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그리고 그 이후
자크 아탈리 지음, 양영란 옮김, 이종한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어떤 일이든 터지고 보면 다연발 총탄 세례를 받은 듯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수습할 방법은 무엇인지 궁금증이 연달아 이는 것은 정신작용의 당연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원인과 결과, 해결책을 망라하는 궁금증이 들면 그 일에 대해 해부학적 분석을 시도하게 될 것입니다.

 

우선 관련 기사와 책들을 뒤지고 여러 매체와 경로를 통해 분석 도구로 쓸만한 지식을 총체적으로 취득한 후 그것들을 조합함으로써 신뢰할만한 시나리오를 만듭니다. 그러고 나서 시나리오의 전면과 측면에 형성된 스펙트럼 내부에 견해를 삽입하고 관점을 형성하는 후속 과정을 밟습니다. 그렇게 형성된 관점이 수차에 걸쳐 유사한 일에 적용되면 통찰을 얻게되고 통찰은 자신과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며 강화됩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위와 같이 몇 줄로 요약이 가능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이뤄지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립니다. 덧붙일 것 없이 이런 과정은 다수의 시간 외에 다량의 집중력을 투입물로 요구합니다. 어떤 경우든 자신만의 관점을 형성하는 데 다량의 집중력은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아무리 시간을 많이 들인다고 해도 건성으로 일관한다면 표피적인 지식 외에 얻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어떤 일에 대해 통찰력을 갖는다는 것은 시간과 집중력이라는 양 바퀴를 고루 굴릴 줄 안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통찰력의 형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분석과정은 잘만 운용한다면 나무랄 데 없이 매끄럽습니다. 문제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시간과 집중력에 한계가 있다는 데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어느 경우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몇 장의 논술' 또는 '한 권의 책'을 필요로 할 때가 있습니다. 비록 몇 장의 논술과 한 권의 책을 고대하는 일이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려는 심사이기는 해도 그런 논술과 책이 필요한 때가 기필코 있기 마련이고 그 땐 다른 어떤 때보다 그런 논술과 책의 존재를 고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특히 복잡다단한 경제 문제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난맥상이 끝을 모르게 펼쳐진 요즘 세계경제를 보면 과연 그것이 몇 줄의 논술과 단 한 권의 책으로 정리될 성질의 것이냐고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지 모릅니다. 또한 아무리 자세하게 기술한다고 해도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수십 권의 책을 쓸 일도 아니고 그렇게 썼다한들 그 많은 책을 누가 읽겠느냐는 고민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상세한 책의 필요성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의 필요성 사이를 매울 책의 출현을 바라는 입장은 시간과 집중력의 한계라는 변수가 지속되는 한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때마침 그 간극에 가교를 놓는 책이 나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익히 앨빈 토플러와 더불어 미래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불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크 아탈리의 저작이라는 프리미엄과 주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감이 적은 분량, 사건에 대한 친절한 연대기적 서술과 정치한 분석, 향후 전망을 담은 보기 드문 저작이라는 희소성이 책에 대한 호감에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초유의 사태였습니다. 과거 어느 때든지 거의 실시간이라 할 정도로 위기가 전세계적으로 파급된 예가 없었을 뿐더러 각국이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펀더멘틀이 순식간에 무력화된 것 또한 의외였습니다. 세계화의 실체가 홀연히 현실로 나타났으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마에 겐이치가 '국경 없는 세계'의 이상을 꿈꾼 것이 1996년이니 겨우 13년만에 세계화가 눈앞에 확연히 그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9.11사태가 미국에게 정신적 충격과 함께 공황상태를 가져왔다면 이번 금융위기는 전세계에 전대미문의 당혹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무엇이 문제인지 갈팡질팡하느라 어느 나라고 분주하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로 심리적 파급효과가 상당했습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불안한 전망은 그와 같은 사실이 도래하기에 앞서 심리적인 면에 먼저 당도했습니다.

 

