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XIQUE(프랑스어로 독, 중독의)에 중독된 프랑수아즈 사강이 전문 의료 시설에서 치료 받는 동안 쓴 일기다.

중독된 상황에서도 그녀는 글쓰기와 책 읽기를 통하여 자신을 해독한다. 그녀는 두렵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문학적으로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해독한다. 

그래서 이 글은 '해독 일기'다.

특히, 그녀의 일기와 맞물려 베르나르 뷔페의 아주 강력한 그림이 인상적이다. 진하고 굵은 검은 색의 그림과 글씨가 글의 내용을 뒷받침한다. 사강의 심리 상태와는 반대로 그림은 아주 강렬하다. 반어법 같다고나 할까. 

최근 어디서 읽은 글, "글쓰기는 발현이 아니다.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이행이 아니다. 이미 있는 것에 대한 해독이다. 당신이 이미 해놓은 것에 대한 해독이다." 사강의 해독은 글쓰기였다. 해독이란 단어에서 두 가지 의미가 같이 떠올라 옮겨 본다.

*해독 解讀 : 어려운 문구 따위를 읽어 이해하거나 해석함. 

*해독 解毒 : 몸 안에 들어간 독성 물질의 작용을 없앰.


그리고 특히, 옮긴이의 말도 참 좋다. 


뜬금없이, 무더위라 하면 1994년 아들이 태어난 해를 잊을 수 없다. 기록은 갱신하기 위한 것이지만, 나에게 더위는 그때가 단연 으뜸이다. 벌써 8월이니, 금방 추위가 오겠지요.   

그래서 지금 할 일은, '내게 반하고, 나를 돌보고, 햇볕에 몸을 그을리고, 근육을 하나하나 다시 키우고, 옷을 차려입고, 끝없이 내 신경을 달래고, 나에게 선물을 하고, 거울 속의 나에게 불안한 미소를 지어 보여야 한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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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 일기 안온북스 사강 컬렉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백수린 옮김 / 안온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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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앰플 없이 열세 시간을 버텼다.
이건 사건이 틀림없다. (17쪽)

나 자신과 함께 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기묘한 기분이다.
고백하자면 내겐 나하고보다는 함께 시간을 보내면 더 좋을 것 같은 사람이 대여섯 명 있고, 그런 이유로 나는 나 자신과 맺는 관계 앞에서 거만해진다. (23쪽)

이제부터 나 자신과 맺는 행복한 관계는, 자연이 주는 육체적으로 편안하거나 고양되는 몇몇 순간과 다른 존재들을 제외하고, 오로지 문학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중략) 품에 안을 사람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을 때, 그리고 고독이 더는 아무도 주지 않는 일거리와 같은 의미가 될 대, 인생은 서글퍼지니까. (25쪽)

나는 글 쓰는 게 몹시 좋다. 건강한 작가가 마지막 문장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며 거만한 포즈를 취하듯, 내가 담배를 입에 문 채 머리 뒤로 손깍지를 하고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27쪽)

인과응보를 믿지 않던 내가,
나의 주정뱅이 형제들, 파리의 밤을 함께했던 사람 좋고 다정한 무리들이여, 이제는 더 이상 당신들을 이 바에서 저 바로, 이 자동차에서 저 자동차로 따라다니지 못하겠군요. 아니면 술을 조금도 마시지 않고 따라다니거나. 하지만 그건 안 될 듯해요. 그런 건 슬플 것 같거든요. (35쪽)

나는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이 무시무시한 사실은 행갈이를 해서 써줄 가치가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떤 일이 벌어지든, 문학적으로 생각하거나 글을 쓴다.
나는 남은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내게 반하고, 나를 돌보고, 햇볕에 몸을 그을리고, 근육을 하나하나 다시 키우고, 옷을 차려입고, 끝없이 내 신경을 달래고, 나에게 선물을 하고, 거울 속의 나에게 불안한 미소를 지어 보여야 한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 (43쪽)

오로지 먹기 위해서, 그리고 햇볕을 쬐기 위해서만 일어나는 건 매력적인 일이지.하지만(그러고 보면 나도 참 어지간하다), 그렇게 하는 건 사흘을 도둑맞는 것 같다는 기분이 동시에 든다. 내 인생의 사흘, 침대와 소파만 오가고, 조금 답답해하면서,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하려고 애쓰며 보내게 될 시간. (48쪽)

