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의 경제학 - 웹2.0시대의 새로운 영향세력들, 그들은 어떻게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가
폴 길린 지음, 최규형 옮김, 세이하쿠 감수 / 해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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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는 1997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 후로 블로그는 기존 미디어의 형식에 일대 파란을 불러 왔습니다. 가장 큰 파란은 어느 누구나 웹에 글을 쓰고 올릴 수 있게 된 데 있습니다. 기자 또는 학자 출신의 전문가들이 대부분 생산하던 글 마당에 일부 자리를 마련했던 초창기 블로거와 달리 요즘 블로거들은 자신의 컨텐츠를 책으로 묶어내는 데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글을 생산하는 주체의 확대가 그 파란에 수위를 점한다면 글의 소재와 주제가 확장된 것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에 이르는 충실한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양성은 각 주체들이 자유롭게 자기 존재를 알리고 의사를 전달하는 공론장이 필요한 법입니다. 하지만 신문이나 매스미디어 등의 근현대 매체들은 하나같이 일정 자격을 취득한 특정인들만이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장벽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자연 장벽 너머로 존재감과 의사를 전달하지 못한 계층은 소외되고 배제되었으며 특히 현대사회가 지식사회로 이행하면서 정보취득의 기회와 양이 상대적으로 적은 계층은 더더욱 고립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 균열을 낸 것이 인터넷입니다.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장벽 사이로 드러난 인터넷 환경은 현실세계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는 가상공간이었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또 다른 현실이었습니다.

 

버젓이 주소를 갖춘 세계. 그 속에선 어느 누구도 존재감을 잃지 않았으며 어떤 장벽도 제 구실을 하지 못했습니다. 정보는 마침내 계층을 상관하지 않고 각 주소에 막힘없이 유통되었고 소외계층의 주소에까지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정보독점이 기세를 잃은 바탕 위에 화려하게 꽃피운 것이 블로그입니다.

 

정보는 투박하게 말하면 전달하려는 정보와 취득한 정보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원활하게 유통되지 않는다면 정보는 독점 또는 과점의 형태를 띠고 특정 계층에 집중될 것입니다. 블로그는 전달하려는 정보와 취득한 정보에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정보 쌍방향성을 고도로 구현하는 동시에 주소 내 거주자들 사이에 협력적 교류를 확대함으로써 소외를 밀쳐내고 소통을 그 중심에 옮겨 놓습니다.

 

이 책, 〈링크의 경제학〉은 '웹 2.0 시대의 새로운 영향세력'의 시장 지배력을 인정한 책이라는 희소성을 갖고 있습니다. 블로거의 영향력이 확대일로를 걷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블로거들의 지위를 특정 시장을 쥐락 락하는 위치로까지 격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같은 부류의 책과 일정 부분 선을 긋고 있습니다.

 

블로거들의 입소문을 이용하는 마케팅이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것과 비례해서 요즘 시장은 블로거들에게 시사회 또는 시제품 등을 사전 점검하는 역할마저 부여하고 있습니다. 블로거들의 반응이 중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포털 사이트에서 행해진 우수 블로거 연말 시상과 막대한 시상금을 걸고 인터넷 서점과 출판사가 벌이는 독후감 모집 등 블로거들을 이용한 마케팅의 형식과 내용이 더욱 풍부해지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소비자의 위치에 머물던 블로거들이 바야흐로 시장 주도세력 또는 시장 창조자로서의 지위를 만끽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시장을 만들어내는 영향세력의 범주를 '소셜 미디어'라는 이름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소셜 미디어는 블로그를 포함해 팟캐스트, 위키, 비디오블로그 등 이미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에서 1억 이상의 운영자를 두고 있는 거대 미디어입니다. 이들 소셜 미디어는 '전통적인 홍보·마케팅 수단으로 군림했던 주류 미디어(신문, TV, 라디오)의 쇠락'과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새로운 매체 환경에 주목하고 그들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마케팅 기법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가 시장 지배력을 획기적으로 확대해 가는 시장 개척자이자 새시장을 형성하는 창설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데 따른 조치입니다. 그 기능들은 오래 전에 기업이 주도적으로 수행한 것들입니다.

 

태동 이후 20년을 갓 넘긴 청년 매체의 역동성은 일찍이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그 세를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이 조성되는 데 견인차 역할을 담당한 것이 기술발전입니다. PC 생산과 보급, 소프트웨어의 적기 개발, TCP/IP 표준 마련 등의 사용기반이 조성되지 않았다면 소셜 미디어의 시대는 조금 더 기다려야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 확대는 기술발전에 힘입은 바 큽니다. 기술발전에 이은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 확대는 양축의 바퀴처럼 서로를 끊임없이 견인해갈 것입니다.

 

저자는 기술발전과 더불어 지배력을 넓혀나가는 소셜 미디어를 기업이 직접 다루지 않는 것에 의문을 표시합니다. 저자는 단순히 블로거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전략을 넘어서서 그들이 구축한 환경, 곧 상호 연쇄망을 형성하며 링크로 결속된 쌍방향성의 다양한 양태를 적극 수용하는 차원에서 기업 블로그의 활용 가능성을 내다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기업은 자사가 생산한 제품을 홍보하고 소비자의 불만을 처리하는 단순한 흐름에 머물지 않고 소비자와 직접 소통함으로써 시장의 변화상을 기업 내부에 지속적으로 투입하고 적용하는 체계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기업이 보다 우월적 입장에서 환경과 상호 작용하던 때는 지금과 같이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활발하지 않던 때의 일입니다.