하루를 마다하고 요동치는 주가지수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금값, 달러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 등의 악재 앞에 각종 처방은 약발은커녕 언 발조차 녹이지 못했습니다. 돌파구가 전혀 없는 상황. 파국은 불을 보듯이 뻔하게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후로 한달 여가 지난 지금, 여전히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단지 숨만 돌릴 수 있었을 뿐입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 볼 여유를 조금 찾은 듯합니다.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이 촉발한 금융위기의 원인과 상황, 전망과 대처방안에 관해 이젠 전문가뿐 아니라 위기 국면에서 가장 크게 곤란을 겪은 일반서민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자세한 내막에 관한 정보가 필수적입니다.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들려줄 몽학선생이 필요한 때에 그 역할을 이 책, 〈위기 그리고 그 이후〉가 충실히 해내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후한 점수를 줘도 무방할 것입니다. 책은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나간 위기가 주는 교훈'을 시작으로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자본주의가 사라질 뻔한 날', '앞으로 닥칠 위협', '위기와 위기 해법의 이론적 토대 : 서로 모순되는 민주주의와 시장의 요구', '긴급 대책', '최후의 경고, 미래의 약속'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이 책의 미덕은 사태의 전체적인 조망을 가능하게 한 저자의 통찰에 전부 돌릴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제1장과 제2장에 대부분의 공을 돌리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 같습니다. 위기 상황이 일어난 배경과 전개과정은 전망과, 향후 계획 등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기본적인 토양일 뿐 아니라 선후관계를 규명하는 시초가 된다는 점에서 우선 탐구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실을 바늘귀에 꿰지 않고 땀을 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1장과 제2장을 주의 깊게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책은 공교롭게도 출발선을 떠나 도착점에서 그치는 직선적인 서술 방식을 채용하지 않고 도착점에서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와야 하는 순환구조를 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독자는 어느 때보다 세밀하게 도입부라 할 수 있는 제1장과 제2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태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충분히 습득할 토대를 마련하는 일은 다음 장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저자는 이번 위기상황의 원인을 산업진흥과 재정정책을 통한 적자해소방식을 폐기한 데 두고 있습니다. 근인(近因)을 말할 것 없이 원인이 결과한 무분별한 통화남발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분석과 다를 바 없습니다. 조금 다른 점은 저자가 실현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기 힘든 세계정부의 창설을 구상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기축통화를 지닌 일국 정부의 자의적인 집행과 독단적인 처리 때문에 빚어진 위기라는 판단에서 저자는 세계정부가 다국의 목소리를 담아내면 최소한 독단에서 비롯한 위기는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세계정부'를 통해 실현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수만큼이나 다양할 각국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관심 사안에 각국을 동일한 테이블에 앉힐 묘책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에서 그의 세계정부는 당분간 유토피아적 상상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브레이크를 잃고 무한 질주하는 열차'를 막을 방법을 모색한다는 차원에서 그의 주장은 곱씹을 만합니다.

 

상황은 극히 유동적이지만 저자의 미래전망은 대체로 긍정적입니다. 그는 1637년의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몰아친 튤립 구근 투기의 처리와 이후 전개과정을 일례로 들고 있습니다. 그 사건은 지금의 경우와 유사하게 전 유럽을 경악과 공포로 몰아가며 공황에 버금가는 충격을 안겨줬지만 네덜란드 7주 연합이 위기전환을 위해 전력투구한 결과 이후 반세기 동안의 경제호황이라는 화려한 서막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런 예는 많지 않습니다.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지지 않는 해’와 같았던 경제거점이 실기와 정책적 판단의 잘못으로 다른 곳으로 옮겨간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1620년의 제노바, 1890년의 런던이 그런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경제의 중심지라고 하는 뉴욕은 그 명성을 끝끝내 유지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다소 길게 상황변화에 대한 대응방식과 거점이동의 상관성을 역사적으로 고찰한 이유는 경제강국의 중심 뉴욕조차 안심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상황에 안일하게 대응하고 미온적인 처방을 내놓을 때 과거 제노바와 런던이 그랬던 것처럼 경제 중심이 빠르게 이동하게 된 사실이 반면교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위기가 기회가 되려면 체질개선과 구조조정 등의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당장 그와 같은 노력이 실물 경제에 위험신호를 보냄으로써 생산 및 소비 등의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 아시아 경제 위기 때 아시아 각국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의 경우도 위험이 감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위험 사실을 공지하지 않고 정부 차원에서의 방어를 시도하다 결국 시기를 놓친 측면이 많습니다. 과거와 사뭇 달라진 불안한 경제를 저금리로 지탱해야 하는 남모를 고민이 있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저금리 정책을 고수할 경우의 장단기적 전망에 따라 미래를 대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어느 경우든 관성은 무섭습니다. 결말이 나야 비로소 멈추는 관성의 성질을 간파하지 못하면 원상태로 돌이키지 못합니다. 비록 돌이킬 수 있다고 해도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경제의 회생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체 통화의 구축과 대안 세계화에 대한 모색이 타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이유도 그런 시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당분간 세계는 자국 경제의 재구조화와 재조정이라는 터널을 지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터널이 보기보다 길고 생각보다 컴컴해도 돌아 나올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스르면 상황은 절망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네덜란드 6주처럼 이 위기를,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추진할 수 없었던 ‘굴절된 경제구조’를 혁파할 기회로 삼아 관련 정책을 강력히 추진해야 합니다. ‘공황이냐’ ‘재도약이냐’를 결정하는 기준은 때로 국가경제 전체에 고통을 안겨줄 그런 정책을 얼마나 내실 있게 추진하느냐로 판가름 날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처방이 미국에 한정된 처방이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 또한 사생결단의 의지를 갖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다대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탄탄한 경제구조, 내실 있는 경제토대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세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 결과든 지구촌사회의 이상을 구현한 결과든 일국 중심주의 경제체제를 오래 전에 벗었습니다. 그 사실은 미국의 금융위기와 그 확산을 통해 충분히 목도한 바 있습니다. 일국의 금융 위기가 거의 실시간이라고 할 정도로 세계 각국에 고도의 영향을 끼친 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 세계경제는 마치 단일경제처럼 운용되고 있습니다. 각종 산업의 균형 있는 발전을 통해 국부를 키우듯이 세계경제 또한 각국이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을 고도화하여 상생을 도모하는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저자의 주장이 원론적인 수준이라는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 전과 다른 위기상황에서는 근원으로 돌아가 바탕을 세밀히 살펴야할 필요성이 크다는 점에서 그 주장을 전부 이상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이론이 견고하게 구축될수록 실천을 보다 탄력 있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진단과 전망에 이은 처방이 힘든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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