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바쁜 일상에 치여 놓치고 있었던, 그러나 참으로 소중한 것들 46
정희재 지음 / 걷는나무 / 2010년 4월
구판절판


인생이란 어느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이며, 가장 나다운 나와 만나는 먼 여정임을 이해했다.-37쪽

종교를 가지거나 명상을 하고, 온 세계를 헤매고 다녀도 내려놓기 힘든 것이 인간의 에고이다. 그런데 사랑에 빠진 순간 우린 광속보다 빠른 속도로 자신을 내려놓는다. 누군가를 자신보다 더 아끼고 사랑할 수 있게 되며, 세상을 향해 마음의 빗장을 모두 열어젖힌다. 사랑이 아니라면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다. 기적이 일어났던 순간, 우린 이미 천국을 맛본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천국에서 보낼 날들 가운데 얼마의 시간을 먼저 쓴 것일까. -71쪽

해가 지면 안도하고 새벽이 오면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겁났다던 분들. 그런 세월을 살면서 알아차린 것이다. 게으른 눈에 속으면 안 된다는 것을. 사람의 눈은 어리석기 짝이 없어서 해야 할 일 전부를, 인생 전체를 돌아보며 겁먹기 쉽다는 것을, 엄마는 말했다. 오직 지금 내딛는 한 걸음, 손에 집히는 잡초 하나부터 시작하면 어느새 넓은 콩밭은 말끔해 진다고, 반드시 끝이 있다고.-124쪽

바로 '처음' 만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이와 나 사이에는 과거에 쌓아 둔 '인과'가 없었다. 사소한 오해를 빚었던 일도, 기쁨을 나눴던 기억도 없는 백지 상태의 인연, 마음의 열림과 기적 같은 소통이 가능했던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순조로운 의사소통을 막는 첫걸음은 과거의 기억에 있다. -172쪽

시간이 지나면 연인은 연인이 아니라 전우로 기억된다. "전우여......" 하고 부르면 왠지 코끝이 찡해진다. 막상 장렬하게 싸우고 싶었던 상대는 인생 그 자체였는데, 엉뚱하게 한 사람을 과녁에 세워 놓고 자존심, 열정, 애정, 신뢰를 요구하며 양쪽을 다 황폐하게 했음을 알게 된다. 어린아이가 무엇인가를 가지고 싶어 고집을 부릴 때, 몽골의 유목민들은 아이에게 손바닥을 쫙 펴 보라고 말한다. 아이는 영문을 모른 채 손바닥을 편다. "이제 손바닥을 깨물어 보렴." 아이는 꽉 편 손바닥을 깨물어 보려고 얼굴을 찡그린 채 입을 오물거리낟. 혹시 이걸 성공하면 제 말을 들어주지 않을까 싶어 열심이다. 그러나 아무리 여러 번 시도해 봐도 되지 않는다. 엄마 아빠는 이 모습을 보다가 웃음을 떠뜨리며 말한다. "사람이 살면서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란다. 갖고 싶은 게 아무리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고 해도 말이야." 사랑도 이와 같다. 애당초 손바닥은 깨물기 좋게 생기지 않았다. 내 손바닥도 깨물지 못하거늘 상대의 손바닥이야 말해 뭣하랴. 전쟁같은 사랑이 지난 뒤에야 손바닥과 손바닥은 서로 마주 잡기 좋게 생겼다는 걸 깨닫는다.-219-221쪽

어떤 느낌에 사로잡힌 나를 본질적인 나라고 착각하지 말 것. 이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것이란 없다는 사실을 기억 할 것. 느낌에도 분명 생로변사가 있으니 현재의 느낌 속으로 충분히 육박해 들어가 느낌의 한 생애를 이해할 것. 불을 쓰다듬어 보고서야 뜨거움을 안 아이처럼 나는 화상 입은 영혼에 붕대를 감고 오직 그 사실만을 기억하려 한다. -290쪽