 

확연히 변화된 환경 속에서 기업 블로그는 기업 홈페이지가 수행했던 소비자의 불만 처리라는 제한적인 소통에서 벗어나 블로그가 내장하고 있는 확대된 소통의 도구로 기능하며 기업에 활로를 모색해 줄 뿐 아니라 소셜 미디어의 시장 지배력을 기업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데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시장을 바꿔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소셜 미디어의 현재상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달라진 세상. 그것은 소비자가 소셜 미디어를 장착하고 지배력을 확대해 가는 세계입니다. 향후 소셜 미디어는 제품 시장을 넘어 정부 정책 등 사회 전반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갈 것입니다. 미디어가 추구하려는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을 소셜 미디어가 실현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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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그리고 그 이후
자크 아탈리 지음, 양영란 옮김, 이종한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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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터지고 보면 다연발 총탄 세례를 받은 듯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수습할 방법은 무엇인지 궁금증이 연달아 이는 것은 정신작용의 당연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원인과 결과, 해결책을 망라하는 궁금증이 들면 그 일에 대해 해부학적 분석을 시도하게 될 것입니다.

 

우선 관련 기사와 책들을 뒤지고 여러 매체와 경로를 통해 분석 도구로 쓸만한 지식을 총체적으로 취득한 후 그것들을 조합함으로써 신뢰할만한 시나리오를 만듭니다. 그러고 나서 시나리오의 전면과 측면에 형성된 스펙트럼 내부에 견해를 삽입하고 관점을 형성하는 후속 과정을 밟습니다. 그렇게 형성된 관점이 수차에 걸쳐 유사한 일에 적용되면 통찰을 얻게되고 통찰은 자신과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며 강화됩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위와 같이 몇 줄로 요약이 가능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이뤄지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립니다. 덧붙일 것 없이 이런 과정은 다수의 시간 외에 다량의 집중력을 투입물로 요구합니다. 어떤 경우든 자신만의 관점을 형성하는 데 다량의 집중력은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아무리 시간을 많이 들인다고 해도 건성으로 일관한다면 표피적인 지식 외에 얻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어떤 일에 대해 통찰력을 갖는다는 것은 시간과 집중력이라는 양 바퀴를 고루 굴릴 줄 안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통찰력의 형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분석과정은 잘만 운용한다면 나무랄 데 없이 매끄럽습니다. 문제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시간과 집중력에 한계가 있다는 데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어느 경우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몇 장의 논술' 또는 '한 권의 책'을 필요로 할 때가 있습니다. 비록 몇 장의 논술과 한 권의 책을 고대하는 일이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려는 심사이기는 해도 그런 논술과 책이 필요한 때가 기필코 있기 마련이고 그 땐 다른 어떤 때보다 그런 논술과 책의 존재를 고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특히 복잡다단한 경제 문제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난맥상이 끝을 모르게 펼쳐진 요즘 세계경제를 보면 과연 그것이 몇 줄의 논술과 단 한 권의 책으로 정리될 성질의 것이냐고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지 모릅니다. 또한 아무리 자세하게 기술한다고 해도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수십 권의 책을 쓸 일도 아니고 그렇게 썼다한들 그 많은 책을 누가 읽겠느냐는 고민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상세한 책의 필요성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의 필요성 사이를 매울 책의 출현을 바라는 입장은 시간과 집중력의 한계라는 변수가 지속되는 한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때마침 그 간극에 가교를 놓는 책이 나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익히 앨빈 토플러와 더불어 미래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불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크 아탈리의 저작이라는 프리미엄과 주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감이 적은 분량, 사건에 대한 친절한 연대기적 서술과 정치한 분석, 향후 전망을 담은 보기 드문 저작이라는 희소성이 책에 대한 호감에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초유의 사태였습니다. 과거 어느 때든지 거의 실시간이라 할 정도로 위기가 전세계적으로 파급된 예가 없었을 뿐더러 각국이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펀더멘틀이 순식간에 무력화된 것 또한 의외였습니다. 세계화의 실체가 홀연히 현실로 나타났으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마에 겐이치가 '국경 없는 세계'의 이상을 꿈꾼 것이 1996년이니 겨우 13년만에 세계화가 눈앞에 확연히 그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9.11사태가 미국에게 정신적 충격과 함께 공황상태를 가져왔다면 이번 금융위기는 전세계에 전대미문의 당혹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무엇이 문제인지 갈팡질팡하느라 어느 나라고 분주하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로 심리적 파급효과가 상당했습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불안한 전망은 그와 같은 사실이 도래하기에 앞서 심리적인 면에 먼저 당도했습니다.

