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독자가 사진을 보면서 '말'을 들여다 보길 원하고 있다. 사진은 순간을 붙잡지만 시는 시간을 관통하므로, 그래서 [시인의 사진]이다.  

사진은 각자의 기억과 기록의 다른 방향에서 그나마 가장 실제를 포착한다고 볼 수 있다. 삶을 사진으로 말한다면 수없이 많은 조각난 프레임으로 구성되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가끔 펼쳐보는 사진들, 아니 오늘의 사진으로 떠오르는 사진을 보면 온전한 기억보다는 파편적이다. 사진이 언어적 비언어적으로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고 음미할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과거에서 현재로 미래로 나아가는 순간과 행위의 모습들, 덧붙여 기억에 남은 것은 이전과는 같은 적이 없는 실제와 감정이 들어 있다.

남기고 싶은 순간을 찍지만, 남겨진 그 모습을 다시 수정하면서 기억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감춰지고 왜곡된다. 또 동일한 사진을 보고서도 서로가 다른 공감을 나누고, 같은 지점에 있지만 우리의 눈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거나 다르게 투영한다. 

그래도 가장 정확하게 기억하려면 기록보다는 사진이 더 실제에 가까울 거 같다. 

하지만, 난무하는 사진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멋있다. 실제의 삶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실제로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보는 것도 다른 것이 많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그래서 말을 할 때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말 해 보라고 권한다.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보여지는 그대로 말하면서 아니면 다시 확인하면서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루빈스 컵' 처럼 눈의 착각과 다름을 인식하기(대화할 때, 어떤 이는 컵에 대해, 누구는 얼굴에 대하여 말한다면 결과는 상이하다.)

-평가보다는 사진 찍은 것처럼 관찰로 말하기(약속 시간 늦은 친구에 대하여: 늦잠 잤구나, 게으르다, 얘는 항상 늦어가 아니라 10분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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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사진 - NO. 1
홍재운 지음 / 서정문학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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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시각적 감각으로 기록한 한 편의 시, 낱낱이 드러나는 상처의 증언이고, 거부할 수 없는 순간의 재현입니다. 언어와 언어 사이에서 파생되는 이미지는 비가시적 공간으로 펼쳐지고 재생산됩니다. 하지만 완성된 결과물들은 전혀 다른 의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21쪽)

사진은 실제의 숲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숲이라는 개념 자체를 감각적으로 재조립한 풍경이다. (52쪽)

이미지는 문자보다 때로 더 강한 전달과 울림으로, 이동하는 감성을 포함하고 있다. (97쪽)

사진은 때로 편견을 허무는 해방이다. (중략) 카메라의 위치를 낮은 자세로 변형시킨 방법은, 낯익은 풍경을 낯선 풍경으로 재구성해 평범함을 허문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듯 이렇게 수평, 초점, 자세를 변형해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을 다양한 방법으로 자유롭게 표현한다. (122-123쪽)

보는 각도에 따라 높이에 따라 우리의 눈은 다르게 제시하고 받아들인다. 같은 도시의 풍경을 전혀 다른 스토리로 번역, 반전시킬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지요. 그리하여 이미지를 개념화하는 사진, 여행입니다. (143쪽)

사진은 단순한 조형 예술의 기록이 아니다. ‘지금‘이라는 순간이 철 구조물 속에서 끊임없이 확장되는 감각, 왜곡된 시간으로 늘어나는 세상을 발견하는 통로이며 사랑 움직이는 전복적 상상이다. (175쪽)

카메라의 눈은 이미지에 대한 강제 포착으로 일종의 폭력이다. 반면에 사람의 눈에 비친 사물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잊혀진다. (중략) 어쩌면 자주 카메라와 사진작가의 눈이 다르게 표현될 때가 있다. (중략) 기억과 기록이 다른 방향으로 분리되는 시선이다. (198-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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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 글 답다. 인간의 시선으로 그린 아담과 이브 이야기다.

낯선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이해하고 수용하게 되고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 때가 떠오른다.

아담과 이브, 서로에게 새로운 피조물은 시작은 '그것'으로 불린다. 그것들은 서로에게 매우 낯설고 무섭기까지 하다. 그러나 서로의 시선을 교차하고 관찰하고 생각하고 기록한다. 그러면서 그녀, 그에서 '우리'가 된다.

