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보슬비 > 아름다운 강원도의 자연(설악산의 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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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아담과 하와

Creation of Adam-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510.Fresco, 280 x 570 cm.Cappella Sistina, Vatican


창세2,7-8
7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8 야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마련하시고 당신께서 빚어 만드신 사람을 그리로 데려다가 살게 하셨다.


The Creation and the Expulsion from the Paradise-GIOVANNI di Paolo c. 1445 Tempera and gold on wood, 46,4x52,1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창세3,9-24
주 하느님께서 그들을 에덴 동산에서 내쫓으셨다. 그리고 땅에서 나왔으므로 농사를 짓게 하셨다.
9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부르셨다. "너 어디 있느냐?"
10 아담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따 먹지 말라고 일러 둔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구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12 아담은 핑계를 대었다. "당신께서 저에게 짝지어 주신 여자가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 주기에 먹었을 따름입니다."
13 야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물으셨다. "어쩌다가 이런 일을 했느냐?" 여자도 핑계를 대었다. "뱀에게 속아서 따 먹었습니다."
14 야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서 너는 저주를 받아, 죽기까지 배로 기어 다니며 흙을 먹어야 하리라.
15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
16 그리고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기를 낳을 때 몹시 고생하리라. 고생하지 않고는 아기를 낳지 못하리라.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
17 그리고 아담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내의 말에 넘어가 따 먹지 말라고 내가 일찍이 일러 둔 나무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 또한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 살리라.
18 들에서 나는 곡식을 먹어야 할 터인데,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19 너는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 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 먹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 가리라."
20 아담은 아내를 인류의 어머니라 해서 하와라고 이름지어 불렀다.
21 야훼 하느님께서는 가죽옷을 만들어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입혀 주셨다.
22 야훼 하느님께서는 "이제 이 사람이 우리들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으니,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끝없이 살게되어서는 안 되겠다" 고 생각하시고
23 에덴 동산에서 내 쫓으시었다. 그리고 땅에서 나왔으므로 땅을 갈아 농사를 짖게 하셨다.
24 이렇게 아담을 쫓아 내신 다음 하느님은 동쪽에 거룹들을 세우시고 돌아 가는 불칼을 장치하여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목을 지키게 하셨다.




◎ 주님, 당신께서는 대대로 저희의 피난처가 되시었나이다.
○ 산들이 생기기 전에, 땅이며 누리가 나기도 훨씬 전에,
   영원에서 영원까지 하느님께서는 계시나이다.◎ 
○ 사람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당신께서는 말씀하시나이다,
   "인간의 종락아, 돌아가거라."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비슷하나이다. ◎
○ 당신께서 앗아 가면, 그들은 한바탕 꿈.
   아침에 돋아나는 풀과 같이, 아침에 피었다가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서 말라 버리나이다. ◎
○ 날수 셀 줄 알기를 가르쳐 주시어, 저희들 마음이 슬기를 얻게 하소서.
   주님, 돌아오소서. 언제까지오리까? 당신의 종들을 어여삐 여기소서. ◎




축일:12월24일
시조 아담과 하와
ADAM and EVE
Sant’ Adamo Primo uomo
Sant’ Eva Prima donna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창조자 하느님께 불순명한 죄로
하느님께서는 아담은 이마의 땀을 흘리며 노동하면서 살도록 하셨고
하와는 아이를 낳을 때 해산의 고통을 주셨다.
그리고 마침내 흙으로 빚은 그들의 몸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성인 성녀이시다.(성바오로딸 수도회홈에서)

아담. Adam
’사람’을 뜻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말이며 인류의 원조를 지칭하는 이름.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고(창세4장).
하느님을 불신하고 불순명함으로써 원죄를 범한 첫인간 아담은 `미래의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교회헌장 22)이요 `장차 오실분의 원형’(로마 5:14)이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골로 1:15)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둘째 아담 또는 새 아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고 죄인이 되어 죽게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무죄판결을 받고 풍성한 은총을 입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로마 5:12-21)

