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은유들
페드로 알칼데.멀린 알칼데 지음, 기욤 티오 그림, 주하선 옮김 / 단추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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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영역에서 메타포는 서로 다른 두 단어의 동일화, 다시 말해 ‘의미의 전이‘를 뜻하며, 이는 대부분의 서양 언어에서 동일하게 이해된다. (2쪽)

문학 작품처럼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인간 삶을 탐구하는 키르케고르의 철학은, 인간에 대한 하나의 완전한 지도를 그려 낸다. 다양한 가명을 사용해 쓴 그의 글은 여러 삶을 소개한다. (중략) 각 장면마다 인물들은 존재 가능한 여러 좌표를 제시하며, 독자는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고 다양한 대안을 고려해 선택한 길 위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비밀의 은유는 인간 영혼의 깊숙한 영역을 탐험하는 데서 시작된다. 비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으로, 내면이 핵심을 나타내는 이미지다. ‘비밀‘을 통해 우리는 나와 타인을 구별하고, 삶의 여정에서 앞으로 나아갈 힘의 원천이 되는 각자의 고유한 개인성을 발견하게 된다. (32쪽)

아렌트가 말하는 사막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정치적 공간이 사라질 때 생겨나는 황폐한 공간을 가리킨다. (중략) 인간은 그 자체로 정치적 존재가 아니며, 정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 공적이고 공통된 공간에서 나타난다고 보았다. 사막은 바로 이러한 공적 공간이 사라진 결과이다. 정치가 부재할 때 사막은 확장된다.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바람은 모래 폭풍처럼 불어와 남아 있던 건강한 상호작용의 공간과 인간성을 말살하려는 세력에 맞서 살아 있는 작은 오아시스까지도 덮쳐 버린다. 더 큰 위험은 우리가 회피와 오락이라는 신기루에 빠져, 귀신처럼 떠돌며 사막의 삶에 적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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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은 순전히 제목에 끌려 펼친 책이다. 아울러 표지에 따뜻한 스웨터, 사과, 크로아상, 버섯 등 그림도, 중간 중간 삽화도 한몫했다. 번역도 참 잘하셨다. 

행복은 언제나 함께 있다. 기억의 저편에서 부터 넘어온 행복이 지금도 넘친다. 


'우리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삶. 거의 다다를 뻔했던 삶.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있었던 풋풋한 삶. 하나의 소박한 판타지라 할 수 있는 그 삶은 집 안에서 치러지는 절차의 순서를 바꾸기만 하면 얻을 수 있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바꾸는 착한 광기가 약하게 일기만 하면 될 일이다.(16쪽)'


서른 네편의 행복의 항목들에 하나하나의 추억까지 버무려저 더디게 읽혔다. 아니, 아껴서 읽었다.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은 파리 별장에 머물렀을 때, 아침 일찍 폴 베이커리까지 걸어가 크루아상 사서 냄새 맡으면서 온 기억이 난다.

첫 맥주 한모금,의 맛을 어찌 잊을까, 생맥주 한잔에 오백원했던 그 시절, 뭣 모르고 아껴가며 마시던 기억이 있다.

일요일 저녁에,서는 화장실이 집안에 있었던 우리 집, 친구들의 부러움으로 욕조에 물 가득 담고, 손가락 끝이 쪼글했던 기억이 있다. 이사 오기 전에는 엄마와 공중 목욕탕으로 명절 전에는 꼭 다녔던 기억도 있다.

아침 식사 때 읽는 조간신문,에서는 한겨례가 처음 나왔을 때, 보던 신문을 교체하여 바꿨던 기억, 그리고 아빠가 닭장차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가족들과, 특히 둘째 동생과의 치열한 논쟁, 기억이 난다. 다시 다른 신문으로 바꿨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자전거의 휴대용 발전기 소리,에서는 딸들을 차례로 태워서 운동장을 돌아 줬던 기억과 자전거 배우면서 무릎 깨진 기억도 있다.

바닷가에서 책 읽기,는 처음 바다를 본 기억이 있다. 아직도 바다가 좋다.

처음 하는 페탕크,는 아빠가 보여준 손으로 하는 마술과 함께 악기 놀이했던 기억, 목마와 양팔에 한명씩 올려서 좌우로 흔들어 줬던 기억도, 그리고 이제는 카드 놀이와 윷놀이, 화투, 힐링 게임까지 하고 있다.

멈춰 있는 정원,에서는 마당있는 한옥에 살 때 엄마가 매년 가꿨던 맨드라미, 봉숭아, 사루비아, 붓꽃, 나팔꽃 등이 있다. 서로의 손톱을 물들여줬던 그 시절이 그립다. 양옥집으로 와서는 감나무, 대추나무, 라일락 나무 등이 있었고, 그 아래 사루비아꽃(엄마는 이 꽃이 가장 오래 간다고 예뻐함)이 만발했었다.   