아담의 다정하고 선한 마음, 이브의 아름다움에 점차 빠져들게 된다. 서로는 짐작과 가정과 추측에 의존하지 않고 관찰하며 실험하며 서로를 알아간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수많은 결점들과 다름을 인정, 수용하면서, 그냥 다가 온 사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가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는 고백으로 나아간다.


*사랑은,

'이러한 사랑은 이성과 통계의 사물이 아닌 듯하다. 이 사랑은 그냥 다가오며, 어디에서 오는지 아무도 모르고 설명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78쪽).'

*이브를 욕하지 마,

'금단의 열매는 사과가 아니라 밤栗이라고 그 뱀이 장담하더란다. 그녀가 말하길, '밤'은 낡고 곰팡내 나는 농담을 뜻하는 비유적인 말이라고 그 뱀이 알려주더란다(24쪽).'

*'우리'라는 단어,

최근 배우 예지원이 함께 한 세계테마기행 타이티 편을 보면서, 그들은 늘 우리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우리도 밥 먹듯 우리를 사용하는 데 아주 많이 다르지요.

*다큐를 농담으로, 농담을 다큐로, 살아가는 데 호환이 필요하고 이해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자고요. 담 주는 대학 동기들 만난다.

*벌써 2월이다. 한 것도 없는 데 시간만 지나갔다고 볼멘 소리도 들리지만, 잘 지내왔잖아. 아담이 일요일마다 '잘 버텼다(15쪽,18쪽,21쪽).'로 지내다 어느새 '일요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은 쓸모가 있다(29쪽).'는 고백까지 우리는 매일을 좋아하면서 살아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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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의 일기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마크 트웨인 지음, 프란시스코 멜렌데스 그림,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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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긴 머리의 새로운 피조물이 아주 거치적댄다. 항상 얼쩡거리며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나는 이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도 않거니와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도 어색하다. 그것이 다른 동물들하고 지내면 좋겠다...... 오늘은 흐리고 동풍이 부니, 우리에게 비가 찾아올 모양이다...... 우리? 내가 그 단어를 어디서 들었더라?...... 지금 떠올랐는데, 새로운 피조물이 그 말을 쓴다. (11쪽, 아담의 일기 중)

이 모든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내가 초반에 이브를 잘못 판단했음을 알겠으며, 그녀 없이 동산 안에서 사느니 그녀와 함께 동산 밖에서 사는 편이 더 낫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말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목소리가 침묵에 잠겨 내 삶에서 사라져버린다면 안타까울 것이다. 우리를 가까이 하나로 맺어주고 나를 깨우쳐 그녀의 선량한 마음과 그녀의 다정한 영혼을 알게 한 그 밤栗에 축복 있으라! (38쪽, 아담의 일기 중)

나는 거리를 조금 두고 다른 ‘실험‘의 뒤를 밟으며, 가능하다면 그것의 존재 이유를 알아보려 했다. 하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남자인 것 같다. 남자를 본 적은 없으나, 그것은 남자처럼 생겼으며, 나는 그것이 다름 아닌 남자라고 확신한다. (중략) 처음에 나는 그것이 무서웠고, 그것이 뒤돌아볼 때마다 나를 쫓아올까봐 도망부터 쳤다. (46쪽, 이브의 일기 중)

지금, 우리는 정말로 아주 잘 지내고 있고, 점점 더 친해지는 중이다. 그가 더는 나를 피하려 들지 않는데, 이는 좋은 징조이며, 그가 나와 함께 있는 걸 좋아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 사실이 기뻐서, 그의 호감을 사고자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그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려고 힘쓴다. (중략) 새로운 피조물이 나타날 때마다 그가 어색한 침묵을 드러낼 새도 없이 내가 먼저 이름을 지어버린다. 이런 식으로 내 덕분에 그는 곤란한 상황을 수차례 모면했다. 나에게는 그와 같은 결함이 없다. (중략) 그리고 그러면서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조심했다. (50-51쪽, 이브의 일기 중)