하와 Eva.Eve
’생명’을 뜻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말이며, 원조 아담이 자신의 아내에게 생명을 지닌 모든 인류의 어머니라 해서 붙여준 이름 (창세 3:20).
불가타(Vulgata)에서는 이를 Eva(에바)로 번역하였다.
하느님을 불신하고 불순 종함으로써 아담과 더불어 원죄를 범하였으며 이레네오를 비롯한 교부들은 성모 마리아를 `둘째 에바’라고 불렀다.
즉 "에바의 불순명이 묶어 놓은 매듭을 마리아의 순명이 풀어 주었고 처녀 에바가 불신으로 맺어 놓은 것을 동정 마리아가 믿음으로 풀었다 "고 하며,
에바와 비교하여 마리아를 `산 사람들의 어머니’라 부르고, 가끔 "에바를 통하여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하여 생명이 왔다."고 주장한다. (교회헌장 56)가톨릭대사전에서





자기 의지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자기 안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善)을
자랑하는 바로 그 사람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는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권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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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팽나무와 일몰

▲ 팽나무와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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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경계의 선상을 아우르는 '탱자'

ⓒ2004 김민수
제주하면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밀감'입니다. 하우스 귤이 요즘 나오기 시작하지만 단맛은 있어도 신맛이 조금 부족해서 맹숭맹숭합니다. 귤은 단맛과 신맛이 어우러져야 제 맛이니 모든 채소와 과일들이 그렇듯이 귤도 역시 제 철에 나는 귤이 제 맛입니다.

주워들은 바로는 귤과 탱자는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탱자나무와 교접시킨 귤이 당도도 높고 품질도 좋다고 하네요. 그러니 어쩌면 이 못생기고 시어터진 탱자가 귤의 조상뻘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무엇보다 탱자는 가지마다 성성하게 돋아있는 가시가 상징인 듯합니다. 가시는 억세고 날카롭기 때문에 감히 가까이 할 엄두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장 같은 곳에서는 소나 말이 담을 넘지 못하게 하느라고 철조망 대신 탱자나무를 심기도 했을 것입니다. 제가 만난 탱자나무도 송당의 어느 목장의 울타리 겸 심어놓은 것이었습니다.

ⓒ2004 김민수
대중가요 '가시나무' 중에 이런 노랫말이 있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 쓴 가시면류관을 보는 듯도 하고, 아니면 내 안에 가득해서 남을 콕콕 찌르는 가시 같이 느껴집니다.

당신의 쉴 곳이 될 수 있는 그 곳에 담고 있는 것으로 인해 갈등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네 마음에 무엇을 담고 살아가는가는 참으로 소중합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추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보이지 않는 마음에 관심을 두기보다 지엽적인 것들, 보이는 것들에만 연연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04 김민수
식물 중에서 가시를 달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장미과의 꽃들인데, 모양이 예쁘니 사람들이 너도나도 소유하고 싶다고 꺾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가시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바라보면 가시들이 그렇게 밉지도 않고, 나도 자신을 지킬 가시 정도는 하나 가지고 살아야겠구나 생각도 하게 됩니다. 남을 찌르기 위한 가시는 흉기겠지만 자기를 지키기 위한 가시는 그와는 다른 것이죠.

ⓒ2004 김민수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이 있습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환경에 따라 사물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똑같은 것이라도 어느 자리에 있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것이 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같은 진주라도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치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부질없는 것이요,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어떤 이에게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긍정과 부정의 경계를 봅니다. 긍정을 위한 부정까지도 부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소모적인 부정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까지 해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세상에는 긍정해야 할 일도 있고 부정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이 경계를 잘 지키는 것도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겠지요.

