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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기담 - 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 사건과 스캔들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평점 :
'경성에서 일어난 기이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성기담』은 이름만큼이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경악할만한 이야기에서 속을 뒤집는 이야기와 허탈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경성기담의 저자는 버선발을 걷어붙이고 식민지 조선에서 실제 발생한 사건을 잰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추적해간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독자로선 한 눈을 팔다가 저자의 뒷그림자를 놓쳐 허둥댈 때가 있고, 어느 순간엔 둔기로 뒤통수를 맞은 듯 어안이 벙벙해지기도 한다. 게다가 탐정이 된 듯 종횡무진 쏘다니는 저자의 필력에 휘둘리다보니 어느새 내가 그의 조수역을 맡게되더라는 이 말도 안 되는 고백 앞에 어느 누구라고 바보 쳐다보듯 하지 않을 수 있을지, 거 당하는 사람 기분 상당히 묘하다.
저자와 독자 사이의 관계를 사단내기로 작정한 모양이 아니고서야 이 책, 이럴 수 없다. 괘씸하다는 생각이 설핏 들다가도 이내 그 놈의 읽는 재미에 그마저도 사그라드는, 망할 놈의 심사를 탓해 무엇하랴. 그냥 하자는 대로 내버려 둘 밖에.
하여 빠르게 반절을 읽고 그보다 한 발 더 빠르게 책장을 덮었다. 꼴깍 넘어가는 죽음을 앞두고 넘어가려는 숨 한 번 대차게 참으면 죽음이 사라지기도 하는 듯 지가 무슨 메치니코프라고 생명 연장의 꿈을 꿀려는 모양이다. 그런다고 다음 장의 뿌리깊은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보냐.
독특한 소재가 주는 기이한 매력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없다면 어디서도 그런 맛, 보지 못할 게 뻔하다. 첫 장부터 숨가쁘게 넘어가는 ‘머리 잘린 유아’ 사건을 보고 어떻게 그런 일이 각박하기로 치자면 단연 순위를 다툴 현대가 아니라 순박함이 철철 넘칠 그 시대에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고 상념에 젖어들면 다음 번 사건에선 퍼뜩 놀라 자빠질 테니 극히 조심하길.
안동 가와카미 순사 사건. 살해범으로 몰린 조선 청년 다섯 명이 애꿎은 고초를 당하고 보상은커녕 집에 돌아갈 차비마저 없이 감방을 나서야 했던 비루한 인생살이를 가슴 아프게 쳐다보아야 한다. 식민지 시대를 살아 간 그 시대 조선인들이 일본인들 눈에 찢기고 밟히는 버러지 같았으리라는 건 배워 알았지만 이건 너무했다 싶다.
다음 장, 부산 마리아 참살 사건에 이르러선 그저 망연자실. 허망해진 눈을 떨굴 밖에 딴 도리가 없다. 조선 여인이 하녀로 나서 열심히 일한 죄밖에 더 있을 라고 주인 여자에게 난도질을 당하고만 현실 앞에 달리 무슨 말을 하랴. 그저 그 시대 조선인은 죽지 못해 살았다 할 밖에.
자라며 알음알음 들어온 백백교 사건은 예나 지금이나 사교 집단의 발흥이 어떤 결과를 빚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더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 다음으로 넘어가자. 자그마치 확인된 살인만 314건이다.
민족 대표 33인 중에 하나인 박희도 교장이 '키스 내기 화투'를 핑계로 여 제자의 정조를 유린한 사건을 좇다보면 참담한 심정이 기어코 멍울지고 만다. 게다가 그가 친일에 앞장 선 인물이라니. 민초들은 마지못해 비루한 생을 이어갔다지만 입을 것 다 해 입고 먹을 것 가리지 않고 다 먹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어찌 그리도 잘난 행실을 해댔는지 그저 앞에서 귓방망이라도 치고 싶었던 심정이 나만은 아니었을 터. 지금도 여전히 어쩔 수 없었던 친일이었다고 강변하는 이들을 보면 그것도 뚫린 입이라고 단박에 꿰매주고 싶을 뿐이다.
이 책엔 이것들 말고도 말많고 탈 많은 사건들이 참 많이도 들어 있다. 채무왕 윤택영 후작의 부채 수난기, 이화여전 안기영 교수의 애정 도피 행각, 조선의 ‘노라’ 박인덕 이혼 사건 등 이름만 들어도 별 희한한 사건들, 많기도 참 많았다.
굳이 저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 시대에 주목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그 시대의 생활상에 주목하는 것은 그 시대가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웅적인 삶이 아니더라도, 하물며 버러지 같은 인생을 그것도 비루하게 살아간 민초들의 고단한 삶에서조차 배울 것이 분명히 있음을 더불어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이들 각각의 사건을 대하면서 사건을 사건 그대로만 바라 볼 수 없었던 이유다.
한 시대가 다른 시대에게 전하려는 일깨움의 소리를 간직하는 한 이 책의 가치는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색다른 세계로 기꺼이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