이 행성에 그녀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바로는 없다. 나는 어떤 동물한테는 무관심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차별 없이 모든 동물에게 정을 쏟고, 그들 전부를 보물로 여기며, 새로운 동물은 무엇이든 환영한다. (66쪽, 아담의 일기 중)

나는 지금껏 많은 것을 배웠고 이제는 박식하지만,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지했다. (중략) 실제로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고, 그러면 앎을 얻게 되지만, 짐작과 가정과 추측에 의존하면 결코 박식해지지 못한다. 어떤 것들은 답을 얻을 수 없지만, 짐작과 가정으로는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조차 결코 알아내지 못할 테니, 정말이지,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낼 때까지 참을성 있게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답을 얻게 되면 기분이 아주 좋고, 세상이 몹시 흥미로워진다. 알아낼 게 하나도 없다면 따분하리라. (71-72쪽, 이브의 일기 중)

내가 그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의 영리함 때문이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가 그다지 영리하지 못한 것은 그 자신의 뜻이 아니었기에 그의 탓이 아니며, 그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그대로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거기에는 어떤 현명한 목적이 있었으며, 그쯤은 나도 안다. (75-76쪽, 이브의 일기 중)

그렇다. 나는 단지 그가 내 것이고 남성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 같다. 다른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따라서 내가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사랑은 이성과 통계의 산물이 아닌 듯하다. 이 사랑은 그냥 다가오며, 어디에서 오는지 아무도 모르고 설명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중략) 알고 보면 무지와 경험 부족으로 인해 잘못 판단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78쪽, 이브의 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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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 성경을 읽을 때, 아니 읽어야지 할 때에는 그 시점에는 분명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거의 안다는 식의 건성으로, 건너뛰기와 오독까지 하는 경우도 많았다. 

'성서를 열다'에서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불가해한 세계 앞에서' 라는 말이 덧붙여있다. 

이제껏 너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성서의 낯선 세계를 만나야 하고 그 속에서 너 자신을 열어 보이라고 말하고 있다. 

책에서는 이렇게 성경과 마주한 사람들로, 파졸리니, 에리히 프롬, 본회퍼, 윌리엄 포크너를 언급하고, 타종교, 동양 경전 등까지 성서와 비교하기까지 한다. 

차례에 나오는 6가지 질문에 답해보는 맛도 있다. 각자의 답이 있겠지만, 정답(?)이나 오답을 가리기 위해 애쓰며 읽었지만 잡힐 듯하지만 한마디로 채점하지 못한 답만 남아 있다. 결국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리라. 중간 중간에 나오는 성경 구절이 책 읽기에 방해가 되었다면, 이 말씀들이 너무 익숙해서 그냥 넘기고 싶은 충동까지 싸우다 보니, 몰입도가 떨어지고 주의가 분산되니 어렵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변명한다.


그럼, 진지하고 정직한 자세로 답해보자.

성서는 어떤 책인가?

성서를 읽는 당신은 누구인가?

누가 성서에 들어가는가?

성서에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성서로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성서에서 무엇이 열리는가?


이 참에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긴 역사 속에서 다양한 저자들과 편집자들의 손을 거친 성경은 읽을 때마다 다른 의미와 해석이 나오기도 하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생겨나는 것 보면, 이 또한 '성서를 열다'와 맞물려 있는 것은 아닌지 애써 합리화한다.


더 생각할 부분으로 부록에 나오는 내용(151-153쪽), 인간은 '차악'을 선택하므로 그나마 납득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여기면서 자신에게 '무고함'을 판정하는 궁극적인 힘을 부여하게 된다. 잘못을 저지르고 용서를 구하는 인간은 잘못했다 할지라도 '정당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며, 힘을 소유하게 된다. 우리가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다고 '미리' 말함으로써 우리는 힘과 권력을 얻게 되며, 내적 갈등 없이 우리를 정당화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갈등을 외부화한다. 내면에서의 충돌은 사라지고, '나'가 아닌 '타자', '우리'와 '다른 타자들','저들'과의 갈등만 존재한다. '합리적인 나'와 '불합리한 타자','나'라는 의미 있는 존재와 '타인'이라는 무의미한 존재 사이의 갈등만 존재하게 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에 본 영화, '밀양'이 떠올랐다. 전도연이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해 주려고 만났는데, 범인은 '나는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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