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죽었다. 뉴스를 접하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일단은 화가 난다. 사형을 시키거나 평생 감방에 가둬두어야 할 살인마를 경호인력까지 붙여서 잘 살게 두다가 결국 자연사했다. 모든 생명은 존귀하고 존엄하겠지만, 예외가 있다면 살인마나 학살자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죽으면 안 되는 인간인데, 이렇게 편하게 가게 두면 안 되는 인간인데. 화가 난다.

강풀 작가의 웹툰 [26년]과 영화가 떠오른다. 비록 암살은 범죄이지만, 저 학살자는 암살 당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었다. 웹툰 연재 당시에도 또 이를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완성이 되어서 다행이다 싶긴 한데, 그럼에도 결말은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해는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결말로 만들기에는 엄청난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이 아쉬움은 영화 [암살]의 결말을 보고나서 더 커졌다. 그렇게 속 시원한 결말을 내주면 참 좋았을텐데.

갑자기 몇 년 전에 읽었던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책도 생각났다. 집에 아직 있을텐데,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신기하게 노태우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두환이 죽었다. 마치 따라 죽은 것처럼. 노태우는 10월 26일에 죽었다. 공교롭게도 독재자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날이다. 이왕이면 전두환이 10월 26일에 죽었으면 더 멋진 우연이 만들어졌을텐데.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학창시절 우리 집에는 전두환이 대통령 재직시절 본인 사진이 실린 우표 전체를 수록한 우표책이 있었다. 당시 나는 우표를 모으는 걸 취미랍시고 떠들고 다녔는데, 친척 어른 중 누군가가 그 얘길 듣고 구해주신 걸로 기억한다. 근데 그 분은 내가 이후 전두환을 극도로 혐오하게 되리라곤 예상 못 하셨을 것이다. 나중에 나는 그 우표책을 갈가리 찢기도 하고, 큰 우표는 문에 붙여놓고 다트를 던져 눈을 맞추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살인마이자 학살자와 같은 하늘 아래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가 추징금도 갚지 않고 황제처럼 살고 있을 때,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은 생활고에 허덕이고 살아간다는 이 부조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좀 잔인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오늘은 이 죽음을 축하해야겠다. 드디어 악마보다 추악하고 더러운 놈과 같은 하늘 아래 살지 않게 되었다. 오늘은 문어 대가리를 안주로 썰어 먹으며 술 한 잔 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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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1-25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식구는 조금이라도 슬퍼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습니다 어땠을지... 편하게 죽은 것 같군요 피해자는 그러지 못할 텐데...


희선

감은빛 2021-12-03 14:42   좋아요 0 | URL
식구라면 슬퍼했겠지요. 그 측근이라는 자들은 죽음 이후에도 망언을 계속 쏟아냈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