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뜨개를 알게 되어 수 시간을 뜨개하였는데, 저자가 말한 '들뜸'의 기분을 다시 한껏 누렸다.

저자가 뜨개에 입문하고 한땀씩 과정을 적어나간 글에서 나의 지난 모습을 보았다. 뜨개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끄덕 할 내용들이 가득하다. 그 간의 수도 없이 셀 때마다 틀린 콧수, 공포의 푸르시오가 압도적으로 밀려오지만, 그럼에도 완성작을 볼 때, 내 맘대로 만든 결과물을 볼 때 하나의 작품 같았던 기억이 났다.

뜨개를 멈춤하였는데, 허즈번이 위스키와 와인을 수집하면서, 알록달록 뜨개실이 들어 있는 공간을 비워줘야 했다. 이렇게 많은 뜨개실이 있다니, 요즘은 실 파먹기 중이다.   

이 참에 나의 뜨개도 정리해 보면,

뜨개를 knitting(대바늘), crochet(코바늘) 중 무엇으로 할까에서, 바늘 굵기를 정한다. 대바늘은 줄 바늘을 사용하고 소매는 장갑 바늘을 사용한다. 코바늘은 실을 더 가는 걸 사용해야 한다. 대바늘의 두배가 들어간다.

뜨개바늘도 셋트부터 낱개의 바늘까지, 심지어 작은 줄바늘은 소매가 두개라고 호수별로 각 두개씩이다. 쇠바늘보다 나무바늘을 더 선호한다. 사각사각 소리가 좋다. 기타 장비는 마커, 가위, 줄자, 게이지자, 와인더까지 있다. 여기서 예쁜 마커와 가위가 압도적이다.

뜨개실도 색상별, 용도별로, 이거 저거 구매한 게 어마했다. 주로 매듭 만들기 싫어 콘사를 사용한다. 

뜨개 도안은 유명한 Ravelry(회원가입도 쉽고 써칭도 편리함, 이 사이트 명을 어떻게 읽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저자가 '라벌리'라고 하니, 이제 나도 정했다)와 Yarnspirations를 주로 이용한다. 

뜨개 책도 몇 권 샀다. 도안은 서술형과 차트형에서, 그림은 눈이 나빠 보기가 어렵고 글로 씌여진 서술형이 좋다. 그래서 라벌리 도안이 좋다.   

하지만 나는 게이지와 스와치는 내지 않고 실이 알려주는 게이지로 계산하여 코를 만든다. 도안책은 바늘크기를 바꾸거나 실의 굵기를 조정하여 뜨개를 한다. 핏하면 핏한대로, 오버핏은 오버핏대로 그냥 입던지, 그 옷에 맞는 이들에게 선물로 준다.

뜨개에는 바텀업과 탑다운이 있는데, 주로 탑다운을 이용한다. 콧수를 적게 잡아서 몇 번이나 세는 것을 줄일 수 있다. 하나의 통으로 뜰 수 있고, 조각내어 연결하기도 하는데, 연결이 무척 어려워 연결하고 나서는 쿠션으로 남는 경우가 몇 개나 있다.

코를 잡을 때도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long tale cast on을 주로 사용하는 데, 코 잡는 실을 가늠하기가 내게는 어렵다. 많이 남는 게 싫어서 몇 번을 코 잡는다. 그리고 바텀업 옷을 뜰 때는 tubular cast on, 탑다운 목둘레와 cuff down 양말은 german twisted cast on을 이용한다. 그리고 스웨터와 가디건, 양말뜰 때 꼭 필요한 wrap&turn, german short row를 적용한다.

뜨는 방법은 메리야스뜨기, 짧은뜨기, 긴뜨기가 기본이 되면서 다양한 무늬를 변주곡처럼 넣어 주면 된다. 정말 무늬가 다양하고 창의적이다. 

그런데 두 개를 동일하게 떠야 하는, 소매와 양말 같은 부분이 싫다. 코수도, 단수도, 수 번을 세어야 동일해지니, 이게 단점이다. 그러나 두 팔이 있어야 뜨개를 할 수 있으니,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해야 한다.

