하는데, 우리 조합 사례를 알아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과거 협동조합 운영에 관한 강의를 요청드렸던 어느 선생님께 연락을 받았다. 그 선생님은 뭐랄까 조금 대하기 어려운 분인데, 흔히 까칠하다는 표현으로 적당할 것 같은 그런 분이시다. 암튼 연락을 받고 당연히 좋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속으로는 조금 부담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당일 그 선생님과 키가 크고 덩치가 큰 프랑스인 사내가 들어왔다. 인사를 나누고 두 사람이 내게 선물을 주셨다. 프랑스인 교수는 자기 학교 이름이 들어간 셔츠, 장바구니, 수첩, 볼펜이 포장된 꾸러미를 주셨고, 그 선생님은 최근에 낸 본인의 책을 주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보니 나는 따로 선물로 드릴 것이 없었다. 뭐라 인사를 드려야 할 지 몰라 그냥 "고맙습니다!"만 여러차례 말씀드리며 머리를 숙였다.


인터뷰를 시작하자 교수님이 프랑스어로 질문을 했고, 그 선생님이 수첩에 메모하며 대화를 나눴고, 이어서 나에게 질문을 전달했다. 나는 그에 대해 답을 했고, 그 선생님은 다시 수첩에 메모하며 내 설명에 대해 추가 질문을 하기도 하다가 이어서 그 교수님께 프랑스어로 전달했다. 그 선생님이 교수님의 질문을 듣고 내게 전달할 때에는 거의 막힘이 없었는데, 내 대답을 다시 프랑스어로 전달할 때에는 조금 머뭇거리거나 단어를 바로 떠올리지 못해 답답해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사실 그 선생님은 학자이지 통역사가 아니라서 당연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프랑스인 교수와도 친한 사이인 것 같았다. 내게 질문할 때 '이 친구'라고 표현했고, 둘이 대화를 나눌 때에도 격식없는 모습으로 느껴졌다. 나는 두 사람의 프랑스어 대화를 들으며 조금이라도 알아들어 보려고 애썼지만, 당연하게도 거의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아주 가끔 아는 단어 몇 개를 듣고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평소 언론 인터뷰나 다른 대학원생들의 인터뷰 등도 많이 해봤지만, 이번처럼 외국인이 요청한 인터뷰는 처음이어서 이 중간의 통역 과정이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주 오래전에 몽골에 사막화 방지 행사를 갔을 때 한국, 일본, 몽골 공동 행사에서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한 마디를 하면, 통역을 해 주시던 선배가 일본어로 전달했고, 그 일본어를 들은 일본어-몽골어 통역사가 몽골어로 전달했었다. 그래서 내 말들이 일본어로 바뀌고, 몽골어로 바뀌는 신기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뭐 별 대단한 말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때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암튼 평소 인터뷰를 하면 내가 쉴 틈없이 말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중간에서 말을 옮겨주시는 그 선생님이 무척 바쁘신 상황이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편하고 여유가 있었던 적은 처음이라 그것도 재밌다고 여겼다. 그 선생님이 빠르게 수첩에 프랑스어를 받아 적으며 말을 옮기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두 사람의 태도가 변했다. 내게 뭔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는데, 나로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질문을 받고 조금 당황했다. 그때부터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나는 당황한 상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땀이 자꾸 흘러서 나도 모르게 손이 목덜미와 이마를 훔치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인터뷰를 해봤지만, 이렇게 예상치 못한 질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처음이었다. 하긴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두 사람은 학문적으로 협동조합을 연구하는 사람들이고, 나는 현실에서 협동조합에 근무하는 활동가라서 처한 상황과 바라보는 방향이 완전히 달랐다. 그들의 말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타당하고 합리적이었고, 내 말은 내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다만 그 두 입장이 어떻게 왜 다른지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저 안쪽 사무실에서 인터뷰 내용을 듣고 있던 후배 활동가가 본인도 엄청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만약 본인이 질문을 받았다면 아무 말도 못 했을 거라고 했다. 살다보면 참 많은 일을 겪게 되는데, 이런 일도 겪는구나 싶었다. 무언가 서로의 입장 차이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그 차이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할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치고도 꽤 오래 곱씹었다. 내 대답이 과연 적절했을까? 그들은 실제로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미 지난 일이고 고민해보아야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만약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비 오는 저녁


