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굳게 믿었던, 확실히 알았던 나의 세계가 전복되고 그것을 인정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 온전히 내 것으로 체화하고 나의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데는 순간 순간의 확신으로 다져왔다. 타인에게 틈을 주지 않게 위해, 나의 빈틈을 들키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고 본다.   

[2025 소설보다 여름]에서 관통하는 글은 이 때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합리화하고 지금의 모습까지 된 이유를 읽을 수 있었다.

의도하지 않든 의도하든, '느리고, 꾸준하게, 표정 없는 얼굴로 시간을 흘러 보내는 일(124쪽)' 쪽으로 다가가는 노인과 닮아가고 있다. 

'사랑했고 사랑 받았던 과거(54쪽)'에서 자유로워지고, 나아가 미워하고 후회하고 아픈 과거도 털어버리고, 현재의 시간에 밑줄 그으며 곱씹으며 매만지는 힘을 만들며 살고 싶다. 


육십 몇 번의 봄을 맞고 있다. 새롭다.

남편의 첫째 매형이 돌아가셨다. 자신과 타인 모두를 사랑하지 않은 분이셨다. 어떻게 살았든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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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5 소설 보다
김지연.이서아.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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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한테 갚을 게 신세 진 것만 있는 게 아니거든. 그걸 엉뚱하게 갚으면 안 되지. (24쪽, 무덤을 보살피다)

앞서 가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수동이 부럽기도 했다. (중략) 오늘 내린 선택들은 죄다 엉망이었지만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왜 다가올 일들 미처 알 수 없는 것일까? (38쪽)

소설의 제목처럼 무덤을 보살피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무덤을 보살피고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만큼의 망각과 은폐를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걸까요. (49-50쪽, 무덤을 보살피다 인터뷰)

정치적 판단과 행위는 단지 사랑의 마음으로 주고받을 종류의 일이 아니어서, 화수의 이야기를 들은 연인과 수동은 "할아버지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거"냐며 화수를 한심하게 바라봅니다. 이때 처음으로 화수의 세계가 무너집니다. 물론 화수는 "자신에게 선했던 세계가 패배했다는 것"과 자신에게 "그런 패배가 필요했음을" 인정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53쪽)

어쨌든 마을은 아주 많은 생의 역사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64쪽, 방랑,파도)

남매는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바다에 대해서는-적어도 서핑에 대해서는-놀라운 전문가였다. 나는 그들이 바다를 대하는 태도가 나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다. 내게 바다는 장소였지만, 그들에게는 온몸으로 일렁이며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생물체였던 것이다. (78쪽)

내게 좋은 파도란 없다. 죄다 견디기 힘들고 고달픈 파도일 뿐이다. (79쪽)

슬픔은 전문성과 세련됨을 박탈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전문적이고 세련된 슬픔만을 환대한다. (99쪽)

거대한 존재는 내 슬픔을 주워주지 않는다. 거둬 가주지도 않는다. 보살펴주지도 않는다. 슬픔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 (100쪽)

서핑을 배우는 ‘나‘의 시간을 그리는 일은 어떤 마음의 움직임으로 가득한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105쪽, 방랑,파도 인터뷰)

아무래도 스쿠버다이빙과 서핑은 수평의 움직임과 수직의 움직임의 혼합을 가장 근사하게 나타내는 스포츠 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중략) 어쩌면 생의 모든 행위는 수평적 움직임과 수직적 움직임을 내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106-107쪽)

할머니가 책의 문장을 밑줄 그르며 마음에 새겼듯 할머니의 문장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보는 ‘나‘의 시간이 이토록 가깝고도 아득하게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기 때문이기도 (111쪽)

가깝고도 먼 채로 문장을 나누는 시간, 쓰고 읽고 밑줄을 긋고, 그 흔적을 곱씹으면서 내내 활자 너머를 매만지려는 마음을 지키고 이어지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 힘을 사람은 어떻게 스스로 만들어내곤 하는 걸까요? (중략)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요? (111-112쪽)