마무리에서 돗바늘을 이용하면 마지막 코로 갈수록 바늘에 걸린 실이 흐늘해져(?) 별루였다. 덮어씌우기 마무리는 너무 쫀쫀해져, 나는 주로 코바늘을 이용하여 나름대로 느슨하게 마무리한다.

그런데 뜨개를 하다보면 문어발이 된다. 스웨터, 가디건, 양말 등등이 바늘에 걸려 진행 중에 있다. 

뜨개인들이 모여서 함께 뜨는 함뜨, 뜨개의 초보자 뜨린이, 뜨개에도 권태기가 있다면, 뜨태기 등의 말도 있다.  

털실은 조금씩 날리고, 중독이니 계속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이 실을 어떡할거야, 팔기에는 너무 아깝다. 실을 고르기까지 많은 고민과 과정이 떠오르니, 암튼 느리게 떠 볼 예정이다. 정말 이 실을 다 소모하면 그만둘거야, 다짐한다.

저자가 말한 뜨개에서 아쉬운 점, 칼로리 소모가 없다에 동의한다. 또한 시력이 나쁘고 손목이 얇은 나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저자처럼 침대 아래로 실이 굴러갈 때 코어에 힘을 주고 허리를 숙여 실을 줍는 데 얼마의 칼로리가 소모될까마는, 뜨개에서의 좋은 점이 훨씬 많다. 감정 정리와 안정감, 창의력, 성취력 등등으로 도움이 된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 시간, 그 많은 돈, 그러한 노력을 들여 기성복을 사입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그러나 뜨개라는 행위는 감정, 이성, 정과 동적인 복합적인 활동이다. 지금 내가 살아 있음을, 잘 살고 있음을, 행복하다를 가장 잘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글을 읽다 보면 저자의 행복한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녀의 느낌을 몇 십분, 수 백분 이해하고도 넘치게 된다. 나 또한 행복해진다. 

그래도 과하면 안된다. 잠시 뜨개를 끊은 이유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추신)공효진이 입은 보디 가디건을 보고 뜬 옷을 자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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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는 우리를 들뜨게 하지
바나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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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뜨개를 하는 사람은 다소곳하거나 여성스럽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또한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뜨개는 지루하고 촌스럽다는 편견 역시 깰 수 있길 바란다. 뜨개는 그런 것이 아니다. (10쪽)

나는 니터의 첫 번째 덕목은 무엇보다 숫자를 잘 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미스터리다! 셀 때마다 콧수가 달라지는 경험을 꽤 많이 했다. 정말 미스터리다! (21쪽)

뜨개뿐만이 아니라 모든 취미가 그렇겠지만, 취미에는 돈이 꽤 많이 든다. 뜨개실은 저렴한 실부터 고가의 실까지 가격대가 매우 다양하고 어떤 실로 뜨개를 하냐에 따라 들어가는 돈은 천차만별이다. (97쪽)

바로 비슷한 동작을 반복하는 행동으로 마음이 차분해지게 도와준다는 점에서 뜨개는 요가와 비슷하다. (중략) 뜨개를 할 때 실제로 몸에서는 항우울제인 세로토닌을 방출해서 우울감 완화와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중략) 하지만 뜨개에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으니 그건 바로 칼로리 소비는 없다는 것이다. 전혀, 전혀 없다. (102-107쪽)

하지만 가끔 뜨개를 하다가 실이 침대 밑으로 떨어지면 운동 아닌 운동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코어에 힘을 주고 상체만 길게 늘어트려 실을 줍는다. 이건 좀 그래도 코어 운동이지 않을까? (186쪽)

다시는 충동적으로 캐스트온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하지만 캐스트온은 사채 같다. 빌릴 땐 기간 안에 사채 대금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돈을 빌리면 빨리 빨리 갚기가 싶다. 과연 문어발을 모두 청산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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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의 스케치북'은 무엇일까. 베네딕투스(벤투) 데 스피노자로 알려진 철학자 바루흐 스피노자는 글 쓰기 외에도 드로잉을 즐겼고, 항상 스케치북을 들고 다녔단다. 다시 말해, 존 버거는 스피노자의 드로잉이 있는 스케치북을 발견하는 상상을 한다. 그 안에 무엇을 그렸을까, 어떤 형식으로 그렸을까, 스피노자가 두 눈으로 직접 관찰했던 것들을 보고 싶어한다. 어느 날 선물로 받은 스케치북을 '벤투의 스케치북'이라 명명하고 스피노자의 시선이 되어 그림을 그리면서,  스피노자가 쓴 글과 버무려 낸 결과물이 '벤투의 스케치북'이다. 존 버거의 드로잉과 스피노자의 철학은 씨줄과 날줄로 잘 직조 된 한 폭의 그림 같다. 