낮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전라남도 쪽은 가뭄으로 인해 제한 급수가 되고 있다는데, 이 비가 그 동네에 좀 내렸으면 좋겠다. 일기예보에서 중부지방에 비가 온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비구름을 전라도 옮겨갈 수 있는 초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면서 손님 없는 가게 카운터를 지키며 이 글을 두드린다. 오늘은 월드컵 가나전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다. 지난 우루과이 전은 집에서 봤다. 티비는 없지만, 평소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태블릿으로 축구를 봤다. 큰 티비를 가진 후배가 자기 집에서 같이 볼 거냐고 물었었는데, 나가기가 너무 귀찮고 싫어서 그냥 집에 있겠다고 답했었다. 오늘은 그 후배 집으로 축구를 보러 가겠다고 미리 전했다.


비가 오는 날엔 재즈가 잘 어울린다.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 이 글을 두드린다. 방금 손님이 들어왔다가 몇 가지 상품을 조금 둘러본 뒤에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갔다. 나는 손님의 뒤통수에 대고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라고 인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내 말은 그의 귀에 가 닿겠지만, 내 행동은 그의 눈길에 가 닿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인사를 할 때 고개를 숙이는 행동은 자동으로 나온다. 마치 전화에 대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처럼.















페이스북을 둘러보다가 이 책의 표지를 발견했다. 서명숙 님은 내가 재밌게 읽고 서평을 썼던 [제주 올레 여행]의 저자이자 제주 올레길을 만든 사람이고, 현재 제주올레 이사장으로 알고 있다. 제목만 봐서는 어떤 종류의 책일지 가늠이 잘 안 되지만, 일단 서명숙 님의 글이니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 책을 알라딘에 검색해보니 제목과 저자가 같은 다른 표지의 다른 출판사 책이 하나 더 있다. 아, 개정판이구나. 목차를 살펴보니 담배를 키워드로 본인의 이야기를 펼쳐놓은 것 같다. 일단 찜해둔다.


이제 슬슬 매장 정리를 하고 축구보러 갈 준비를 해야지. 아, 우선 나도 담배 한 대 피우고 와야겠다. 거의 안 피우던 담배를 요즘 일 스트레스 때문에 또 조금씩 피우고 있다. 이러다 또 거의 안 피우는 생활로 돌아갔다가 다시 조금씩 피우는 날들로 회귀하겠지. 이 책을 보니 김형경의 소설 [담배 피우는 여자]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지금 우리 집에는 아마 없을 것이고, 부산 집에 있을 것 같은데. 엄마에게 택배로 보내달라고 할까? 아니면 새 책을 하나 살까? 모르겠다. 일단 담배 먼저 피우고 생각해봐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마요정 2022-11-29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김장 300 포기요? 굉장합니다. 허리가 나가도 수십번은 나갈 것만 같아요ㅠㅠ 채식김치는 양념에 굴이나 젓갈 등이 안 들어가고 고춧가루랑 파랑 뭐 이렇게만 들어가는 건가요? 저도 결혼 전에는 엄마 많이 도와드렸는데 오히려 결혼 하고 나서는 김장을 안 하네요. 시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다들 추억 쌓는다고 마지막으로 김장 한 번 하고는 끝이네요. 막 김장 하고 먹는 쌀밥은 진짜 꿀맛이긴 한데 너무 너무 큰 노력이 필요합니다ㅠㅠ

이론과 실재는 뭐라 할까요. 너무 가까운 것 같은데 너무 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멋지십니다. 아마 흐트러짐 없이 말씀하셨을 것 같아요!!!!

감은빛 2022-11-29 19:51   좋아요 1 | URL
네, 꼬마요정님. 채식김치니까 굴이랑 젓갈은 안 들어가고 다른 채식 재료들로 맛을 내는데, 그게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재료비가 많이 든다고 하네요. 식당에서 낼 김치라서 더 신경쓰는 거겠죠. 예전에 애들엄마는 딱히 재료를 많이 넣지 않고 담백한 김치를 담그곤 했어요.

저 인터뷰 완전 망했어요. 지금까지 꽤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저렇게 망한 적은 없었거든요. 다만 사고의 틀을 바꿔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여기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