주머니 두 개가 달린 앞치마를 두르고 하루를 보내는 수행이 있다. 한쪽 주머니에만 콩을 한 줌 넣어 둔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릴 때마다 빈 주머니에 콩을 하나씩 옮긴다. 화가 날 때 한 알, 즐거울 때 한 알, 측은함을 느낄 때 한 알, 누가 마음에 안 들 때 한 알, 맛있다고 느낄 때 한 알..... 밤이 되면 옮긴 콩 개수를 헤아린다. 그 콩의 개수가 바로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깨어 있다고 느낀 횟수다.-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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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알아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눈치를 채든, 모른 척 하든, 그러면서 사랑이 만들어져 간다. '건축학개론'을 봤다. 그 남자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때문에 나서지 못했다. 그 여자는 조심히 기다리고 있었다... 안타까운 현실에서 기대볼 수 있는 첫사랑, 예전의 집을 살려 새로이 건축되듯 그들은 서로의 첫사랑을 확인한다... 첫.사.랑은 현실에서의 삶을 따뜻하게 해주고 힘을 준다. '모르는 여인들'은 각자의 고립된 삶에서 어색한 타인과의 관계맺기 위해 노력하는, 각자의 존재만으로도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결국은 시간과 공간의 끝간데 까지 가봐야 알게 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때만이라도 그녀와 그에게는 서로에게 사랑의 존재였음을 말하고 있다.... 팍팍한 현실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다. 그게 첫사랑으로 건너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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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여인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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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어지면 그 사람 신발에 발을 몰래 넣어보고 싶다. 소녀 시절엔 내 또래 여자아이들의 운동화 속에. 처녀 시절엔 그 남자들의 구두 속에 내 발을 몰래 넣어보았을 것이다. 여자든 남자든 젊은이거나 나이든 이거나 가리지 않았다. 그동안 나와 친밀하게 지냈거나 지금 그렇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도 모르게 이미 내가 그들의 신발에 내 발을 가만 집어넣어봤다는 것을 알는지. 내가 특별히 신발을 좋아하는 것 같진 않다. -26쪽

다시 한 사람을 향한 격정 속에 빠져서 매 순간을 휘둘리고 싶지 않다. 한 사람을 욕심내는 일은 격정만 주는 게 아니라 절망을 함께 준다. 그래서 가차없이 그 사람에게 상처를 입혀버리기도 한다. 그 격정과 절망 속에 다시 나를 밀어 넣고 싶지 않았다. -232쪽

가끔 이렇게 다른 사람의 기막힌 인생을 듣게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편하게 기대고 있던 등이 나도 모르게 곧추세워져요. 내가 하루하루 이어지는 일상을 두고 뭐가 이렇게 시시하담, 싶어 권태를 느꼈던 것을 상대가 알까 싶어 미안해지는 때가 그런 때예요. 어제 같은 오늘이란 말의 뜻이 권태나 무료가 아니라 별일 없이 무사하다는 뜻이란 것을 실감하는 때이기도 하구요.-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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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치고 있다. 울고 싶다. 쉬고 싶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때, 좌절될 때, 인정받지 못할 때, 비교 당할 때, 부러움과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과 같이 있을 때, 바보 같을 때, 무력할 때, 모가지 위까지 올라오는 목소리를 눌러야 할 때, 엉덩이를 덜썩 들고 일어나 걸어 나가지 못할 때,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비합리적일 때, 인정받지 못할 때, 여러가지 많기도 하다. 이게 나의 모습이다. 또한 방어, 외재화, 투사, 동일시, 역전이로 점철된 모습이다. 때론 생뚱맞게 울고 싶기도 하고, 다운되어 우울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타인에게 끌려가지 않기, 가만히 머물러 있기, 모른 척하기가 필요하다. '하던 일 하지 않기' 와 '하지 않던 일 하기'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난 아직도 도상(道上)에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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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가지 행동 - 김형경 심리훈습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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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습은 '정신분석 과정을 철저히 이행하는 작업(working-through)'을 우리말로 번역한 용어이다. 훈습은 유식 불교(唯識佛敎)에서 따온 용어로, '지각과 의식을 통한 경험이 가장 깊은 층에 있는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배어들어 저장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정신분석 작업은 '분석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증상과 저항을 철두철미하게 극복하여 치료에 성공하는 것'을 뜻하므로 훈습보다는 '철저 작업'이라는 용어가 적합하다고 제안하는 이들도 있다(장 라플랑슈, 장 베르트랑 퐁탈리스, [정신분석 사전]). 미국 심리학자 스콧 펙은 그 과정을 '훈련'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훈련 과정을 통해 심리적 고통을 줄이고 절제력, 정의감, 용기 같은 가치를 위에 책임감을 발달시킨다고 제안한다. -8쪽