드로잉은 무언가를 지향하는 실천이라 정의하고, 그 실천의 과정을 사물, 사람, 역사, 다른 이의 글과 그림, 몸, 감정, 감각. 정치, 사회문제 등으로 탐구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특히, 사소한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두고 있다. '우리는 사소한이라는 형용사를 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 형용사는 시간적인 것인데, 어쩌면 가능한, 그리고 적절한 반응은 공간적인 것이 아닐까(86쪽)'. 사소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실천해야 한다. 그 순간은 지나갈지라도 가치를 남기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들은 지울 수 없는 무엇으로 만드는 또 다른 방식이다. 그래서 우리의 사소함은 정치적으로 아주 중요한 시점이 된다. 

주변의 소소한 대상들을 드로잉하는 존 버거의 사소함,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의 사소함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존 버거나 스피노자가 한 행위를 사소함으로 견주다니, 어불성설이지만, 

믿고 읽는 존 버거 글이다. 번역도 잘했다. 


벌써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세월이 빠르다. 

추석에는 아들, 며느리, 손녀와 시어른들이 계시는 추모 공원도 다녀왔다. 지난 주에는 조카 결혼식에 다녀왔다. 친정 집의 첫 번째로 태어나서 모든 예쁨을 독차지하고, 그 애만큼 예쁜 아이가 없었던 그 때가 떠올랐다.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하다가, 건축학을 전공하다가, 심리학을 전공해서 상담 교사로 정착했다. 다행히 오랫동안 만난 이와 결혼했다. 작년 아들 결혼식이 떠올랐다. 아들은 오랫동안 만난 이와 헤어지고 바로 결혼했다. 두 번 정도 본 아이를 며느리로 만나서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손녀가 있어 결혼했고, 손녀가 있어 모든 것은 무죄다.    

저지가 혼자 열심히 뛰었던 뉴욕 양키스는 졌고, 시애틀도 졌다. 아쉽다. 

매일 한 가지 버리는 일은 잘 하고 있고 스케치는 오락 가락이다. 물건 구매는 계속 줄이고 있다. 봉사 활동은 하고 있다. 책도 읽고 있다. 이러한 사소함이 일상을 이루고 있다. 

요즘 언프리티랩스타, 우리들의 발라드, 싱어게인4,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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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의 스케치북
존 버거 글.그림, 김현우.진태원 옮김 / 열화당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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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드로잉을 하는 사람들은, 관찰된 무언가를 다른 이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계산할 수 없는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그것과 동행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15, 17, 20쪽)

역사는 이미 인정이 된 후에도 영원히 반동적이기 때문이다. (중략)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인 견딤, 역사를 마주한 결과로 생겨난 견딤, 역사의 반동성에도 불구하고 어떤 지속성을 보장하는 견딤. 지나간 무엇과 다가올 무엇에 대한 소속감은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해 주는 점이다. 하지만 역사를 마주한다는 것은 비극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외면해 버리게 하는 이유이다. 스스로 역사에 동참하겠따는 결심은, 설령 그 결심이 절박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희망이다. (49-50쪽)

운명에 이름을 지어 줄 수 있을까. 운명에 종종 기하학 단위 같은 규칙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표현할 명사는 없다. 드로잉 한 점이 명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중략) 어떤 이미지가 더 많은 다른 이미지들과 결합될수록, 그 이미지는 더 자주 생생해진다. (71쪽)