벤치에 많은 노인들이 지켜보았다. 그들은 얇은 코트 혹은 우비만 걸친 채 매일 오후 벤치로 왔고, 날이 저물 때까지 앉아 있었다. 노인들이 무엇을 하러 오는지 노아는 잘 몰랐다. 시간을 때우러 오나 보다, 막연히 추측했을 뿐이었다. 그것은 이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하는 일이었다. 느리고 꾸준하게, 표정 없는 얼굴로 시간을 흘러보내는 일. (123-124쪽,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너무 오래 눈 마주치치 마세요." 목적어와 주어 모두 분명치 않은 지시였다. 누구와 눈을 마주치지 말라는 건지, 어느 정도 바라보아야 오래 눈을 마주친 것인지, 무엇 하나 명확한 게 없었다. (133쪽)

어머니는 노아가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불현듯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노아의 양손을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몇 번이나 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네 이름은 더 낫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모두를 인도하는 이름인걸. 그 새로운 세상에선 모두가 배부르고, 즐겁고, 따뜻할 테고......(147쪽)

‘필연‘ 또는 ‘우연‘에서 관계가 발생하는 이유는 실상 당사자들의 감정(또는 인식) 때문이죠. 관계의 계기 자체가 중요하기보다는, 뭐든 간에 관계의 계기로 삼아보려는 마음이 더 핵심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166-167쪽,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인터뷰)

응시는 소통과 위험이 모두 담긴 행위입니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면도 있을 거예요. 끔찍한 장면이 펼쳐질 걸 알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공포 영화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도 계속 보게 되는 타인의 얼굴처럼, 삶에서도 도무지 시선을 돌릴 수 없는 순간들이 있어요. 설령 본인이 그 장면을 보고 상처받으리라 예상해도 말이죠. (172쪽)

권태를 견디든 변수들을 버티든, 그 모든 인내를 합당케 하는 확신을 누구에게도 쉽게 주어지지 않을 거예요. 저도 늘 제 일과 삶에 관한 확신이 있는지 의심하며 벌벌 떨고 있기에.....(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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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기념일 근처에 오면 마음이 불편하다. 수 없이 많은 '만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제목 때문에 골라 든 책이다.

눈에 띄지도 않는 곳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저자의 글을 읽으니, 예전 카페 했던 기억이 난다.

절대 우아하지도 멋이 있지도 않는, 상상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던, 딱 호수 위의 백조 같았던 그때가 떠오른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면 발 닿는 서점으로, 커피를 좋아하면 근처 카페에 가서 괜찮은 책을 골라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게 제일 좋다.

책을 고르다 보면 마음은 저절로 골라지지 않을까, 싶다.

결혼 생활도 그런 것 같다. 상상과 꿈이 아닌 치열한 '현실'뿐이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부부에서 부모가 되기까지 그리고 지금 노 부부(?)로 나아가는 시간 앞에서 함께 했던 시간들을 돌아 본다.

우리의 시간에는 대로도 있었지만, 길이 없어 만들기도 하고, 장애물도 치우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래도 함께 지나왔다.

하지만 그 길을 같이 온 사람과는 아직도 삐걱댄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정도면 행복한 거야, 그러기에 한 몸같이 여기저기 다니고 있다. 

책을 한 권 골라 카페 순례를 갈 예정이다.  

돌아보니 순간마다 책은 늘 곁에 있어 수 많은 '만약' 을 응원해 주고 위로해 주었다. 

더불어 저자와 저자의 책방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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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는 마음 - 리브레리아Q 서점원 노트 ðiː inspiration 작가노트
정한샘(정림) 지음 / 오후의소묘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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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방문 리뷰 중 ‘눈을 감고 골라도 좋은 책을 안고 나가는 곳‘이라는 글이 있었다. (중략) 이곳에서 책을 안심하고 골라 가는 데에는 아주 큰 전제가 따른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이,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분노하고 상처받는 지점이, 그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존재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로 인해 웃고 우는 마음이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 그 전제다. 그렇지 않다면 이곳의 책들은 마치 외계의 다른 세상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질 것이고 그저 한번 둘러보는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어쩌면 까다로운 한 인간의 개인적인 취향을 통과한 책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집 센 곳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30-31쪽)

책을 사지 않고 나갔을 뿐인데 내가 골라놓은 책이 외면받는 기분이 든다. 선택받지 못한 책들은 외로워 보이기만 한다. 책방의 하루는 그저 낭만만 가득할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밖에서 보이던 그 노란 책방의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나는 영영 모를 텐데도 내 마음대로 따뜻한 공간이라 생각해 버린 건 아니었을까. 끊어내지 못한 생각들이 이어지면 다시 말들이 주위를 돌기 시작한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책 좋아하면 책방 하는 거 아니라고 했지. (94쪽)