가을 스웨터,는 엄마가 떠준 노랑색 스웨터가 생각난다. 중학교 입학해서 하복 입기 전까지 입고 다녔다. 특히 팔꿈치에 둥그랗게 덧댄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는 가끔씩 내가 떠서 하나씩 나눠주고 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어떤 소설,은 우리자매들이 좋아했던 추리소설이라 서로 돌려가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집집마다 전집을 들여놓던 시절, 아직도 친정에 가면 세계명작 시리즈들이 도열해 있다. 십오소년표류기, 보물섬, 김승옥 무진기행,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등이 아직 기억난다.

영화관에서는, 아빠와 엄마가 선 보던 날, 두 분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아빠가 마음에 딱 들었던 엄마는 아빠의 손을 그때 꽉 잡았단다. 87살 할머니는 아직도 94살 할아버지 손을 잡고 계신다. 

바나나 스플릿,은 달콤함이 넘칠 때, 가끔 일상에서는 커피믹스로, 여름에는 팥빙수로, 겨울에는 단팥죽으로 스트레스를 날리고, 나의 입이 호사를 누린다. 맛있으면 영칼로리를 믿는다.    

이동 도서관,은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어릴 때 시골 동네로 다니며 사진 찍어 주던 이동 사진관이 생각난다. 그리고 부모님들은 우리 오남매의 백일, 돌 사진도 다 찍어 주셨다. 

옛날 기차를 다시 타다,는 아주 느린 새마을호, 무궁화호 기차가 떠오른다. 대전역 광장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났던, 그리고 경춘선 타고 중도 가서 자전거 탄 기억도 난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하기,는 얼마를 넣었더라, 가물한 기억에 전화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가 직접 본 거보다 더 가까이 느껴졌던 일, 연애할 때 사용했던 전화카드가 아직도 보물로? 있다. 그때는 손편지도 썼다. 그러고 보니 삐삐도 있었다. 

   

2. '바느질 수다(마르잔 사트라피 지음)'는 이란 여성들의 원색적이고 바늘같이 뾰족한 아찔한 수다지만, 수다의 끝은 멋진 조각들로 이어져 있다. 여자들이 모두 이런 내용의 수다를 떠는 건 아니다란 생각이 들지만, 이야기 내용을 포장하고 정도의 차이가 나서 그렇지, 동일 선상에 있는 것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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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필리프 들레름 지음, 고봉만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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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에서 크루아상 하나를 집어 든다. 따뜻한 기운은 여전한데 반죽은 조금 물러진 것 같다. 차가운 이른 아침을 걸으며, 약간의 식탐도 부리며 먹는 크루아상. 겨울 아침은 당신 몸 안에서 크루아상이 되고, 당신은 크루아상의 오븐과 집과 쉴 곳이 된다. 서서히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딘다. 당신은 황금빛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푸른빛과 잿빛을, 그리고 사라져가는 장밋빛을 가로지른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어쩌나. 당신은 이미 하루 중 가장 좋은 부분을 먹어버렸으니. (9-10쪽)

소박한 삶의 상징들에 결부된 지적 허영은 종종 감미롭게 느껴진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것은 시골풍의 사치다. (23-24쪽)

이것은 모순적인 사치다. 우리는 가장 완전한 평화 속에서, 진한 커피 향 속에서 온 세계와 소통하는데, 그 세계가 담긴 신문에는 전쟁의 참화, 사건 사고가 난무하다. 똑같은 소식을 라디오로 들었다면, 연신 휘몰아치는 말 때문에 주먹질을 당한 듯 벌써 스트레스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리라. (중략) 하지만 그 폭력에서는 까치밥나무 열매 시럽과 코코아, 구운 빵 냄새가 난다. 신문은 이미 그 자체로 우리의 마음을 진정시킨다. (31쪽)

두 팔을 펼쳐 모은 상태로 오래 책을 읽다 보면, 턱이 스르르 내려가 모래사장에 파묻힌다. 입안으로 모래가 들어온다. (중략)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보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고, 싫증이나 들쭉날쭉 쾌락을 맛보기도 하는 것, 이 모든 게 다 바닷가에서 책 읽기에 포함되는 것이다. 눈이 아닌 몸으로 책을 읽는, 그런 느낌이 든다. (40쪽)

엉겁결에 초대를 받으면 기분이 좋다. 속박에서 벗어나 몸이 몹시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다. 초대 받은 집의 검은 고양이가 무릎 위로 기어올라 앉으면, 마치 내가 그 집에 입양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 삶은 그곳에 움직이지 않고 머물러 있다. (47-48쪽)

그러나 사과 냄새는 예전 기억 이상의 그 무엇이다.(중략) 지하 저장고나 어두운 곳간의 추억을 떠올린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지금, 이곳에 살아 서 있기에 옛날 일을 떠올린다.(중략) 사과 냄새를 맡으면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 그것은 이전보다 더 강건한 어떤 삶, 더 이상 우리 것으로 누릴 수 없는 ‘느림‘의 냄새이기 때문이리라. (78쪽)