 

하루를 마다하고 요동치는 주가지수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금값, 달러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 등의 악재 앞에 각종 처방은 약발은커녕 언 발조차 녹이지 못했습니다. 돌파구가 전혀 없는 상황. 파국은 불을 보듯이 뻔하게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후로 한달 여가 지난 지금, 여전히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단지 숨만 돌릴 수 있었을 뿐입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 볼 여유를 조금 찾은 듯합니다.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이 촉발한 금융위기의 원인과 상황, 전망과 대처방안에 관해 이젠 전문가뿐 아니라 위기 국면에서 가장 크게 곤란을 겪은 일반서민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자세한 내막에 관한 정보가 필수적입니다.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들려줄 몽학선생이 필요한 때에 그 역할을 이 책, 〈위기 그리고 그 이후〉가 충실히 해내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후한 점수를 줘도 무방할 것입니다. 책은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나간 위기가 주는 교훈'을 시작으로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자본주의가 사라질 뻔한 날', '앞으로 닥칠 위협', '위기와 위기 해법의 이론적 토대 : 서로 모순되는 민주주의와 시장의 요구', '긴급 대책', '최후의 경고, 미래의 약속'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이 책의 미덕은 사태의 전체적인 조망을 가능하게 한 저자의 통찰에 전부 돌릴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제1장과 제2장에 대부분의 공을 돌리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 같습니다. 위기 상황이 일어난 배경과 전개과정은 전망과, 향후 계획 등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기본적인 토양일 뿐 아니라 선후관계를 규명하는 시초가 된다는 점에서 우선 탐구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실을 바늘귀에 꿰지 않고 땀을 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1장과 제2장을 주의 깊게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책은 공교롭게도 출발선을 떠나 도착점에서 그치는 직선적인 서술 방식을 채용하지 않고 도착점에서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와야 하는 순환구조를 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독자는 어느 때보다 세밀하게 도입부라 할 수 있는 제1장과 제2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태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충분히 습득할 토대를 마련하는 일은 다음 장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저자는 이번 위기상황의 원인을 산업진흥과 재정정책을 통한 적자해소방식을 폐기한 데 두고 있습니다. 근인(近因)을 말할 것 없이 원인이 결과한 무분별한 통화남발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분석과 다를 바 없습니다. 조금 다른 점은 저자가 실현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기 힘든 세계정부의 창설을 구상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기축통화를 지닌 일국 정부의 자의적인 집행과 독단적인 처리 때문에 빚어진 위기라는 판단에서 저자는 세계정부가 다국의 목소리를 담아내면 최소한 독단에서 비롯한 위기는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세계정부'를 통해 실현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수만큼이나 다양할 각국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관심 사안에 각국을 동일한 테이블에 앉힐 묘책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에서 그의 세계정부는 당분간 유토피아적 상상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브레이크를 잃고 무한 질주하는 열차'를 막을 방법을 모색한다는 차원에서 그의 주장은 곱씹을 만합니다.

 

상황은 극히 유동적이지만 저자의 미래전망은 대체로 긍정적입니다. 그는 1637년의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몰아친 튤립 구근 투기의 처리와 이후 전개과정을 일례로 들고 있습니다. 그 사건은 지금의 경우와 유사하게 전 유럽을 경악과 공포로 몰아가며 공황에 버금가는 충격을 안겨줬지만 네덜란드 7주 연합이 위기전환을 위해 전력투구한 결과 이후 반세기 동안의 경제호황이라는 화려한 서막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런 예는 많지 않습니다.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지지 않는 해’와 같았던 경제거점이 실기와 정책적 판단의 잘못으로 다른 곳으로 옮겨간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1620년의 제노바, 1890년의 런던이 그런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경제의 중심지라고 하는 뉴욕은 그 명성을 끝끝내 유지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다소 길게 상황변화에 대한 대응방식과 거점이동의 상관성을 역사적으로 고찰한 이유는 경제강국의 중심 뉴욕조차 안심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상황에 안일하게 대응하고 미온적인 처방을 내놓을 때 과거 제노바와 런던이 그랬던 것처럼 경제 중심이 빠르게 이동하게 된 사실이 반면교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위기가 기회가 되려면 체질개선과 구조조정 등의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당장 그와 같은 노력이 실물 경제에 위험신호를 보냄으로써 생산 및 소비 등의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 아시아 경제 위기 때 아시아 각국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의 경우도 위험이 감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위험 사실을 공지하지 않고 정부 차원에서의 방어를 시도하다 결국 시기를 놓친 측면이 많습니다. 과거와 사뭇 달라진 불안한 경제를 저금리로 지탱해야 하는 남모를 고민이 있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저금리 정책을 고수할 경우의 장단기적 전망에 따라 미래를 대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어느 경우든 관성은 무섭습니다. 결말이 나야 비로소 멈추는 관성의 성질을 간파하지 못하면 원상태로 돌이키지 못합니다. 비록 돌이킬 수 있다고 해도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경제의 회생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체 통화의 구축과 대안 세계화에 대한 모색이 타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이유도 그런 시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당분간 세계는 자국 경제의 재구조화와 재조정이라는 터널을 지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터널이 보기보다 길고 생각보다 컴컴해도 돌아 나올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스르면 상황은 절망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네덜란드 6주처럼 이 위기를,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추진할 수 없었던 ‘굴절된 경제구조’를 혁파할 기회로 삼아 관련 정책을 강력히 추진해야 합니다. ‘공황이냐’ ‘재도약이냐’를 결정하는 기준은 때로 국가경제 전체에 고통을 안겨줄 그런 정책을 얼마나 내실 있게 추진하느냐로 판가름 날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처방이 미국에 한정된 처방이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 또한 사생결단의 의지를 갖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다대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탄탄한 경제구조, 내실 있는 경제토대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세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 결과든 지구촌사회의 이상을 구현한 결과든 일국 중심주의 경제체제를 오래 전에 벗었습니다. 그 사실은 미국의 금융위기와 그 확산을 통해 충분히 목도한 바 있습니다. 일국의 금융 위기가 거의 실시간이라고 할 정도로 세계 각국에 고도의 영향을 끼친 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 세계경제는 마치 단일경제처럼 운용되고 있습니다. 각종 산업의 균형 있는 발전을 통해 국부를 키우듯이 세계경제 또한 각국이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을 고도화하여 상생을 도모하는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저자의 주장이 원론적인 수준이라는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 전과 다른 위기상황에서는 근원으로 돌아가 바탕을 세밀히 살펴야할 필요성이 크다는 점에서 그 주장을 전부 이상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이론이 견고하게 구축될수록 실천을 보다 탄력 있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진단과 전망에 이은 처방이 힘든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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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를 버려라
제임스 터크, 존 루비노 지음, 안종희 옮김 / 지식노마드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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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의 위세가 예전만 못합니다. 과거 수년 동안 쌍둥이 적자와 엔론사태, 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에 이은 미국발 금융위기 등 굵직굵직한 사건사고를 겪은 미국의 현상태를 달러의 경제적 위상 하락의 주범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실기를 만회하려는 전략, 정확히 말하면 남의 나라에 전가하려는 정치적 책임 회피 전략은 마찬가지로 예전만 못한 세계경찰의 지위를 갖고는 허명만 얻을 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힘에 부쳐 보입니다.