ⓒ2004 김민수
제주의 민중들은 참으로 많은 고난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변방의 섬이요, 유배의 섬 그리고 몽고로부터 100년 동안 압제를 받은 것도 부족해서 일제 36년 그리고 4·3항쟁, 해방 이후 6·25에 이르기까지 제주는 고난으로 점철된 역사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자기를 지킬 수 있는 성성한 가시 하나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한 연유도 있을 것입니다. 오직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열심히 땀흘리며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바람이 오히려 헛된 바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바람은 이루어져야 합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땀흘려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 이들이 희망을 품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2004 김민수
탱자나무의 꽃. 성성하게 돋아있는 가시만 보면 그 줄기에서 이토록 연한 꽃이 핀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예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부드럽지 않은 꽃, 연하지 않은 꽃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니, 새로운 것들 중에서 연하지 아니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은 굳어진 저 가시도 맨 처음에는 부드러웠을 것입니다.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기는 진리를 보는 듯합니다. 연약함 속에 깃들어 있는 강인함을 보여줍니다. 가지마다 성성히 돋은 가시를 통해서 그 연약함을 넘어 어느 누구도 감히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강함을 가진 나무가 된 탱자를 보면서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조화, 경계를 보게 됩니다.

ⓒ2004 김민수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경계를 잘 아우르는 꽃. 그러다 보니 그 속내에도 같은 마음을 담고 있어서 신맛과 단맛의 경계를 아우른 것 같습니다. 시다 못해 쓴맛의 탱자가 있을 때 단 맛을 내는 밀감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은 이것을 말하죠.

가시를 달고 있어도 예쁘기만 한 꽃을 만나려면 이제 꼬박 일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년은 하루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2004 김민수
어느 분이 이런 질문을 하십니다.
"꽃이 말을 걸던가요?"
"글쎄요…."

어떤 때는 꽃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의사소통을 하듯 분명하게 들려오는 말이 아니라 내 마음에 무엇을 담고 있는가에 따라서 다르게 들려옵니다. 미움이 가득 차 있을 때에는 그저 그렇게 심드렁하게 다가오고, 마음을 비우고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두리번거리다 보면 그들이 다가온다는 느낌 정도는 있습니다.

불혹을 넘어 남은 생애를 친구처럼 보낼 수 있는 꽃을 만난 것은 제 삶의 가장 큰 행운입니다. 어떤 분들은 빠르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지만 조금 더 일찍 이 좋은 것들을 만났다면 하는 아쉬움은 늘 있습니다. 그들을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지금보다 내 마음에 추한 것들을 더 많이 씻어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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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짧은 즐거움을 아쉬워하는 '닭의장풀'

[오마이뉴스 김민수 기자]

ⓒ2004 김민수
뜨거운 햇살이 한창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면 따가운 햇살을 친구로 삼아 피어나는 꽃들이 있습니다. 그 많은 여름 꽃 중에서 시원하게 생긴 꽃을 꼽으라면 나는 '닭의장풀'을 꼽을 것입니다.

일단 생김새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고, 줄기도 대나무처럼 쭉쭉 뻗어 시원하고, 이파리도 날카로운 듯 부드러운 예리하지만 사람의 손을 베는 일이 없고, 꽃잎도 세 장입니다. 두 장인데 무슨 소리냐구요? 아래 반투명색의 작은 것, 그것도 꽃잎이랍니다.

닭의장풀이라는 이름을 얻은 내력은 닭장근처에서 많이 자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냄새는 나지만 닭똥이 거름으로 얼마나 좋은지 농사를 지어보신 분들은 아십니다. 계분이라고 해서 옛날에는 양계장마다 쌓아두었다가 팔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사다가 잡초와 짚 같은 것들을 잘 썰어서 섞어 발효를 시킨 후에 거름으로 사용하면 그 이상의 비료가 없었습니다.

ⓒ2004 김민수
옛날 집에는 대개 마당 한 구석에 닭장이나 토끼장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닭똥과 토끼 똥을 먹고 신나게 자라던 풀들 중에 이 닭의장풀이 있었던 것이죠. 닭장 근처에서 자라던 꽃이라고 그 이름을 붙여 준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꽃과 이파리의 모양을 종합해서 보면 마치 수탉이 회를 치는 듯도 하고, 꽃잎 모양이 닭의 벼슬을 닮기도 했습니다. 이래저래 '닭'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으니 '닭의장풀'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을 것입니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닭의장풀을 기르면서 꽃이 피는 대나무라고 하며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흔하디 흔한 꽃이라도 가만히 살펴보면 예쁜 구석이 있고, 그 매력에 빠져들면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2004 김민수
닭의장풀의 다른 이름 중에서 닭과 관계 있는 것은 닭의밑씻개, 닭의꼬꼬가 있으며 다른 이름은 수부초, 압식초, 압자채, 달개비, 로초, 람화초, 압척초 등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참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흔하면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꽃인가 봅니다.