프로이트는 [끝낼 수 있는 분석, 끝낼 수 없는 분석]에서 훈습과정을 이렇게 정의한다. "훈습은 우리가 외면해 온 것을 되찾는 작업이며, 부정했던 것을 수용하여 온전하게 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또한 과거에 묻힐 뻔했던 것을 현재가 되게 하여 우리 자신의 것으로 경험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마크 엡스타인은 [붓다의 심리학]에서 훈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훈습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관점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관점이 아닌 정서를 변화시키려 노력한다면 단기간의 성취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서에 집착하거나 혹은 회피하려 함으로써 자유로워지고자 노력하는 바로 그 감정에 매인 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26-27쪽

사랑한다느 것은 의존 욕구가 있다는 뜻이고, 미워한다는 것은 원하는 것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애착이나 원망의 감정이 없다면 제대로 분리되고 자립된 상태임에 틀림없었다. -74쪽

입장차이, 진실 부재, 자기 이익. 세상의 모든 갈등은 그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갈등의 삼 요소는 틀림없이 나르시시즘과 불안의 심리 위에 꽃피는 현상으로 보인다. 정신분석가들의 기법 중에 '모르는 채로 머룰기, 불분명한 지대에 머물기'가 있다고 한다. 내담자의 혼란스럽거나 단편적인 일상 이야기 속에서 무의식적 진실에 도달할 단초를 발견할 때까지 모르는 채로, 불분명한 상태로 기다린다. 이해되지 못하는 것, 알지 못하는 것, 소통되고자 하는 무의식의 의미를 인식할 준비가 될 때까지 혼돈 속에 머문다. 내담자의 무의식이 떠올라 분석가의 무의식에게 말을 걸 때까지.-112-113쪽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의존성, 결핍감, 시기심, 자동 강박 반복 추구와 관련되어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는 불안, 분노, 공포, 방어기제 등의 감정과 관련 있었다. '나는 자유다.'는 인정 지지 욕망, 존재 증명 시도, 내면의 감독관 등과 관련된 문장이었다. 세 범주의 감정들은 인간이 고통받는 내면의 모든 요소를 포괄하고 있었고, 유아기에 잘못 만들어 가진 생존법과 관련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니코스 카잔차키스 묘비명-150쪽

치료란 어린 시절에 위험하다고 느껴 억압하고 회피해 둔 감정을 다시 느끼는 일이고, 그것을 표현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체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81쪽

투사적 동일시와 역전이가 어떻게 다른지도 경험 속에서 구분하게 되었다. 역전이가 상대방의 감정을 다만 거울처럼 비추는 작용인데 반해 투사적 동일시는 상대의 감정이 아예 이쪽으로 건너 오는 것 같았다. 역전이는 마주 앉아 있는 동안 상대의 감정을 경험하지만 헤어진 후에는 서서히 흐러졌다. 투사적 동일시는 마주 앉아 있는 동안에는 내면에 별다른 동요가 없지만 헤어진 다음 날 아침 내면에서 올라오는 낯선 감정과 맞닥뜨리곤 했다. 투사적 동일시는 역전이보다 열 배쯤 강한 강도로 느껴졌고, 구체적 에너지처럼 건너오는 힘이었다. -207쪽

유아기 전쟁 트라우마를 처리하지 못해 노년이 되어서까지 작은 일에도 불안해하고, 분노하고, 망상을 짓는 노인들을 보는 일은 가슴 아프다. 그 감정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이유 없이 분노와 불안에 처하게 된 젊은이들을 보는 일은 더욱 안타깝다. -221쪽

진정한 이타 행위가 가능하려면 내면의 결핍과 요국들이 철저히 점검되어야 한다. 결핍감이 있는 상태에서 행하는 이타 행위에는 보상을 기대하는 무의식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행위 뒤에 좌절과 분노를 만나기 십상이다. 심지어 타인의 선행에 대해서 의심하고 비난하게 된다.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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