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동창들을 만나고 와 마저 읽은 글이다. 헌책이 말을 걸어 왔듯이, 우리들은 존재만으로도 빛이 났다. 돌아오는 길엔 가슴이 저렸다. 긴 시간이 흘렀구나... 아깝다... 흰머리, 뚱뚱한 몸, 주름진 얼굴이지만 마음만은 초등생이었다. 어쩜 기억들이 그리 다른지, 저마다 자신의 기억들을 가지고 설왕 설래, 그래도 따뜻한 이야기만 가득했다. 혹, 옛날 그곳에 혼자 있지는 않았는지, 나만 모른 일도 있었는지, 일일히 챙겨가며, 그 흔적들을 하나씩 보듬고 그때는 말하지 못했던 말까지 전한다. 그 긴 세월이 지났어도 마음이 통한 시간이었다. 헌책은 그와 같다. 동창들도 헌책과 같다. 동시대를 살아온 우리들, 우리가 어디에 머물렀던, 어떤 길로 왔던, 동일한 정서가 똑같이 마음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리라.... 오늘처럼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는 어김없이 1호선을 타고 종로서적으로 달려갔던, 그 때의 책 냄새를 잊을 수 없다. 시집으로 가득 꼽혀있던 그 아랫자락에 앉아 읽었던 글들이 아직도 마음에 흐르고 있다. 마음의 흔적들은 기억이 사라져도 켜켜히 주름져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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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깊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과 글로는 그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는지 이름만 가득 채웠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더 간절한 고백이 또 무엇이랴. (51쪽)

자유는 보이거나 잡을 수 없기에 찾을 수도 없다. 실체가 없으니 망가지거나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을 수도 없다. 가장 자유로운 상태란 더 이상 자유를 찾지 않게 되었을 때, 그때가 아닐까. (75쪽)

지금과 다른 건 그 시절을 살았던 청춘들은 저마다 존재에 대해서 더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것이다. 자격증 개수나 토익점수보다 자신과 사회의 존재에 대한 탐구가 언제나 먼저였다. (133쪽)

그때의 청춘들은 누구나 시인이었다. 좋아하는 시 몇 편쯤 외울 줄 알았고 노트 한 귀퉁이에, 아끼는 책 한 켠에 자작시 몇 줄쯤 부끄러움 없이 끄적일 줄 알았다. 그때 그들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는 누구인지 실체도 정답도 없는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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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건 똑같다. 보이는 모양만, 담겨진 그릇이 다를 뿐,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차도르를 쓰고 있는 그녀들은 다를까? 혹시 했는데 역시, 똑같다. 읽는 내내 웃었다. 사는 데 재미를 주는 건 누군가의 뒷담화과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다. 밤새 친구들과 수다떨었던, 그 내용의 대부분도 친구들 흉보고 마음 설레던 짝사랑,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였다. 아줌마가 되어서도 좀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포장만 다를 뿐, 좀 더 세련되고 고상하게 말하고 있지만 역시나 귀가 솔깃해 지는 건 사랑이야기다.   

 

책표지의 글을 대신한다. '바늘 끝처럼 뾰족한 것이 사랑이고, 그래서 상처받고 괴로워하지만, 결국 그 뽀족한 덕에 기억의 조각들을 꿰어 행복의 양탄자를 만드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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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 수다 - 차도르를 벗어던진 이란 여성들의 아찔한 음담!
마르잔 사트라피 글 그림, 정재곤.정유진 옮김 / 휴머니스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이때 준비하는 차는 또 다른 역할을 했다. 모두들 차를 두고 둘러앉아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건 바로 '토론'이었다. 이 토론이라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다.
"남 흉보는 일은 말이야.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거야..."

"귀담아들을 필요 없어!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하면 돼. 날 보렴. 나도 꽤나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결혼했는데 결국 이게 뭐니. 이 나이가 되도록 사랑이 뭔지도 모른단다. 사랑은 이성이랑은 거리가 멀거든." "결혼은 도박 같은 거야. 이길 때도 있지만 질 때가 더 많지.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언제나 변수가 생기거든." "맞는 말이긴 해도, 그래도 얼마간은 행복하게 살잖아." "흥, 결혼은 부질없어!"

...유부남이랑 사귀는 건 잃을 게 하나도 없긴 하지만...
...생각해 봐!
때 묻은 와이셔츠, 더러운 팬티, 끝이 보이지 않는 다림질, 고약한 입 냄새, 치질 발병, 독감, 신경질, 그리고 투정... 이런 건 모두 다 그의 마누라 몫이지.

유부남이 애인을 만나러 갈 때는 말이다...
깨끗이 빨아 빳빳하게 다린 옷을 입고, 이에서는 광채가 나지, 입에서는 꽃향기가 나고,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이야깃거리도 넘쳐나지.
그리고 이런 말을 해 주잖아. 당신은 아름답고 지적이오. 그러니까 뭐랄까... 당신이랑 있을 때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당신은 정말이지 귀한 진주 같다고나 할까... 그저 좋은 시간을 보내려는 거지.

사는 게 그런 거다! 어떤 날은 네가 말 등에 타고 있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말이 네 등에 타고 있기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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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한자리에서 읽어야 하는데, 조금씩 읽다 보니,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거 조차 조금씩 사라졌다... 복재된 부분, 이미지만 남아 원래의 것은 사라져 복사된 부분만 남아 있다. 그래서 머리속에 남아있는 게 진짜인지 아닌지 모른다. 우리는 존재하는데 나의 이미지와 복제된, 모사된 무언가로 투영되고 타인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면, 상품을 소비하고 있는 우리가 메이커를 찾는 이유는 그 이미지에 종속되고 편승되기 위하여, 인간에게서 사라짐의 문제는 완전 없어지는 자연의 멸종과는 다르고, 인간만이 사라짐의 방식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분명 여기 있는데, 타인은 나의 이미지를 보고 나로 알아 본다는 거, 나의 수많은 이미지가 난무하고, 나는 분명 여기 존재하지만 사라지고 없다는 거, 그래서 인간의 사라짐은 예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도무지 어려워(?), p99~101까지의 옮긴이의 말을 읽는 순간 이해가 되었다.

 

"따라서 인간이 사라져버린 세상에 대해 말하자. 사라짐의 문제이지 고갈, 소멸, 또는 몰살의 문제가 아니다. 자원의 고갈, 종의 멸종은 물리적 과정이거나 자연적 현상일 따름이다. 바로 거기에 차이가 있다. 인류는 분명 자연 법칙과는 아무 상관없는 특수한 사라짐의 방식을 발명한 유일 종이다. 어쩌면 사라짐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p13)" 

 

낯선 단어 "시뮬라크르(p67)"를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장 보드리야르로 찾아 봤다. 보드리야르는 그의 독창적인 이론인 '시뮬라시옹(simualtion)'을 통해 포스트모던 사회의 본질을 꿰뚫었다. 실재가 실재 아닌 파생실재로 전환되는 작업이 시뮬라시옹(simulation)이고 모든 실재의 인위적인 대체물을 '시뮬라크르(simulacra)'라고 부른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은 다른 아닌 가상실재, 즉 시뮬라크르의 미혹속인 것이다. 현대인의 일상을 소비로 해부한 그는 현대인이 물건의 기능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위세와 권위, 즉 기호를 소비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대사회는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는 복제의 시대’라고 정의한 그의 이론은 철학 뿐 아니라 미디어와 예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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