공장 설비 및 인력 채용, 관련 시장 개척 등 생산비 부담을 벗고 3차 산업을 통해 그 이상의 부가가치를 생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만성적인 적자를 해소하려는 미국의 세계시장화 전략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옷을 입고 화려하게 등장한 바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미국 외의 국가에 당초 미국이 벗으려고 한 공장을 세우고 굴뚝을 가동하는 등의 생산비 부담을 전가한 바탕 위에 미국 주도의 고부가가치산업에 자국 시장을 내주는 구도로 전개되었습니다.

첨병은 각종 FTA입니다. 투박하게 표현하면 FTA는 미국에 없는 1, 2차 생산물을 받아들이되 각종 금융기법과 변호, 의학 서비스 등 미국이 비교 우위 또는 절대 우위를 점하는 3차 산업은 상대국가에 강제하는 장치입니다. 표면적으로야 일대일 대응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질은 대응하는 가치의 차이에 그 방식의 맹점이 있습니다.


‘3차 산업’을 ‘고부가가치산업’이라고 부르는 데서 그 이유의 대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어느 것 하나를 받기 위해 열개에 해당하는 무엇을 주어야 한다면 당연히 일방은 큰 손실을 보게 됩니다.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생산비를 투입하고 노동력을 투입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비용을 전부 감당하기엔 경제구조가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대국은 장단기적으로 미국에 종속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변형된 경제 침략’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게 된 배경입니다.


기왕에 체결한 FTA를 유지하기 위해, 근본적으로는 계약 내용을 파기할 경우 부담하게 될 막대한 비용을 피하기 위해 상대국은 자국을 상대로 고혈을 짜내야 하는 극한에 내몰리게 될 것입니다. 가속화할 정치적 불안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경우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결과적으로 보면 세계가 상당 부분 신자유주의라는 어둑서니에게 몸통 대부분을 잠식당하면서도 그것이 대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힐 때 한 사건이 터짐으로써 대안을 찾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는 말이 썩 어울리지는 않아도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엔 적당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이 자랑하던 3차 산업 중 화려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첨단 금융기법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첨단기법은 배태적으로 사람의 접근을 용이하지 않게 함으로써 사람이 변형을 가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첨단이 고도화하면 고도화할수록 사람의 정상적인 통제수준을 벗어나 통제불능의 상태가 가속화하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바로 그 문제가 이 사태에 폭력적으로 관철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법 활용자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의 근원이 아닙니다. 첨단의 허울이 어떤 상황에서든 ‘정(正)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부추긴 것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꺼풀 벗겨보면 첨단 위에 첨단이 얹혀짐으로써 결과적으로 구조가 복잡다단해져 시스템을 구축한 사람조차 그 구조의 전부를 꿰뚫지 못하게 된 데 문제의 본질이 있습니다.