노인이 되어 가는 동안, 어떻게 그림들은 그렇게 아름답게 남아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 그림들은 왜 바뀌지 않는 걸까. 너무 근사한 마돈나의 얼굴은 왜 나이를 먹지 않은 걸까. 왜 그 눈은 그동안 흘린 눈물로 멀어 버리지 않은 걸까. 어쩌면 그 불멸성-영원성-은 강점이 아니라 약점이 아닐까. 어쩌면 그런 식으로 예술은 자신을 낳은 인간들을 배신하는 것일까. (82쪽)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은 만남의 장소로 꽤 특별하다. 전시관이 마치 거리 같다. 산 자(관람객들)와 죽은 자(그림 속의 인물들)로 북적대는 거리.
하지만 죽은 자들도 떠나지 않았다. 그 인물들이 그려질 당시의 ‘현재‘, 화가들이 만들어낸 현재가 마치 그들이 직접 살았던 그 순간의 현재만큼이나 생생하고, 인적이 느껴진다. 가끔 더 생생한 경우도 있다. (99족)

만약 인간에게 있는 침묵할 수 있는 역량이 말할 수 있는 역량과 동등하다면, 분명히 인간의 삶은 훨씬 더 행복했을 것이다. (117쪽)

인간 신체는 매우 많은 수의(상이한 본성을 지닌) 개체들로 합성되어 있으며, 이 개체들 각자는 매우 복합적이다. (중략) 인간 신체를 합성하는 개체들, 따라서 인간 신체 그 자체는 매우 많은 방식으로 외부 물체들에 의해 변용된다. (중략) 인간 신체는 외부 물체들을 매우 많은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이것들은 매우 많은 방식으로 배치할 수 있다. 인간 정신은 매우 많은 것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신체가 좀 더 많은 방식으로 배치될 수 있게 됨에 따라 더 많은 것을 지각할 수 있다. (147쪽)

드로잉은 무언가를 지향하는 실천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연에서 발생하는 다른 지향의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드로잉을 할 때 나는, (중략) 대상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을 받는다. (중략) 드로잉은 무언가를 꼼꼼히 살피는 형식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려는 본능적인 충동은, 무언가를 찾으려는 욕구, 점을 찍으려는 욕구, 사물들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어딘가에 위치시키려는 욕구에서 나온다. (중략) 모든 드로잉은 각자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독창적인 것이 되기를 희망한다. 매번 드로잉을 시작할 때마다, 우리는 그때만의 서로 다른 희망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번 드로잉은 예측할 수 없는 그때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실패한다. 그럼에도 모든 드로잉은 비슷한 상상력의 작동으로 시작된다. (중략) 바로 그 상상력의 작동-우리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많은 것들처럼 복잡하고 모순적인 그것을, 나는 정의 내리고 묘사해 보고 싶은 것이다. (155-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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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은유들'은 연대 별로 21명의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그들의 철학 개념을 메타포로 시각화 한 그림책이다. 그림을 보면 개념이 떠오른다. 

메타포(metaphor)는 은유, 비유이다. 학창 시절 외우고 분류했던, 비유법과 은유법이 떠오른다. 예로 강 같은 인생이나 인생은 강이다의 의미는 다르다. 은유는 뭐는 뭐다,는 바로 전하려는 말의 핵심이 들어 있다.  

'철학에서 은유는 대부분 개념적 은유이다. 형태가 없어 보이지 않는 개념 또는 아이디어를 실재하는 무언가를 지칭하는 표현과 결합하여 감각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이를 통해 개념은 이미지가 된다.(2쪽)'

철학의 은유에 들어 있는 각각의 이미지들은 추상과 구성의 경계를 허물어, 우리가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는, 메타포적 의미 전이, 즉 연관되지 않은 전혀 다른 의미로 넘어 갈 수 있는, 의미가 구상이 아니라 추상으로 전이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질문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나를 나타내는 은유는, 나의 삶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은유는 무얼까, 추상으로 마무리하려 하지만 구상으로 해체하여 인식한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재해석하고 성찰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내가 말하니 말 장난 같다.

철학의 은유는 미래를 예측하거나 과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 공공의 이익, 공동의 선, 행복 추구에 목적을 두고 있다. 

철학적 은유의 여정은 강에서 시작하여 액체로 끝난다. 아니 열어두고 있다. 오래 전부터 우리가 찾아 온 철학적 은유들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특히, 나에게는 사막의 은유가 그렇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가장 적합한 새로운 철학적 은유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1. 고대

*헤라클레이토스: 강: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만물은 흐른다. 끊임없이 변하고 운동하는 세계는 강물의 은유를 통해 시각화되며, 흐르는 강물처럼 모든 것은 변화한다. 우리가 다시 강물로 내려갈 때, 이미 처음 내려갔던 순간의 우리는 아니다.