어느 속상한 날
사람들은 작은 화면 뒤에 ‘누군가‘있지 않고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책방은 낭만이 있어야 하고, 책을 파는 사람은 친절할 거로 생각한다.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존경받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환멸을 느낄 때가 많고, 그래서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지만 빨리 그만두고 싶기도 하다. 세상도, 개인의 상황도 온통 먹구름이다, 선물 받은 잔에 선물 받은 코냑을 따라 두고 이쁘다, 이쁘다 하며 마음을 추스르는 밤. (119쪽)

안다. 이런 수많은 ‘만약‘을 떠안고는 그 어떤 글도 읽을 수 없다. 읽을 수만 없나, 쓸 수도 없다. 이런 ‘만약‘들로 문장을 파헤치고 비난할 수 없다. 그 모든 ‘만약‘을 피해 갈 수 있는 글은 이 세상에 없다.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책의 첫 문장은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이미 일어난 행위인지 열망이지에 대한 경계가 모호하므로 나의 ‘만약‘들은 이미 틀린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만약‘들은 머릿속에서 정렬되다 곧 사라지고, 다시 읽기 시작한다. 다음 문장, 또 다음 문장에 경탄하면서. (127쪽)

이 작가는 자신의 삶을 소설로 썼으며, 그 삶은 세대와 지역의 차이를 빼고 보더라도 내가 겪고 아는 삶과는 너무나 다르다. (중략) 다른 삶을 발견하는 것은 종종 나의 무지를 발견하게 되고, 빈약하고 초라한 앎의 깊이를 마주하게 되는 일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때론 부끄럽고, 때론 화가 난다. 어떤 때는 아무도 몰랐으면 싶은 나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게도 된다. 그래도 발견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가서 연결되는 것들에 나를 맡겨보고 싶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연결에 초대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160-161쪽)

가까운 사람의 죽음 이후의 삶.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바로 지금 살아내고 있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할 수도 읽을 수도 없다. 읽을 수 없으므로 쓰기를 멈춘다. 병과 죽음. 남겨짐과 애도를 빼고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갑자기 몸을 부풀리는 순간이 있다. 주로 후회로 연결되는 기억들이다.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결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 그냥 운다. (189쪽)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말 어느 상황에서나 찾을 수 있는, 마음먹기 마련인 감정일까요? 만약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행복을 찾는 기준을 바꾸어야 하는 것일까요?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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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독자가 사진을 보면서 '말'을 들여다 보길 원하고 있다. 사진은 순간을 붙잡지만 시는 시간을 관통하므로, 그래서 [시인의 사진]이다.  

사진은 각자의 기억과 기록의 다른 방향에서 그나마 가장 실제를 포착한다고 볼 수 있다. 삶을 사진으로 말한다면 수없이 많은 조각난 프레임으로 구성되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가끔 펼쳐보는 사진들, 아니 오늘의 사진으로 떠오르는 사진을 보면 온전한 기억보다는 파편적이다. 사진이 언어적 비언어적으로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고 음미할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과거에서 현재로 미래로 나아가는 순간과 행위의 모습들, 덧붙여 기억에 남은 것은 이전과는 같은 적이 없는 실제와 감정이 들어 있다.

남기고 싶은 순간을 찍지만, 남겨진 그 모습을 다시 수정하면서 기억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감춰지고 왜곡된다. 또 동일한 사진을 보고서도 서로가 다른 공감을 나누고, 같은 지점에 있지만 우리의 눈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거나 다르게 투영한다. 

그래도 가장 정확하게 기억하려면 기록보다는 사진이 더 실제에 가까울 거 같다. 

하지만, 난무하는 사진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멋있다. 실제의 삶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실제로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보는 것도 다른 것이 많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그래서 말을 할 때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말 해 보라고 권한다.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보여지는 그대로 말하면서 아니면 다시 확인하면서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루빈스 컵' 처럼 눈의 착각과 다름을 인식하기(대화할 때, 어떤 이는 컵에 대해, 누구는 얼굴에 대하여 말한다면 결과는 상이하다.)

-평가보다는 사진 찍은 것처럼 관찰로 말하기(약속 시간 늦은 친구에 대하여: 늦잠 잤구나, 게으르다, 얘는 항상 늦어가 아니라 10분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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