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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를 버려라
제임스 터크, 존 루비노 지음, 안종희 옮김 / 지식노마드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달러의 위세가 예전만 못합니다. 과거 수년 동안 쌍둥이 적자와 엔론사태, 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에 이은 미국발 금융위기 등 굵직굵직한 사건사고를 겪은 미국의 현상태를 달러의 경제적 위상 하락의 주범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실기를 만회하려는 전략, 정확히 말하면 남의 나라에 전가하려는 정치적 책임 회피 전략은 마찬가지로 예전만 못한 세계경찰의 지위를 갖고는 허명만 얻을 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힘에 부쳐 보입니다.
공장 설비 및 인력 채용, 관련 시장 개척 등 생산비 부담을 벗고 3차 산업을 통해 그 이상의 부가가치를 생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만성적인 적자를 해소하려는 미국의 세계시장화 전략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옷을 입고 화려하게 등장한 바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미국 외의 국가에 당초 미국이 벗으려고 한 공장을 세우고 굴뚝을 가동하는 등의 생산비 부담을 전가한 바탕 위에 미국 주도의 고부가가치산업에 자국 시장을 내주는 구도로 전개되었습니다.
첨병은 각종 FTA입니다. 투박하게 표현하면 FTA는 미국에 없는 1, 2차 생산물을 받아들이되 각종 금융기법과 변호, 의학 서비스 등 미국이 비교 우위 또는 절대 우위를 점하는 3차 산업은 상대국가에 강제하는 장치입니다. 표면적으로야 일대일 대응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질은 대응하는 가치의 차이에 그 방식의 맹점이 있습니다.
‘3차 산업’을 ‘고부가가치산업’이라고 부르는 데서 그 이유의 대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어느 것 하나를 받기 위해 열개에 해당하는 무엇을 주어야 한다면 당연히 일방은 큰 손실을 보게 됩니다.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생산비를 투입하고 노동력을 투입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비용을 전부 감당하기엔 경제구조가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대국은 장단기적으로 미국에 종속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변형된 경제 침략’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게 된 배경입니다.
기왕에 체결한 FTA를 유지하기 위해, 근본적으로는 계약 내용을 파기할 경우 부담하게 될 막대한 비용을 피하기 위해 상대국은 자국을 상대로 고혈을 짜내야 하는 극한에 내몰리게 될 것입니다. 가속화할 정치적 불안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경우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결과적으로 보면 세계가 상당 부분 신자유주의라는 어둑서니에게 몸통 대부분을 잠식당하면서도 그것이 대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힐 때 한 사건이 터짐으로써 대안을 찾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는 말이 썩 어울리지는 않아도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엔 적당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이 자랑하던 3차 산업 중 화려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첨단 금융기법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첨단기법은 배태적으로 사람의 접근을 용이하지 않게 함으로써 사람이 변형을 가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첨단이 고도화하면 고도화할수록 사람의 정상적인 통제수준을 벗어나 통제불능의 상태가 가속화하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바로 그 문제가 이 사태에 폭력적으로 관철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법 활용자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의 근원이 아닙니다. 첨단의 허울이 어떤 상황에서든 ‘정(正)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부추긴 것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꺼풀 벗겨보면 첨단 위에 첨단이 얹혀짐으로써 결과적으로 구조가 복잡다단해져 시스템을 구축한 사람조차 그 구조의 전부를 꿰뚫지 못하게 된 데 문제의 본질이 있습니다.
검증할 수 없는 시스템은 도덕적 아노미를 불러냅니다. 기왕에 비우량주택담보대출로 ‘남의 돈이니 무조건 쓰고 보자’는 도덕적 해이의 일단을 경험한 미국이 그마나 부실한 대출이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없는 비우량주택담보대출과 달리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전자적 금융 거래에 손을 대기가 얼마나 쉬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과거 수년 동안 연이어 터진 사건사고로 미국의 정치 경제적 위상은 현격히 하락했습니다. 미국의 위상을 대표하는 달러화의 추락은 보다 가속화할 것입니다. ‘달러를 버려라’는 저자들(같은 이름의 책, 〈달러를 버려라〉를 쓴 제임스 터크와 존 루비노)의 주장은 달러화의 현실을 전격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관철된 신자유주의의 부(否)의 부산물이 곳곳에 쌓여있어 신자유주의를 한순간에 허물기엔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는 이유가 당분간 달러화의 명맥을 유지해 줄 전망이지만 달러화에 대체재화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과도기적인 역할 이상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말은 직접적으로 달러화에 기축통화로서의 지위에서 연착륙하도록 권고하는 측면 또한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미국을 향해 현 상태의 지위 하락을 받아들이고 그 범위 내에서 운신의 폭을 조정하라는 뼈아픈 충고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과욕은 필연코 보다 큰 실기를 불러오고, 그럼으로써 치명적인 내상을 입히기 마련입니다.