*파르메니테스: 구: 존재자는 모든 방면에서 완전하여 완벽한 구와 유사하다: 이 세계에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으므로, 비존재는 사유하거나 탐구할 수 없다. 따라서 존재는 불멸하고 유일하며, 변하지 않는 완전한 실체로 남는다.


*노자: 음양: 만물은 음을 등지고 양을 가슴에 안고 있다: 음양은 양면성 또는 세계를 구성하는 상반되는 성질을 나타내는 보편적인 은유로 사용된다. 


*플라톤: 동굴: 사람들이 거대한 지하 동굴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사슬을 끊고 동굴 밖으로 나가야만 햇빛을 쬐며 바깥 세상의 진짜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이성으로 인지하는 이데아의 세계만이 진실이며, 감각으로 경험하는 현실은 일종의 환영이다.


*에피쿠로스: 정원: 나그네여, 여기서 그대는 편히 지낼 것이오. 이곳의 최고선은 쾌락이라네: 정원 안에서는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 요소인 평온함(아타락시아)과 자족의 상태(아우타르케이아)가 꽃핀다.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꼭두각시: 꼭두각시가 되지 말라: 우리는 외부의 힘에 의해 조종되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오직 행복을 향해 나아가도록 부추기는 우리 내면의 열정이다. 내면의 충동과 열정을 제어함으로써 얻는 고요만이 우리를 적대적인 세상의 불안과 억압에서 자유롭게 하고, 행복을 위해 필요한 자주성을 갖추게 한다. 


*아우구스티누스: 거울: 지금 우리는 답이 희미한 수수께끼와 같은 거울을 통해 보고 있다: 거울에는 신만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의 자리는 없다. 거울 속 이미지는 당신과 같고자 하나, 그러지 못하기에 거짓인가?


2. 중세

*오컴: 면도날: 더 적은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더 많은 것을 통해 얻는 일은 헛되다: 면도날 은유는 꼭 필요하지 않은 모든 가설, 가정 또는 명제를 제거할 것을 요구한다. 논리와 신성 사이의 명확한 구분선을 그어, 철학적 사고와 신학적 사고를 분리한다.

 

3. 근대

*몽테뉴: 여행: 나는 무엇 때문에 여행을 하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내가 피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만, 내가 찾으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하곤 한다: 여행은 자아와 세상을 탐구하는 행위가 되며, 여행에서 얻은 경험과 인상을 언어로 재구성된 여행 경험은 그 과정에서 생겨난 의식의 변화를 증언하는 역할을 한다.


*홉스: 늑대: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어떠한 개인도 자연 상태에서는 타인에게는 늑대가 되어 위협적 존재로, 자신과 가까운 이들에게는 희생자이자 처형자로 변하는 인간이기에, 생존을 위해 외부의 질서에 의존할 필요가 있다. 개인이 자신의 자연권을 포기하고 주권자에게 그 권리를 위임한 국가가 탄생한다. 


*디드로: 빛: 이 땅에 빛이 퍼지리라: 현재를 계몽하여 미래를 변화시키고자, 지식을 모두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발간한 백과전서, 진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절대성을 잃고 상대적 개념이 된다.   


*칸트: 비둘기: 가벼운 비둘기는 자유로운 비행을 하다가 공기의 저항을 느끼면서, 공기가 없는 공간에서라면 더 잘 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인식과 경험의 한계를 무시하고 감각적 근거 없이 이성만으로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잘못된 추론을 경계한다. 


4. 19세기

*헤겔: 부엉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밤의 고요가 찾아올 때 모습을 드러내는 부엉이처럼, 철학도 현실 세계가 형성되고 인식 과정이 완성된 후에야 비로소 날개를 펼친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목해라.


*키르케고르: 비밀" 그러니까 비밀이란 직접적으로 지식을 표현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비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으로, 내면의 핵심을 나타내는 이미지다. 비밀을 통해 우리는 나와 타인을 구별하고, 삶의 여정에서 앞으로 나아갈 힘의 원천이 되는 각자의 고유한 개인성을 발견하게 된다.


