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방문 리뷰 중 ‘눈을 감고 골라도 좋은 책을 안고 나가는 곳‘이라는 글이 있었다. (중략) 이곳에서 책을 안심하고 골라 가는 데에는 아주 큰 전제가 따른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이,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분노하고 상처받는 지점이, 그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존재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로 인해 웃고 우는 마음이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 그 전제다. 그렇지 않다면 이곳의 책들은 마치 외계의 다른 세상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질 것이고 그저 한번 둘러보는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어쩌면 까다로운 한 인간의 개인적인 취향을 통과한 책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집 센 곳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30-31쪽)
책을 사지 않고 나갔을 뿐인데 내가 골라놓은 책이 외면받는 기분이 든다. 선택받지 못한 책들은 외로워 보이기만 한다. 책방의 하루는 그저 낭만만 가득할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밖에서 보이던 그 노란 책방의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나는 영영 모를 텐데도 내 마음대로 따뜻한 공간이라 생각해 버린 건 아니었을까. 끊어내지 못한 생각들이 이어지면 다시 말들이 주위를 돌기 시작한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책 좋아하면 책방 하는 거 아니라고 했지. (94쪽)
어느 속상한 날 사람들은 작은 화면 뒤에 ‘누군가‘있지 않고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책방은 낭만이 있어야 하고, 책을 파는 사람은 친절할 거로 생각한다.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존경받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환멸을 느낄 때가 많고, 그래서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지만 빨리 그만두고 싶기도 하다. 세상도, 개인의 상황도 온통 먹구름이다, 선물 받은 잔에 선물 받은 코냑을 따라 두고 이쁘다, 이쁘다 하며 마음을 추스르는 밤. (119쪽)
안다. 이런 수많은 ‘만약‘을 떠안고는 그 어떤 글도 읽을 수 없다. 읽을 수만 없나, 쓸 수도 없다. 이런 ‘만약‘들로 문장을 파헤치고 비난할 수 없다. 그 모든 ‘만약‘을 피해 갈 수 있는 글은 이 세상에 없다.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책의 첫 문장은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이미 일어난 행위인지 열망이지에 대한 경계가 모호하므로 나의 ‘만약‘들은 이미 틀린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만약‘들은 머릿속에서 정렬되다 곧 사라지고, 다시 읽기 시작한다. 다음 문장, 또 다음 문장에 경탄하면서. (127쪽)
이 작가는 자신의 삶을 소설로 썼으며, 그 삶은 세대와 지역의 차이를 빼고 보더라도 내가 겪고 아는 삶과는 너무나 다르다. (중략) 다른 삶을 발견하는 것은 종종 나의 무지를 발견하게 되고, 빈약하고 초라한 앎의 깊이를 마주하게 되는 일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때론 부끄럽고, 때론 화가 난다. 어떤 때는 아무도 몰랐으면 싶은 나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게도 된다. 그래도 발견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가서 연결되는 것들에 나를 맡겨보고 싶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연결에 초대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160-161쪽)
가까운 사람의 죽음 이후의 삶.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바로 지금 살아내고 있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할 수도 읽을 수도 없다. 읽을 수 없으므로 쓰기를 멈춘다. 병과 죽음. 남겨짐과 애도를 빼고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갑자기 몸을 부풀리는 순간이 있다. 주로 후회로 연결되는 기억들이다.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결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 그냥 운다. (189쪽)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말 어느 상황에서나 찾을 수 있는, 마음먹기 마련인 감정일까요? 만약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행복을 찾는 기준을 바꾸어야 하는 것일까요?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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