닭의장풀의 꽃말은 '짧았던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꽃이 피고 하루면 시들어 버리는 꽃, 따가운 햇살을 벗삼아 피면서도 햇살이 너무 뜨거우면 한 나절을 버티지 못하고 시들어버리는 꽃이니 '짧았던 즐거움'인가 봅니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도 '즐거움'의 묘미를 안고 살아가는 꽃이라 생각하니 우리네 인생도 어쩌면 그렇게 짧은 것인데, 온갖 근심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에 무거운 마음에 우울함이 더해집니다.

'사랑하면서 살기도 짧은 인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살기도 짧은 인생이기에 아름다운 일들을 하며 살아가기도 바쁜데 온갖 헛된 망령 같은 것들이 우리들을 사로잡습니다. 인생은 쌓아둘 수가 없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것이니 하루하루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도 소중한 일이겠지요.

ⓒ2004 김민수
봄과 여름에는 연한 잎과 줄기를 삶아 나물로도 먹고, 여름에는 줄기와 잎을 말렸다가 차(茶) 대용으로 끓여 먹기도 한다고 합니다. 일명 '달개비차' 아니면 '닭의장풀차'라고 부르면 되겠지요. 풀 전체가 한방에서 종기를 치료하는데 사용된다고 하니 닭의장풀을 차로 다려먹으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종양 같은 것들도 다 씻겨 나가지 않을까요?

이렇게 우리 민가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전해지는 이야기 없는 것이 못내 서운합니다. 물론 누군가 만들면 그것이 닭의장풀의 얘기가 되어 구전될 수도 있을 것이고, 꽃말이 되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작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들에 있는 닭의장풀은 꽃을 잘도 피우는데 집의 돌담 곁에 있는 닭의장풀은 무성하기만 하고 꽃을 피우지 않더군요. 아마도 햇살을 충분히 받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았는데 무성하게만 자라니 작은 텃밭까지 침범할 것 같아서 대충 뽑아서 밭 한 켠에 거름이나 할 요량으로 쌓아두었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리고 뽑힌 닭의장풀에서 다시 뿌리가 내리고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원래의 자리에 있던 것들보다도 더 많은 꽃을 피우더군요. 생명을 위협 당함으로 더 강인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악조건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꽃을 피우는 것, 더 처절하게 살아가는 것이 들꽃의 세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04 김민수
닭의장풀의 꽃 색깔은 파랑색이 강한 것과 보라색이 강한 것, 그리고 흰색이 있습니다. 주로 많은 것은 파랑색이 강한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보라색이 강한 것이고 흰색은 희귀하기도 하지만 한방에서는 다른 닭의장풀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합니다. 분명 어린 시절에는 보았던 아련한 기억이 있는데 아직 하얀 닭의장풀을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습니다. 담고 싶다고 다 담을 수 있으면 꽃을 찾아다니는 묘미도 덜하겠지요.

밤새워 뒤척였습니다
내게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뜬눈으로 설렘으로 밤을 지새우고 맞이한 여명
붉디붉은 햇살에 그만 화들짝 피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
소리로만 느낄 수 있었던 수많은 것들
바람, 파도소리, 새소리, 나비들의 나폴거리는 소리
까르르 웃는 개구쟁이들이 웃음소리
그들을 보면서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을 다 간직하기도 전에
하루가 저 산 너머로 붉은 눈물을 흘리며 지고 있습니다
짧/은/즐/거/움/
그러나 진정 행복했습니다.

<자작시-닭의장풀>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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