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행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정조의 화성 행차를 둘러싸고 개혁 세력과 수구세력의 일대 격전이 벌어진다. 벽파의 거두 김종수 대감과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 대비를 뒷배경으로 심환지가 나서고 시파에선 채제공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는 정약용이 버티고 섰다. 그 틈을 타 옥포 선생 문인방은 백성이 주인 되는 새 세상을 꿈꾸며 동조자를 끌어 모은다.

일촉즉발의 위기감. 어느 편도 장담할 수 없다. 을묘년(1795) 2월 9일 원행을 시작으로 생사를 겨냥한 화살은 누구의 목을 꿰뚫을지 장담할 수 없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선 그들의 수 싸움이 치열하다.

과연 오세영 답다. 정조시대가 지닌 역사적 무게를 원행이라는 사실적 소재 안에 집어넣고 묵직하게 전개되는 스토리, 정립한 세력간 힘의 각축장을 박진감 있게 그려낸 나는 듯한 필치와 교과서 속에 잠자고 있던 인물들을 불러내 그들의 거친 숨소리를 마치 곁에서 듣는 듯한 착각을 시종 불러내는 생생한 인물묘사 등 어느 것 하나 그 답지 않은 것이 없다. 역사추리소설 장르에서 두드러진 족적을 남긴 저자의 환향(還鄕)은 그래서 더없이 반갑다.

최근 들어 특히 역사를 소재로 한 무겁지 않은 역사책과 역시 작가적 상상이 마음껏 나래를 펼친 소설 등 역사 관련 서적들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아울러 그런 책들의 공로로 역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또한 상당 부분 달라졌다. 과거와 같이 고리타분하다는 인상을 역사에 갖다놓기가 어색할 만큼 바뀌었다. 그런 현실을 타고 역사추리소설 분야가 새로운 소설 장르로 각광 아닌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작가들의 치열한 역사의식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철저한 고증을 밑바탕으로 한 순도 높은 역사적 안목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야기를 박진감 넘치게 끌고 갈 수 있다.

역사 소설이라는 게 역사 자체의 무게감에 우선 눌리다보면 역사수업처럼 사변으로 흐르기 쉽고, 이야기에 치중하다보면 흥미 위주로 옮겨가기가 용이하다는 걸 이젠 웬만한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간파한다. 그런 독자를 앞에 두고 얼렁뚱땅 시작과 마무리를 해보려 한들 먹힐 리 없다.

역사추리소설 작가가 모두 역사학을 전공할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역사를 소설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들은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소설 『원행』이 여타 역사추리소설과 다른 위치에 놓여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배경에 충실하려 한 작가적 신념이 작품 속에 충실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진중하다고 표현하는 것이리라. 모처럼 만에 기름진 식단을 마주하고 제대로 된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제아무리 음식 담는 그릇이 좋아봐야 담긴 음식이 입맛을 돋구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 맛깔스런 토종 음식 맛 제대로 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