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케치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서고에 꽂힌 '식물스케치'가 눈에 띄어 바로 집어 들었다.

펼치니, 웬걸, 스케치가 없다. 뭐지, '식물스케일'이다. 


저자가 들어가는 말에서 한 말, '식물이 주인공이 아니다. (중략) 식물 자체가 갖는 물리적 속성, 혹은 식물을 통해 주변과 관계 맺는 방식에 더 경도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생명과 성장, 결실과 죽음을 성찰하게 하고, 말없이 위로와 행복을 주는 대상으로서 식물이 갖는 경이로운 지점을 말해보려 했지만, 나의 눈과 발이 자꾸 다른 곳으로 향했기에, 식물을 앞에 두기보다 옆이나 뒤에 두고 발생하는 이야기들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식물이 언제나 나의 지척에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5-6쪽).'


식물의 크기와 비례를 고려하여 생활을 구성하고, 삶의 모양을 바로잡고, 인생의 척도로서 저자는 자신의 세계를 식물의 스케일 아래에서 다루고 있다. 건축 도면의 축소된 크기로 실제 공간을 상상해 보듯이, 저자의 주변에 있는 식물을 통해 자신의 시간을 들여다보고 성찰한 글이다. 

어릴 때 읽은 '걸리버 여행기'가 떠오르는 발상, 시선의 산책, 현실을 유예하면서 상상해보기, 이해하기 위해 근거를 찾는 의지가 필요하고, 그리고 자세히 보아야 보이지 않는 숨겨둔 것을 볼 수 있다. 


박세미 글을 더 읽고 싶다. 


매일 적어도 한 가지 이상 버리기. 스케치하기. 감사기도 실천 중이다.

'숲을 읽는 사람(허태임)', '가만히, 걷는다(신유진)', 읽다가 말다가 하는 중이다.

휴가를 다녀왔고, 아빠의 마지막 휴가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분이 전반적으로 다운되어 있고, 이렇게 살면 안되는 데, 그럼 어떻게, 정답이 있을까... 

추가로 뉴욕양키스 경기 보는 낙이 있어 다행이다.

거의 매일 카페 가서 책 읽는다. 아이들이 소리 지르고 마구 뛰어다닌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되는 데, 걱정이다, 그들의 미래가. 

또한 도서관 봉사 중이다. 책 빌리는 이가 거의 없다. 답답하다.

그리고 나의 서재 방문객이 어마 무시하다. 왜? 서재 지수가 이제야 보이네, 이 점수는 어떻게 나오는 거지, 몰라도 되고, 그냥 저냥, 나도 자주 방문해야 한다. 

벌써 구월이다. 하늘은 파랗고 높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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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스케일
박세미 지음 / 시간의흐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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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는 한순간이 있다. 애호의 시발점이 어디인지 추적하다 보면 강렬한 한 장면을 마주하게 되고, 그것은 대개 기억의 앞뒤를 잘라놓는다. 그래서 그 애호에는 합리적인 이우가 붙기 전에 ‘무턱대고‘의 마음이 앞선다. (40쪽)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언어를 찾는 일을 여전히 사랑하는데, 양 눈의 시력이 각각 온전해야만 강력한 하나의 초점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54쪽)

보는 일은 쉽다. 자세히 보는 일은 그보다는 어렵다. 의지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에 거의 동의하지 않는다. 대충 보았을 때보다 자세히 보았을 때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혹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고통과 슬픔의 웅크린 등을 발견할 확률이 더 크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 등에 손을 뻗을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자세히 보기‘는 보이는 것이 숨겨둔 보이지 않는 무엇을 찾아내개 위해 통과해야 할 첫 번째 관문이기도 하다. (81쪽)

빈티지란 생산연도, 제조국, 디자이너 등의 정보 위에 익명의 돌봄과 시간을 두텁게 쌓아 올린 물질이 아닐까. (85쪽)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속성이 뭘까요?" 물으니, "시간과 반복인 것 같아요. 물리적인 작용과 화학적인 작용이 반복되어서 그 형태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돌멩이도 그냥 돌멩이로 안 느껴져요. 그런 맥락으로 사물을 보면 아스팔트의 깨진 틈의 모양도 아름다워요. 장식과 치장이 아닌 어떠한 힘의 반복이 만들어낸 명백한 논리가 있는 모양이니까요"라고 답했다. 아름다움에 취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근거를 찾는 것에는 의지가 필요하다. (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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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XIQUE(프랑스어로 독, 중독의)에 중독된 프랑수아즈 사강이 전문 의료 시설에서 치료 받는 동안 쓴 일기다.