검증할 수 없는 시스템은 도덕적 아노미를 불러냅니다. 기왕에 비우량주택담보대출로 ‘남의 돈이니 무조건 쓰고 보자’는 도덕적 해이의 일단을 경험한 미국이 그마나 부실한 대출이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없는 비우량주택담보대출과 달리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전자적 금융 거래에 손을 대기가 얼마나 쉬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과거 수년 동안 연이어 터진 사건사고로 미국의 정치 경제적 위상은 현격히 하락했습니다. 미국의 위상을 대표하는 달러화의 추락은 보다 가속화할 것입니다. ‘달러를 버려라’는 저자들(같은 이름의 책, 〈달러를 버려라〉를 쓴 제임스 터크와 존 루비노)의 주장은 달러화의 현실을 전격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관철된 신자유주의의 부(否)의 부산물이 곳곳에 쌓여있어 신자유주의를 한순간에 허물기엔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는 이유가 당분간 달러화의 명맥을 유지해 줄 전망이지만 달러화에 대체재화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과도기적인 역할 이상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말은 직접적으로 달러화에 기축통화로서의 지위에서 연착륙하도록 권고하는 측면 또한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미국을 향해 현 상태의 지위 하락을 받아들이고 그 범위 내에서 운신의 폭을 조정하라는 뼈아픈 충고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과욕은 필연코 보다 큰 실기를 불러오고, 그럼으로써 치명적인 내상을 입히기 마련입니다.


이제 다층위적인 눈으로 세계를 바라봐야 합니다. 미국의 눈이 세계를 보는 유일무이한 프레임이던 시대는 갔습니다. 세계는 이미 다양한 창으로 재편되어 있습니다. 경제블록이 그 창의 다양성을 표창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창은 EU와 메르코수르 등을 위시해 수개의 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들 각각의 창은 대립관계에 있으면서 상호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세계는 상호관계 또는 정립관계 등 다자 구도가 형성되었을 때 자신을 보다 우월한 정체(政體)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지나친 경쟁은 ‘자원의 이중 투입’이라는 악영향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효율적 배분’이라는 호재를 불러내기도 합니다. 효율적 배분은 파이를 나눠 먹는 상황을 전제합니다. 어느 하나가 독점할 수 없는 파이는 균등 분배될 것입니다. 그러자면 상황에 대한 인식이 필수적입니다. 변화된 경제 환경은 미국에게 더 이상 벼슬을 꼿꼿이 세운 최고의 싸움닭이라는 명성을 허용치 않습니다. 내상을 입어 긴급 수혈이 필요한 미국은 거동이 자연스러울 때까지 몸을 추슬러야하는 병든 닭일 뿐입니다.

 

저자들에게 듣는 미국의 현실은 이렇습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더 커지고, 화폐공급은 점점 더 빨리 증가하고, 변형파생금융상품수지(exotic derivative balances)가 2배 이상 늘어났으며, 이라크 전쟁과 다른 국가에 대한 개입에 따른 비용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제 세계도 이러한 미국의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2006년 주택경기 거품이 터졌다. 2007년에는 유동화증권시장이 붕괴했다. 2007년에는 대부분의 다른 통화에 비해 달러의 가치가 떨어진 반면, 정부의 조폐기관에서 발행하지 않은 화폐인 금이 1980년의 최고 기록에 육박했다.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은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외국환보유자산으로 달러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단지 달러 가치의 추가 하락이 아니라, 달러의 붕괴가 연출될 무대가 이제 마련된 셈이다."

 

이 책의 원제가 '달러의 붕괴와 그 상황에서 이익을 얻는 법'(The collapse of the dollar and how to profit from it) 인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습니다. 2003년 이미 달러의 추가 하락이 아닌 붕괴를 예견하기 시작한 그들의 논조는 자신감이 넘칩니다. 화폐의 사적(史的) 관계를 치밀하게 연구하고 그 속에서 화폐 몰락의 역사를 '로마부터 현대까지' 핀셋으로 촘촘히 골라낸 그들은 동일한 조건에서 달러의 몰락 조짐을 읽어냈을 것입니다. 난공불락의 달러. 그러나 그들에게 달러는 과거 여느 통화와 다를 바 없는 화폐 중의 하나로 성큼 눈앞에 다가왔을 것입니다. 미국의 1인당 부채와 국내총생산(p8),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과 부채(p44, p46), 미국의 무역적자(p58), 미국 달러의 가치(p97)등 그들이 인용한 각종 도표가 그들이 주장하는 바에 과학적 기초를 부여하고 있어 더욱 그런 확신에 탄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다만, 금 관련 권위자이자 투자 전문가인 저자들의 독특한 이력이 오히려 그들의 주장을 지나치게 금과 관련 지으려는 과욕을 불러낸 점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전망한 달러 붕괴의 조짐이 옅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6년 전에 달러화의 가치 하락과 금값의 고공행진을 예측한 바 있습니다. 당시 그들이 자신들이 낸 전망과 관련하여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들이 달러를 여느 화폐와 동질의 가치를 가진 화폐라는 독특한 시각-과거에도 여러 번 달러의 위상하락 조짐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달러는 기축통화라는 명성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달러를 달리 본다는 것은 사실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독특한 시각-으로 화폐의 역사를 되짚은 점은 높이 살만합니다. 

 



1장, '왜 달러가 몰락하는가'는 달러의 현재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화폐를 무한정 찍어낸 미국의 선택은 미국을 지탱하던 달러의 위상 약화라는 원치 않은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부채를 막기 위한 정상적인 노력을 거두고 기축통화에 기대어 사태 해결을 지연한 책임은 고스란히 미국의 몫입니다. 앞서 언급한 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와 미국발 금융위기 등 각종 대형사고는 잘못된 선택의 스펙트럼 내에서 연쇄적으로 폭발한 행성과 같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위기 상황은 적절한 처방의 시기를 한참 벗어나 있는 듯 보입니다.