이제 다층위적인 눈으로 세계를 바라봐야 합니다. 미국의 눈이 세계를 보는 유일무이한 프레임이던 시대는 갔습니다. 세계는 이미 다양한 창으로 재편되어 있습니다. 경제블록이 그 창의 다양성을 표창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창은 EU와 메르코수르 등을 위시해 수개의 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들 각각의 창은 대립관계에 있으면서 상호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세계는 상호관계 또는 정립관계 등 다자 구도가 형성되었을 때 자신을 보다 우월한 정체(政體)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지나친 경쟁은 ‘자원의 이중 투입’이라는 악영향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효율적 배분’이라는 호재를 불러내기도 합니다. 효율적 배분은 파이를 나눠 먹는 상황을 전제합니다. 어느 하나가 독점할 수 없는 파이는 균등 분배될 것입니다. 그러자면 상황에 대한 인식이 필수적입니다. 변화된 경제 환경은 미국에게 더 이상 벼슬을 꼿꼿이 세운 최고의 싸움닭이라는 명성을 허용치 않습니다. 내상을 입어 긴급 수혈이 필요한 미국은 거동이 자연스러울 때까지 몸을 추슬러야하는 병든 닭일 뿐입니다.
저자들에게 듣는 미국의 현실은 이렇습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더 커지고, 화폐공급은 점점 더 빨리 증가하고, 변형파생금융상품수지(exotic derivative balances)가 2배 이상 늘어났으며, 이라크 전쟁과 다른 국가에 대한 개입에 따른 비용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제 세계도 이러한 미국의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2006년 주택경기 거품이 터졌다. 2007년에는 유동화증권시장이 붕괴했다. 2007년에는 대부분의 다른 통화에 비해 달러의 가치가 떨어진 반면, 정부의 조폐기관에서 발행하지 않은 화폐인 금이 1980년의 최고 기록에 육박했다.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은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외국환보유자산으로 달러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단지 달러 가치의 추가 하락이 아니라, 달러의 붕괴가 연출될 무대가 이제 마련된 셈이다."
이 책의 원제가 '달러의 붕괴와 그 상황에서 이익을 얻는 법'(The collapse of the dollar and how to profit from it) 인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습니다. 2003년 이미 달러의 추가 하락이 아닌 붕괴를 예견하기 시작한 그들의 논조는 자신감이 넘칩니다. 화폐의 사적(史的) 관계를 치밀하게 연구하고 그 속에서 화폐 몰락의 역사를 '로마부터 현대까지' 핀셋으로 촘촘히 골라낸 그들은 동일한 조건에서 달러의 몰락 조짐을 읽어냈을 것입니다. 난공불락의 달러. 그러나 그들에게 달러는 과거 여느 통화와 다를 바 없는 화폐 중의 하나로 성큼 눈앞에 다가왔을 것입니다. 미국의 1인당 부채와 국내총생산(p8),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과 부채(p44, p46), 미국의 무역적자(p58), 미국 달러의 가치(p97)등 그들이 인용한 각종 도표가 그들이 주장하는 바에 과학적 기초를 부여하고 있어 더욱 그런 확신에 탄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다만, 금 관련 권위자이자 투자 전문가인 저자들의 독특한 이력이 오히려 그들의 주장을 지나치게 금과 관련 지으려는 과욕을 불러낸 점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전망한 달러 붕괴의 조짐이 옅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6년 전에 달러화의 가치 하락과 금값의 고공행진을 예측한 바 있습니다. 당시 그들이 자신들이 낸 전망과 관련하여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들이 달러를 여느 화폐와 동질의 가치를 가진 화폐라는 독특한 시각-과거에도 여러 번 달러의 위상하락 조짐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달러는 기축통화라는 명성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달러를 달리 본다는 것은 사실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독특한 시각-으로 화폐의 역사를 되짚은 점은 높이 살만합니다.
