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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고한 삶을 채우는 작은 기름병 하나 ㅣ 작은 책 큰 감동 시리즈 11
질 브리스코 지음, 원혜영 옮김 / 디모데 / 2006년 3월
평점 :
"우리는 이유를 막론하고 아끼는 물건이나 소중한 사람을 갑작스럽게 잃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절대 잃을 일이 없는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 책은 바로 그 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
몇 달 전에 일어난 어떤 사건을 통해 '벼랑 끝에 선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깊은 좌절과 모멸감이 솟구치는 내내 판단력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동안 쌓아놓은 평가와 위치를 송두리째 빼앗겼다는 상실감은 감당하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 곳으로 몰아넣은 상대를 향한 증오는 최고조를 달렸다.
하지만 잃지 않은 것이 있었다. 벼랑 끝에 섬으로써 비로소 저자가 말한, 그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 출애굽기를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그 곳으로 인도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터닝포인트였다. 이젠 상대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계속해서 하나님은 벼랑 끝과 관련한 다양한 책과 성경을 통해 말씀하셨다. 이 책, 『곤고한 삶을 채우는 작은 기름병 하나 - 차고 넘치는 삶의 비밀』 또한 그런 인도하심의 일환이라고 믿고 있다. 크리스챠니티(Christianity)의 회복을 위한 새로운 출발선에 서기까지 꼬박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계 2차대전이 한창이던 때, 여섯 살 난 소녀였던 저자는 전쟁의 공포 속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쟁이 끝나고 대학생활이 시작되면서 그런 생각은 잊혀졌다. 그렇다고 인생의 의미와 채워지지 않는 불만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전부 지울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났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폭격으로 인한 죽음과 죄로 인한 죽음에서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위해 살기 위함임을 깨달았다'는 고백은 놀라운 것이었다.
저자는 과부의 기름병에 주목하고 있다. 과부는 엘리사에게 자신의 형편을 숨기지 않았다. 다 듣고 난 엘리사는 그에게 그릇을 빌려오라고 말했다. 그와 아들은 엘리사의 말에 순종했다. 그리고 그들은 빌려 온 그릇을 모두 채우는 동안 단 한 번도 마르지 않은 기름병을 보았다.
하지만 과부가 처음부터 순종에 필요한 온화한 마음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집에 도착한 엘리사에게 대뜸 그녀가 한 말은 지극히 공격적이었다. "집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요?", "당신의 종이었던 내 남편이 죽었다고요.",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 아시잖아요."
그녀에게는 먹을 것뿐만 아니라 믿음마저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녀는 부엌 찬장에 놓여있던 기름병 하나를 기억해 냈다. 그리고 그 기름병을 엘리사에게 가져왔던 것이다. 마침내 위와 같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무 것도 없던 벼랑 끝에서 그래도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있다. 그것은 과부의 예에서처럼 내게 있는 기름병이다. 저자는 기름병을 성령으로 풀이하고 있다. 처음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내 안에 찾아오신 성령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이 힘을 불어넣어 주시기 전에 먼저 한 걸음을 내딛으라는 것이다. 굶주린 과부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두말 할 나위 없이 바로 '먹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사는 당장 그것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기진맥진 해 있을 게 분명한 과부에게 이웃집에 들러 그릇을 빌려오라고 했다. 왜일까?
나에게는 분명 ‘있는 것’이 있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내게 남아 있는 기름을 다른 사람의 그릇에 부을 때 비로소 내 기름병이 목까지 채워진다는 것을 알려 주려 했던 것이다. 누가 봐도 선후가 뚜렷하다. 먼저 내 기름병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
“우리는 종종 모든 것을 이와 반대로 생각한다. 내가 밖으로 붓기 전에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내 안에 부어주시기를 원한다. 내가 행동을 취하기 전에 그분이 내게 용기를 부어주시길 기대한다. 내가 그분에게 순종하기 전에 그분이 내게 힘과 격려를 부어주시길 기대한다. 하지만 성령의 역사는 그런 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먼저 성령의 감화에 순종해야 한다. 즉 그분이 우리의 머릿속에 부어주시는 생각에 순종해야 한다.”
과부가 엘리사에게 순종해 그릇을 빌리러 나간 것처럼 먼저 마땅히 해야할 바를 행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전화벨이 울린 어느 날, 제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그의 아들이 전했다. 저자는 두 곳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먼저 해외로 나간 남편을 뒤따라 갈 참이었다. 남편과 함께 순회 사역을 하느라 지칠대로 지친 저자는 망설였다. 제니가 있는 곳까지 가기에는 그에게 주어진 몇 일간의 휴식이 너무도 짧았다. 장례식을 치를 목사와 동역자들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므로 굳이 직접 가지 않아도 문제될 것 같지 않다는 이유를 달았다. 더군다나 제니가 의식불명이라지 않은가. 설사 간다해도 알아보지 못할 게 뻔했다. 그 때 열왕기하 4장의 구절이 떠올랐다. “그는 부었더니.“ 문제는 지칠대로 지친 심신이었다. 제니에게 다녀올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한 후 그 힘이 생기길 기다리면서 차 안에 있었다. 한참만에 작은 기름병이 생각났다. 자기 기름을 다른 그릇에 채울 때 비로소 내 기름병이 온전히 채워지는 신앙의 원리를 다시금 소스라치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남의 필요를 채워라, 그러면 내 필요가 채워지리라는 것’과 ‘내게 있는 것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내게 남은 기름병을 보지 못하면 과부의 처음 상태처럼 원망과 좌절 외에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
나 또한 저자의 말대로 반대로 생각했다. 먼저 내가 힘을 얻어야 한다는 것, 나부터 먼저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맞닥뜨리면 주저앉아버렸던 것이다. 선후를 바꿔 생각하고 그대로 산 결과는 계속되는 좌절과 유사한 문제에 반복적으로 부딪혀 그 때마다 좌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을 알기까지 내겐 지금과 같은 벼랑 끝이 준비되어야 했는지 모른다.
내게 벼랑 끝은 과부의 처음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과부의 처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시작이었던 것과 같이 나의 벼랑 끝은 내 안에 있던 잘못된 신앙이 고쳐지는 시작과 다르지 않았다. 이것이 내겐 은혜였다.
이 책이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말씀을 ‘네 입을 먼저 채우리라 그런 다음 입을 열라’로 해석하는 이들 모두에게 도전적으로 다가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