 

제2장, '화폐의 어제와 오늘'은 불환화폐 등장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사적(史的) 검토 부분입니다. 이 장의 핵심은 서문에 밝힌 다음의 글에 전부 담겨 있습니다. '정치가들은 찍어낸 지폐로 유권자의 표를 사기 위해 지폐를 남발한다. 이처럼 화폐원리가 무시될 경우 과도한 통화발행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가 화폐의 가치가 떨어져, 결국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 화폐를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된다. 과거 역사에서는 이런 일이 특정 시대에 한 나라에서만 발생했지만 오늘날 이런 사태는 세계 모든 곳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가 그러한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 향후 수년간 엄청난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며 그 와중에서 사람들은 불환화폐가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모두 그것을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다.'(p10, p11) 불환화폐는 '정부가 발행하고 관리하는 화폐로 외적으로 명시된 화폐발행 기준이 전혀 없습'니다. 미국이 무한정 발행 유혹에 쉽게 넘어간 이유가 바로 불환화폐의 위와 같은 특성에서 비롯합니다. 달러가 화폐의 기본원리 무시→과도한 통화발행→화폐 가치 하락→사용 폐지로 이어지는 직선주로를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물론 저자들은 극히 비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3장, '금 가격이 치솟는다'는 위기가 기회라는 소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투자처를 찾고 있던 투자자라면 솔깃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달러가치 하락의 시기에 금값은 대폭 상승으로 화답했습니다. 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기축통화의 본질이 수년간 금값의 상승을 부추겼던 일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 틈새를 파고들어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입니다. 이 장을 통해 저자들은 금값이 치솟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주장에 신빙성을 더하고 투자가치로서 금의 지위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투자 전문가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저자들의 실제 투자 지침은 제4장에 대부분 담겨 있지만 달러붕괴와 금값 상승 기조를 다음 장에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제3장의 의미 또한 가볍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4장으로 가는 입문의 장으로 제3장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론적 틀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제4장, '달러 붕괴를 기회로 바꾼다'는 현실인식과 그 현실에 적용 가능한 이론을 갖춘 투자자가 입맛을 다실 상차림을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투자 부적격 시기라고 규정한 금융위기의 국면에 투자자들은 투자처를 찾는 데 크게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관망이 대세라고 믿고 있다가 본의 아니게 낭패를 볼 수 있는 때이기도 합니다. 투자자들이 고루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시기에 저자들이 공격적 투자 본능을 드러낼 수 있던 배경은 현실에 대한 정치한 분석과 적중률 높았던 전망 때문입니다. 저자들은 공히 투자정보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을 만큼 실무에 능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장에서 일반 투자자와 공격적 투자자를 모두 겨냥하고 있습니다. 일반투자자를 위해 금을 소유하거나 광산기업 주식을 사들일 것을 주문하는 한편 고위험 고수익 선호 투자들에게 공매도와 옵션, 마진 전략을 적극 추천하고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제4장 말미에 언급한 '디지털 금'은 음미할만한 아이디어를 내장하고 있습니다. 달러화에 연동되지 않는 금, 달러화의 가치 하락에 영향을 덜 받는 금의 이상을 '디지털 금'이 보여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대로 '전자결제 방식의 도입으로 인해 화폐의 개념이 본질적으로 하나의 정보로 축소되었다'고 하지만 그런 이상은 당분간 여건의 성숙을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의 함의는 결국 어느 경우든 사태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이성과 분석적 지식을 활용한 세밀한 통찰, 그리고 전략적 선택에 의한 과감한 투자에 핵심 키워드를 내주고 있습니다. 달러화의 가치 하락이 계속될 전망입니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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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언과 환상과 꿈을 주리라 예찬믿음 301
임은진 지음 / 예찬사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누가 봐도 멋진 크리스천이 있습니다. 각종 예배에 빠지지 않아 신망이 두텁고 직장에선 성실함으로 두루 칭찬을 받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닮고 싶어하는 그에겐 한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그 안에선 풀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도의 열매는 물론이고 한 사람을 깊이 돕지도 못합니다. 속 깊이 삶을 나누는 교제가 빠진 관계가 때때로 몸서리치게 싫습니다. 아마도 이런 크리스천에 대해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 크리스천은 나와 가까운 사람일 수 있고 또한 나 자신일 수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디모데후서 3:5) 어느 때든 모양은 갖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능력은 내게 속한 것이 아니므로 가장할 수 없습니다. 설혹 그렇게 한다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미 그로 인해 공허한 마음이 자리 잡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신물이 날 정도일 텐데 말입니다.