중독된 상황에서도 그녀는 글쓰기와 책 읽기를 통하여 자신을 해독한다. 그녀는 두렵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문학적으로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해독한다. 

그래서 이 글은 '해독 일기'다.

특히, 그녀의 일기와 맞물려 베르나르 뷔페의 아주 강력한 그림이 인상적이다. 진하고 굵은 검은 색의 그림과 글씨가 글의 내용을 뒷받침한다. 사강의 심리 상태와는 반대로 그림은 아주 강렬하다. 반어법 같다고나 할까. 

최근 어디서 읽은 글, "글쓰기는 발현이 아니다.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이행이 아니다. 이미 있는 것에 대한 해독이다. 당신이 이미 해놓은 것에 대한 해독이다." 사강의 해독은 글쓰기였다. 해독이란 단어에서 두 가지 의미가 같이 떠올라 옮겨 본다.

*해독 解讀 : 어려운 문구 따위를 읽어 이해하거나 해석함. 

*해독 解毒 : 몸 안에 들어간 독성 물질의 작용을 없앰.


그리고 특히, 옮긴이의 말도 참 좋다. 


뜬금없이, 무더위라 하면 1994년 아들이 태어난 해를 잊을 수 없다. 기록은 갱신하기 위한 것이지만, 나에게 더위는 그때가 단연 으뜸이다. 벌써 8월이니, 금방 추위가 오겠지요.   

그래서 지금 할 일은, '내게 반하고, 나를 돌보고, 햇볕에 몸을 그을리고, 근육을 하나하나 다시 키우고, 옷을 차려입고, 끝없이 내 신경을 달래고, 나에게 선물을 하고, 거울 속의 나에게 불안한 미소를 지어 보여야 한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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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 일기 안온북스 사강 컬렉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백수린 옮김 / 안온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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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앰플 없이 열세 시간을 버텼다.
이건 사건이 틀림없다. (17쪽)

나 자신과 함께 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기묘한 기분이다.
고백하자면 내겐 나하고보다는 함께 시간을 보내면 더 좋을 것 같은 사람이 대여섯 명 있고, 그런 이유로 나는 나 자신과 맺는 관계 앞에서 거만해진다. (23쪽)

이제부터 나 자신과 맺는 행복한 관계는, 자연이 주는 육체적으로 편안하거나 고양되는 몇몇 순간과 다른 존재들을 제외하고, 오로지 문학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중략) 품에 안을 사람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을 때, 그리고 고독이 더는 아무도 주지 않는 일거리와 같은 의미가 될 대, 인생은 서글퍼지니까. (25쪽)

나는 글 쓰는 게 몹시 좋다. 건강한 작가가 마지막 문장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며 거만한 포즈를 취하듯, 내가 담배를 입에 문 채 머리 뒤로 손깍지를 하고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27쪽)

인과응보를 믿지 않던 내가,
나의 주정뱅이 형제들, 파리의 밤을 함께했던 사람 좋고 다정한 무리들이여, 이제는 더 이상 당신들을 이 바에서 저 바로, 이 자동차에서 저 자동차로 따라다니지 못하겠군요. 아니면 술을 조금도 마시지 않고 따라다니거나. 하지만 그건 안 될 듯해요. 그런 건 슬플 것 같거든요. (35쪽)

나는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이 무시무시한 사실은 행갈이를 해서 써줄 가치가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떤 일이 벌어지든, 문학적으로 생각하거나 글을 쓴다.
나는 남은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내게 반하고, 나를 돌보고, 햇볕에 몸을 그을리고, 근육을 하나하나 다시 키우고, 옷을 차려입고, 끝없이 내 신경을 달래고, 나에게 선물을 하고, 거울 속의 나에게 불안한 미소를 지어 보여야 한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 (43쪽)

오로지 먹기 위해서, 그리고 햇볕을 쬐기 위해서만 일어나는 건 매력적인 일이지.하지만(그러고 보면 나도 참 어지간하다), 그렇게 하는 건 사흘을 도둑맞는 것 같다는 기분이 동시에 든다. 내 인생의 사흘, 침대와 소파만 오가고, 조금 답답해하면서,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하려고 애쓰며 보내게 될 시간. (48쪽)

어쩌면 이 하찮은 일기를 쓰는 것 말고 다른 방식으로 내 문학 활동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단편? 그래, 그런데 뭘 쓰지? 도입부가 서른 개나 떠오르는데 결말은 없다. (56쪽)

프랑수아즈
좋아, 아주 좋아. 내 관심사는 이거다.
단편소설을 써야지. 문제는 ‘계획‘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쪼그라든다는 사실이다.
비가 내린다.
"아, 삶은 얼마나 느리고, 희망은 얼마나 격렬한가?"
아, 아폴리네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나는 얼마나 지루한가.
그냥 도망쳐버릴까? 어쩌면. (59쪽)