제1장, '왜 달러가 몰락하는가'는 달러의 현재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화폐를 무한정 찍어낸 미국의 선택은 미국을 지탱하던 달러의 위상 약화라는 원치 않은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부채를 막기 위한 정상적인 노력을 거두고 기축통화에 기대어 사태 해결을 지연한 책임은 고스란히 미국의 몫입니다. 앞서 언급한 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와 미국발 금융위기 등 각종 대형사고는 잘못된 선택의 스펙트럼 내에서 연쇄적으로 폭발한 행성과 같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위기 상황은 적절한 처방의 시기를 한참 벗어나 있는 듯 보입니다.
제2장, '화폐의 어제와 오늘'은 불환화폐 등장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사적(史的) 검토 부분입니다. 이 장의 핵심은 서문에 밝힌 다음의 글에 전부 담겨 있습니다. '정치가들은 찍어낸 지폐로 유권자의 표를 사기 위해 지폐를 남발한다. 이처럼 화폐원리가 무시될 경우 과도한 통화발행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가 화폐의 가치가 떨어져, 결국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 화폐를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된다. 과거 역사에서는 이런 일이 특정 시대에 한 나라에서만 발생했지만 오늘날 이런 사태는 세계 모든 곳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가 그러한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 향후 수년간 엄청난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며 그 와중에서 사람들은 불환화폐가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모두 그것을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다.'(p10, p11) 불환화폐는 '정부가 발행하고 관리하는 화폐로 외적으로 명시된 화폐발행 기준이 전혀 없습'니다. 미국이 무한정 발행 유혹에 쉽게 넘어간 이유가 바로 불환화폐의 위와 같은 특성에서 비롯합니다. 달러가 화폐의 기본원리 무시→과도한 통화발행→화폐 가치 하락→사용 폐지로 이어지는 직선주로를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물론 저자들은 극히 비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3장, '금 가격이 치솟는다'는 위기가 기회라는 소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투자처를 찾고 있던 투자자라면 솔깃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달러가치 하락의 시기에 금값은 대폭 상승으로 화답했습니다. 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기축통화의 본질이 수년간 금값의 상승을 부추겼던 일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 틈새를 파고들어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입니다. 이 장을 통해 저자들은 금값이 치솟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주장에 신빙성을 더하고 투자가치로서 금의 지위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투자 전문가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저자들의 실제 투자 지침은 제4장에 대부분 담겨 있지만 달러붕괴와 금값 상승 기조를 다음 장에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제3장의 의미 또한 가볍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4장으로 가는 입문의 장으로 제3장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론적 틀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제4장, '달러 붕괴를 기회로 바꾼다'는 현실인식과 그 현실에 적용 가능한 이론을 갖춘 투자자가 입맛을 다실 상차림을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투자 부적격 시기라고 규정한 금융위기의 국면에 투자자들은 투자처를 찾는 데 크게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관망이 대세라고 믿고 있다가 본의 아니게 낭패를 볼 수 있는 때이기도 합니다. 투자자들이 고루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시기에 저자들이 공격적 투자 본능을 드러낼 수 있던 배경은 현실에 대한 정치한 분석과 적중률 높았던 전망 때문입니다. 저자들은 공히 투자정보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을 만큼 실무에 능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장에서 일반 투자자와 공격적 투자자를 모두 겨냥하고 있습니다. 일반투자자를 위해 금을 소유하거나 광산기업 주식을 사들일 것을 주문하는 한편 고위험 고수익 선호 투자들에게 공매도와 옵션, 마진 전략을 적극 추천하고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제4장 말미에 언급한 '디지털 금'은 음미할만한 아이디어를 내장하고 있습니다. 달러화에 연동되지 않는 금, 달러화의 가치 하락에 영향을 덜 받는 금의 이상을 '디지털 금'이 보여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대로 '전자결제 방식의 도입으로 인해 화폐의 개념이 본질적으로 하나의 정보로 축소되었다'고 하지만 그런 이상은 당분간 여건의 성숙을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의 함의는 결국 어느 경우든 사태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이성과 분석적 지식을 활용한 세밀한 통찰, 그리고 전략적 선택에 의한 과감한 투자에 핵심 키워드를 내주고 있습니다. 달러화의 가치 하락이 계속될 전망입니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