 

신앙은 실제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 말은 실제 삶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로 풀어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이릅니다. 이런 뜻에 따르면 과연 우린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진리되신 말씀이 내 안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그런 변화가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믿음의 파동이 배에서 생수처럼 흐르고 있습니까?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한복음 7:38)

 

그렇지 않다면 나와 당신은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난 후 전적으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선언을 나에 대한 것으로 믿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로 내 안에 풀어지게 됩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한복음 19:30)

 

이 책은 성령께 사로잡힌 임은진 사모가 발로 쓴 글입니다. 2004년 7월 성령님을 만나 후 그는 수많은 간증집회와 부흥회를 인도하며 지금도 성령께서 말씀하시고 일하심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런 생각은 결국 하나님은 과거에 말씀하셨지만 지금은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말씀하셨다면 지금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우린 지나치게 하나님을 성경에 전부 가둬두려 합니다. 이미 하나님은 성경에 모든 말씀을 두셨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곳에서 그런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오십니다. 사모하는 자를 통해 당신을 풀어내십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아가서 7:10) 이 책은 성령님과 동행한 한 크리스천의 믿음의 기록이자 믿는 자와 함께 하신 성령님의 행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 약속은 믿음으로 얻습니다. 성경은 있지만 성경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 어떤 사람에게 그 약속은 '기억에서 사라진 빛 바랜 보증서'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사도행전 2:17)

 

성령님께 당신을 맡기십시오. 당신 또한 저자처럼 성령님께서 놀라운 일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라는 부정적인 생각은 내려놓으십시오. 그런 생각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거절하십시오. 다만 믿는 자가 되십시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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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
박영봉 지음, 신한균 감수 / 진명출판사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장인(匠人)에 대한 존경심이 살아있는 곳에선 공존이 자연스럽습니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가치가 교과서 밖에서도 경중 없이 통용됩니다. 우린 그런 사회를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라고 부릅니다. 안타깝지만 우린 아직 그런 사회에 도달해 있지 못합니다. 펜대를 굴리는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너무 높은 것이 현실입니다. 여전히 기사를 '공돌이'라는 비칭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인문학에는 사람이 몰리지 않습니다. 같은 펜대를 굴려도 돈이 되는 펜대를 선호하는 우리 사회의 그늘은 경상계열 지원자 수가 가파르게 오르는 현상으로도 증명되고 남습니다. 요즘 같아선 경상계열을 나온다고 취직이 보장되지 않아 그마저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보니 사회가 전반적으로 우왕좌왕하기를 멈추지 못합니다.

 

직업이든 장사든 어느 것이 잘 된다 싶으면 쏠림 현상이 크게 일어나는 우리 사회를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를 우린 위험 사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위험 사회의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대형참사와 사건사고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재(人災)가 그 징후입니다. 장인정신이 사라진 곳엔 질 높은 설비와 애정 어린 보수(補修)가 없습니다. '겉보기 좋게 시공하고 돈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얄팍한 생각이 불러오는 것은 받은 보수의 열 배, 스무 배가 넘는 사회적 비용의 부담이라는 복병입니다.

 

우린 어느 때보다 장인 정신이 아쉬운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가업으로 이은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그 일에 뛰어드는 청년이 존중받는 사회, 그것이 아니라도 청소년기에 품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선호도가 낮은 학과를 기꺼이 지원하는 이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는 사회, 물질적 보상과 정신적 보상에 다른 가격을 붙이지 않는 사회의 기반은 장신정신의 함양과 고착화에 있습니다. 그것은 장차 우리 사회가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일은 선언해서 그칠 일이 아닙니다. 정부 차원에서 장인에 대한 우대 시책을 꾸준히 개발하고 장인이 존중되는 사회적 분위기 확산을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하며 사회적으로는 장인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자생할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아줘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일은 단시일 내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오랜 시일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하기만 하면 차츰 나아질 테고, 그러다 보면 언제인지 모르게 정착될 것입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의 의미가 지금처럼 절실한 때가 있을까 싶습니다.

 

이 책, 〈요리, 그릇으로 살아나다!〉는 내외의 격변으로 새로운 가치의 창출과 전사회적 리빌딩이라는 요구에 직면해 있는 우리에게 장인의 존재감이 지니는 무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에겐 장인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이 있습니다. 장인을 우러러보는 한편으로 홀대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장인이란 무엇인가 고리타분하고 아집에 두루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고식적인 답을 쉽게 떠올립니다. 그렇다보니 어느 누구도 장인이 되려고 하지 않으며 설혹 장인의 반열에 오른다해도 사회적으로도 지위가 부실할 뿐 아니라 직업적으로도 안정감이 낮아 가난을 대물림하는 대표적인 계륵이라고 치부되기 일쑤입니다. 자연 장인 스스로도 자부심을 갖지 못합니다.

 