큰비가 온 뒤에 읽는 랭보. 잘 알던 앙다유 해변에서 이 시들을 읽으며 혼자 않아 있었던 어느 아주 이른 오후가 생각난다.
아주 커다란 행복. (63쪽)

나는 어떤 것들을 배웠다. 어쩌면 속임수였을지도. 그런데 언제쯤이면 내게 애스턴을 몰 힘이 생길까? 포르트 마요 교차로를 속력을 좀더 내서 달릴 힘이...... 도로와 광정들이 모두 그립다.
돌진하는 그 검은 보닛, 믿음직스럽고 정겨운 그 소리, 약간 길쭉한 재규어, 약간 묵직한 애스턴. 너희 때문에 죽을 뻔하고 나니 너희가 죽도록 그립구나. (66쪽)
아주 인간적이야. (67쪽)

그들과 함께 택시를 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예전에 나는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았다. 지금은,
더 이상 아무것도.
속상하다. (69쪽)

나는 왜 항상 상황 속으로 뛰어들지 못했던 걸까? (75쪽)

프루스트를, 스완의 열정을, 행복해하며 다시 읽는다. 진정한 행복은, 진실과 산문이 일치하는 순간처럼 드문 일이다. 나는 문학에서 발명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내가 포크너를 읽으며 한 번도 진찌로 감동을 받은 적이 없는 이유다. (중략) 나 혼자 쓸데없는 말놀이를 하는 대신 단편소설이나 써야겠다.
초등학생, 약에 취한 초등학생 같다. 진짜다. (77쪽)

마치 텅 빈 느낌. 이 건강 타령은 너무 길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못하게 된 기분이다, 정말 이상한 기분.
병은 정말 최악이다. (79쪽)

이 병이 낫지 않는다면 염두에 둘 하나의 흔한 해결책처럼. 나를 두렵게도 하고 혐오스럽게도 하지만 죽음은 일상적인 생각이 되었고, 만약의 경우 직접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슬픈 일이지만 필요한 일일 것이다. 내 몸을 오래 속이는 일은 불가능하다.
자살하는 것. 맙소사, 때때로 우리는 얼마나 혼자가 될 수 있는지.
(중략)
넉 달 동안 나는 두려웠다.
두렵고 두렵다는 게 나는 지겹다.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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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라는 의미를 다른 시각으로 크게 되새긴다. 그 많은 실패를 아무렇지 않게 만드는 글이다. 오히려 실패는 삶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한다. 실패를 이겨내고 견뎌내야만 하는 시각이 아니라 실패를 삶의 구성 요소로 삼을 수 있으며 결핍을 넘어서 새로운 조건의 기반으로 볼 수 있는 자세로 확장시켜준다. 글을 읽으면서 실패한 모습을 되새김하고 후회와 자책으로 돌아가는 무한 반복의 시간이 멈춤 했다.

저자는 프란츠 카프카, 페르난두 페소아, 장 콕토 같은 작가들을 실패의 예로 든다. 우리가 읽고 있는 작품들이 이들의 실패에서 나왔다는 게 놀랄만하지 않는가. 그리고 스스로 실패했다고 여기고, 실패자로 자신을 규정했다는 사실에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특히, 번역에 관한 부분과 읽을 줄 안다는 부분을 읽을 때, 실패라는 사실을 의연히 편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모든 책은 번역 불가능하고, 번역가는 덧없는 것을 마주하는 위대한 실패자(54쪽)이기 때문이고,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무슨 말인지 몰라 실패를 거듭하지만 의미의 명쾌함이 무에 그리 중요할까, 텍스트는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인 것처럼 보이기(205쪽) 때문에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러고 보니 실패는 존재 이유, 일상적으로 감당해야 할 몫, 삶의 원동력으로 이제는 '더 낫게 실패하기'가 숙제이다.

그리고 저자의 실패 목록(76쪽/103쪽) 중에서 전화 한 통 넣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권 완독하기/ 자기 기만의 강력한 유혹에 저항하기/ 책 귀를 접거나, 맹인을 치거나, 크리스티앙 보뱅의 책을 사는 지경까지 나를 놓아 버리기/ 후회하기/ 등이 흥미롭다.

덧붙여 나의 실패에 위로가 되어 준 71쪽 글이 있다. '나는 글을 쓰면서 실패하기 때문에. 혹은 글을 쓰면서 실패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삭제하고 다시 쓸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비단 글 쓰는 사람만이 아니라 다시 쓰는 사람recrivain이 되어야 한다.' 

[각별한 실패]를 각별하게 강력하게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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