*마르크스: 아편: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 세속적인 고통을 초월해 행복을 약속함으로써 종교는 사회를 마치 몽유 상태에 빠뜨린다. 그로 인해 사회는 현실의 불의를 감지하고 이에 대응할 능력을 상실한다. 아편처럼 종교는 사회를 움직이는 경제적 기반을 짙은 연기로 가려버린다. 그러나 종교를 민중의 아편으로 만든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의 조건이다. 종교와 사회경제적 구조는 긴밀히 얽혀 있다.


*니체: 바다: 바다가, 우리의 바다가 다시 열렸다. 이렇게 '활짝 열린' 바다는 아마도 이전에 존재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경직되고 유연성이 결여된 모든 철학적 사고를 비판하면서 열린 바다처럼 유동적이고 역동적이며 현실을 생생하게 해석하는 열린 사유의 밑그림을 그린다.


5. 20세기

*프로이트: 빙산: 수면 위로 보이는 일각으로 빙산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무의식은 의식에 의해 억눌린 트라우마, 두려움, 은밀한 욕망과 잊혀진 갈등이 저장된, 인간 내면의 지하 창고와 같다. 90%는 수면 아래 있고(무의식) 단 10%만이 물 위로 보이는(의식) 빙산 이미지, 우리의 내면 세계는 의식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면 아래 잠긴 무의식 안에 숨겨진 에너지에 의해 지속적으로 압박을 받는다. 


*비트겐슈타인: 놀이: 나는 또한 언어와 그 언어가 얽혀 있는 활동 전체도 '언어 놀이'라로 부를 것이다: 인간의 언어는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며, 특정 상황에서의 규칙을 따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놀이'이다. 문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혼동하거나 잘못 사용하는 데서 생겨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벤야민: 아우라: 아우라는 지금, 여기와 연결되어 있다: 복제 불가능한 고유성에서 비롯된 '아우라'는 복제 과정에서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아렌트: 사막: 사막은 인간 내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한다: 사막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 정치적 공간이 사라질 때 생겨나는 황폐한 공간이다. 정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 공적이고 공통된 공간에서 나타난다. 정치가 부재할 때 사막은 확장된다. 우리 사이의 사회적 공간, 즉 '사이 공간'을 지켜내면서 사막의 확장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들뢰즈/ 가타리: 리좀: 기좀은 시작도 끝도 갖지 않고 항상 중간에 있다: 지식, 문화, 사회는 모든 지점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횡단적 네트워크로 간주한다. 단일한 기원이나 원인을 찾기보다는, 현실을 다양한 요인과 힘, 현상들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이해한다. '리좀식' 사고는 억압적이고 지배적인 '수목식' 사회 위계 구조에 저항한다.


*사이드: 동양: 동양은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규정되었다: 동양의 은유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문화적 표현이 어떻게 권력 및 정치와 상호작용하며 '타자'와 '그들'에 대비되는 '나'와 '우리'의 개념을 형성하는 데 관여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머틀러: 매트릭스: 이 관계들은 주체 형성을 위한 매트릭스를 구성한다: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특정한 규범 체계 내에서 구성되는 방식을 설명한다. 기존의 규범 체계를 벗어나는 행동이 발생할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매트릭스가 가시화된다.


6. 21세기

*바우만: 액체: 삶의 유동성과 사회의 유동성은 상호 작용하며 강화된다: '액체 근대성'의 삶은 끊임없이 형태와 경로를 바꾸며 이동한다. 사회 구조는 급격히 변화하며, 사람들이 적응할 겨를도 없이 해체되고, 인간 간의 연대는 약해지며 공동체 의식은 희미해진다. 개인의 정체성은 부유하며 관계, 유행 그리고 무분별한 소비의 영향을 받으며 쉽게 변한다. '액체 현대'에서 철학은 고정된 이론으로 남아서는 안 되며 우리에게는 새로운 철학적 은유가 필요한 때 일지도, 우리는 새로운 은유를 찾는 길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이승국이 해설하는 '누구나 클래식' 들으러 세종문화회관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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