하지만 가까운 일본은 우리와 전혀 다릅니다. 가업을 대물림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고 적절한 보수가 있으며 자부심 또한 대단합니다. 무엇이 그들을 우리와 다르게 만들었을까? 전 이 책을 읽기 전에 그 동안 들어왔던 답을 버리고 백지 상태에서 그 답을 찾기로 작정했습니다. 책은 수많은 장인 중에서 그릇을 만드는 장인에 한정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지만 어느 분야든 한 분야에 일생을 바친 장인이라면 그의 말은 새겨들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에 설프게 기대감을 낮춰 잡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다짐은 적절했습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요리를 해도 그것을 담을 그릇이 죽었다면 소용없다. 나는 살아있는 그릇, 죽은 그릇이라고 말한다. 그릇을 선택하는 것이 번거롭고 엄격하다고 말하지 말라. 그릇을 사랑하고 다루는 일을 즐겨야 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요리와 그릇은 하나로 맺어지게 된다. 즐거운 그릇이 된다면 요리도 즐거운 것이 된다. 이것은 마치 차의 양 바퀴와 같은 것이다."(기타오지 로산진, 北大路魯山人, 1883-1959)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습니다. 꼬장꼬장한 장인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혼신을 다해 일에 집중하고 기어코 한 방울의 땀까지 아낌없이 털어 넣는 장인의 숨결을 그 몇 마디 말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미덕은 그렇듯 독자를 장인과 독대하도록 만드는 데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장인 앞에 동일한 자세로 앉은 독자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책은 선선히 그리고 거침없이 장인의 무릎 앞으로 독자를 몰고 갑니다. 장인의 말은 작지만 깊이가 있습니다. 한마디 말로도 심장을 멎게 할 정도의 힘이 있습니다.

 

저자 박영봉은 계간 〈주변인과 시〉의 편집위원이자 양산 보광고등학교 교사로 신정희요에서 도자기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전통 도자기에 심취한 그는 수차에 걸쳐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으며 그 곳에서 음식과 그릇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데 강한 인상을 받습니다. '일본에 도자문화를 전해준 우리는 왜 음식과 그릇의 조화로움을 이뤄낼 수 없을까?' 하는 의문을 품은 그는 일본의 요리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기타오지 로산진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책은 일본의 대표적인 미식가이자 도예가인 로산진의 삶과 철학을 투박하지만 정감 어린 도자기에 정성스럽게 담았습니다. 로산진은 오늘 현실이라는 벽과 거스르기 힘든 관행에 좌절하곤 하는 우리를 향해 주류와 다른 길을 걸을지라도 중단 없이 한 분야에 집중하고 정진할 때 빛나는 보석을 얻을 수 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음식 맛은 곰삭을 때 더욱 깊어지는 법입니다. 한 인간의 삶 또한 그럴 것입니다.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으로 버려지다시피 다른 집에 양자로 보내지고 우여곡절 끝에 간판 글씨를 쓰며 체득한 서체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 좌절감을 크게 느꼈을 로산진이 그가 거쳐간 분야에 우뚝 선 데는 반드시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절대적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로산진은 서체 뿐 아니라 전각과 도자 분야에서 최고를 구가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생애 마지막까지 평탄한 삶을 살았다고 믿는 것은 예단일 뿐입니다. 로산진이 만년에 남긴 말입니다. "내 삶의 방식은 나밖에 모른다. 그것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동정도 받고 싶지 않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나의 삶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내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1백년 후의 사람들이다."(p36) 2003년 9월 교토역 건물에서 열린 로산진 전시회에 3만 5천명이 넘는 인파가 몰림으로써 100년이 아니라 50년도 되기 전에 일본 열도가 로산진 신드롬에 빠져들었습니다.

 

장인으로 산다는 것은 보기보다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요리를 담는 단순한 그릇에서 요리에 품격을 더하는 그릇의 가치에 일찍이 눈뜬 일본 최고의 도예가 로산진 조차 생애주기 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당시로선 정규과정을 밟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넘을 수 없는 성채와 같이 견고하게 보일 법한 풍토조차 그에겐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서체와 전각에 이은 도자기 분야에서 그는 차츰 자신의 안목을 예술이라는 경지에 올려놓습니다. 일본 음식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장식은 그가 음식에 관한 한 보조적인 수단 정도로 인식하던 그릇을 눈으로 보는 음식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해줄 뿐 아니라 동물적으로 소비하는 음식에서 벗어나 그것을 인격적으로 섭취하도록 이끄는 대등한 장치로 한단계 끌어올린 데 빚지고 있습니다.

 

이제 음식과 그릇은 재료의 성질만 다를 뿐 한가지로 취급받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선 비록 조그만 음식점이라도 음식을 도자기에 담아낸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천편일률적인 도자기에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음식에 어울리는 질감과 색감의 도자기를 사용한다는 데 이르면 그들의 장인 정신에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음식과 조화를 이룬 그릇, 그릇이 담아낸 격조 높은 음식의 앙상블을 일본의 음식문화가 도처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2008년 11월) 세계 각국의 음식점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잡지 '미슐랭 가이드(Guide Michelin)'가 도쿄를 '가장 빛나는 미식의 도시'라고 발표해서 화제가 된바 있습니다. 일본은 일본의 요리문화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로산진에게 그 공을 돌리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전통 도자기에 깊이 맛들인 저자의 로산진에 대한 헌정사입니다. 한 시대를 살다간 장인의 땀과 손이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 우리에게 무언의 값진 교훈을 들려준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습니다. 그 덕분에 이 책엔 활자 외에도 행간에 담긴 의미를 풍부하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 음식 문화의 현주소를 곱씹어 볼만할 때입니다. 굳이 위에 든 잡지 순위에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음식을 문화로 전환해 세계와 소통하려는 의식이 부족한 우리의 낮은 감성과 소통 부재의 현실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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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장 2009-02-16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좋은 서평입니다

박한올 2009-02-17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멋진 글이었습니다. 당첨되신 것은 당연합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