때마침 괜히 바나나 스플릿을 주문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그 후회의 감정이 당신을 어쩌면 따분한 단맛일 수 있는 바나나 스플릿을 끝까지 먹게 만든다. 건강해진 타락이 나약해진 식욕을 부추기러 온다. 어린 시절, 찬장 속 잼을 몰래 꺼내 먹던 기분처럼, 우리는 어른의 세계에서 부적절한 쾌락을 훔쳐온다. 규범에 의해 마지막 한 스푼가지 배척당하는 쾌락. 바나나 스플릿은 우리를 죄악에 빠뜨린다. (104쪽)

시간을 버리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을 버는 것일까? 여하튼, 길게 뻗은 직선을 그리며 조용히 열을 지어 돌아가고 있는 이 무빙워크는 나에겐 하나의 긴 공백이다.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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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집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는 추리소설이 최고다. 

그 안에서는 반드시 밝혀지고, 드러나는 진실이 있다. 

역사와 버무린 미스터리, 그 속에서 우리네 인생이란 이런거다로 알 수 있다. 

누군가 권력을 취하는 상황에서 누구는 편익을 취하고, 누구는 고통을 당하면서 개인의 삶은 달라진다. 

그러한 틈새에서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선택지가 아주 미비하다. 그러나,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알지만, 지금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살고 있다.  

요즘 애정을 갖고 보는 메이저리그가 우리네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

시간 제한이 없는 야구(연장전은 있지만)에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요기 베라 명언)'가 나왔으니, 우리 시간도 끝날 때까지 일단은 최선을 다해 보는 거다. 

최근 LA다저스 팀의 믿기 어려운 퍼펙트 경기가 9회말 2아웃에서 뒤집혀진다, 이런 거 보면 최선을 다해도 어렵더라,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최선 뿐이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건 언제나 어렵고 힘든 거 같다. 

오늘 어디에서 날아 온 돌멩이로 생긴 자동차 앞 유리 돌빵 복원 수리했다. 멀쩡한 도로에서, 이런 게 인생 같다. 밝힐 수도 없고 드러나지 않는 일로 인해 아까운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추리 소설 내용에서 옥의 티라고 생각되는, 캐드펠 수사의 아들이 나온다. 굳이 아들로 연결할 필요까지,,, 그리고 13살 소년의 생각이 그 정도로 깊다니, 놀랍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만 위로와 위안이 된다.

글의 내용이 뒤죽박죽, 소설 내용과 작금의 정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뒤로 하니 이렇다.   

가을이 옷 자락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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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여인 캐드펠 수사 시리즈 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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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도 사촌 사이 같지 않은 사촌인 그들은 싸움에 휘말려 서로를, 그리고 잉글랜드를 갈가리 찢어놓았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한 연중의 농사, 철이면 철마다 해야 하는 쟁기질과 씨레질,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수확하는 일도 계속되어야 하는 법이었다. 영혼의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뽑고 수확하는 이곳 수도원과 교회의 일상도 마찬가지였다. (17쪽)

내 경험하기로, 산다는 게 편하고 평화스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네. (34쪽)

죽음과 유사한 수면의 상태와 깨어 있는 삶이 엇갈리는 지극히 짧은 순간마다 그의 기억을 차단하고 있는 장막이 얇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장막은 얇아지기만 할 뿐 결코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 (148쪽)

극단의 상황에 처할 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야말로 생존에 가장 큰 힘이 되는 법이다. (167쪽)

해야 할 의무 이상의 첵임을 스스로에게 지워서는 안 되지. 당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야 마음껏 후회하고 고백하고 참회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는 건 다른 얘기요. 하느님의 평가만이 유일하고 정당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185쪽)

지난 다섯 세기 동안 누군가 특정 시기에 특정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물론 세상은 달라졌겠지. 하지만 그 세상이 지금의 세상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만일이라는 가정은 아무리 해봐야 의미 없는 것이오. 그보다도 우리가 서 있는 현실에서 출발해야지. (186쪽)

왕가의 사람들이 권력을 차지하고자 서로 치고받는 곳에서는 저열하기 짝이 없는 또 다른 인간들이 제 이익만을 쫓아 조금의 망설임이나 자비도 없이 시류를 이용하리라. 캐드웰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저열한 인간들이 날뛰는 곳. 범죄가 만연하고 정의가 실종된 곳에서는 근방의 집집이 온갖 악행의 제물이 되는 법이다.(306쪽)

사실의 한 토막만을 가지고 어떤 사태를 판단해서는 안 되는 법이거든. 비록 그 한 토막의 사실이 자백처럼 명명백백한 것이라 해도 말이지. 다른 사실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바가 없지 않느냐.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의 해답을 찾는 일에 있어서는 특히 신중해야 해. (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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