어쩌면 이 하찮은 일기를 쓰는 것 말고 다른 방식으로 내 문학 활동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단편? 그래, 그런데 뭘 쓰지? 도입부가 서른 개나 떠오르는데 결말은 없다. (56쪽)

프랑수아즈
좋아, 아주 좋아. 내 관심사는 이거다.
단편소설을 써야지. 문제는 ‘계획‘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쪼그라든다는 사실이다.
비가 내린다.
"아, 삶은 얼마나 느리고, 희망은 얼마나 격렬한가?"
아, 아폴리네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나는 얼마나 지루한가.
그냥 도망쳐버릴까? 어쩌면. (59쪽)

큰비가 온 뒤에 읽는 랭보. 잘 알던 앙다유 해변에서 이 시들을 읽으며 혼자 않아 있었던 어느 아주 이른 오후가 생각난다.
아주 커다란 행복. (63쪽)

나는 어떤 것들을 배웠다. 어쩌면 속임수였을지도. 그런데 언제쯤이면 내게 애스턴을 몰 힘이 생길까? 포르트 마요 교차로를 속력을 좀더 내서 달릴 힘이...... 도로와 광정들이 모두 그립다.
돌진하는 그 검은 보닛, 믿음직스럽고 정겨운 그 소리, 약간 길쭉한 재규어, 약간 묵직한 애스턴. 너희 때문에 죽을 뻔하고 나니 너희가 죽도록 그립구나. (66쪽)
아주 인간적이야. (67쪽)

그들과 함께 택시를 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예전에 나는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았다. 지금은,
더 이상 아무것도.
속상하다. (69쪽)

나는 왜 항상 상황 속으로 뛰어들지 못했던 걸까? (75쪽)

프루스트를, 스완의 열정을, 행복해하며 다시 읽는다. 진정한 행복은, 진실과 산문이 일치하는 순간처럼 드문 일이다. 나는 문학에서 발명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내가 포크너를 읽으며 한 번도 진찌로 감동을 받은 적이 없는 이유다. (중략) 나 혼자 쓸데없는 말놀이를 하는 대신 단편소설이나 써야겠다.
초등학생, 약에 취한 초등학생 같다. 진짜다. (77쪽)

마치 텅 빈 느낌. 이 건강 타령은 너무 길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못하게 된 기분이다, 정말 이상한 기분.
병은 정말 최악이다. (79쪽)

이 병이 낫지 않는다면 염두에 둘 하나의 흔한 해결책처럼. 나를 두렵게도 하고 혐오스럽게도 하지만 죽음은 일상적인 생각이 되었고, 만약의 경우 직접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슬픈 일이지만 필요한 일일 것이다. 내 몸을 오래 속이는 일은 불가능하다.
자살하는 것. 맙소사, 때때로 우리는 얼마나 혼자가 될 수 있는지.
(중략)
넉 달 동안 나는 두려웠다.
두렵고 두렵다는 게 나는 지겹다.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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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라는 의미를 다른 시각으로 크게 되새긴다. 그 많은 실패를 아무렇지 않게 만드는 글이다. 오히려 실패는 삶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한다. 실패를 이겨내고 견뎌내야만 하는 시각이 아니라 실패를 삶의 구성 요소로 삼을 수 있으며 결핍을 넘어서 새로운 조건의 기반으로 볼 수 있는 자세로 확장시켜준다. 글을 읽으면서 실패한 모습을 되새김하고 후회와 자책으로 돌아가는 무한 반복의 시간이 멈춤 했다.

저자는 프란츠 카프카, 페르난두 페소아, 장 콕토 같은 작가들을 실패의 예로 든다. 우리가 읽고 있는 작품들이 이들의 실패에서 나왔다는 게 놀랄만하지 않는가. 그리고 스스로 실패했다고 여기고, 실패자로 자신을 규정했다는 사실에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특히, 번역에 관한 부분과 읽을 줄 안다는 부분을 읽을 때, 실패라는 사실을 의연히 편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모든 책은 번역 불가능하고, 번역가는 덧없는 것을 마주하는 위대한 실패자(54쪽)이기 때문이고,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무슨 말인지 몰라 실패를 거듭하지만 의미의 명쾌함이 무에 그리 중요할까, 텍스트는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인 것처럼 보이기(205쪽) 때문에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러고 보니 실패는 존재 이유, 일상적으로 감당해야 할 몫, 삶의 원동력으로 이제는 '더 낫게 실패하기'가 숙제이다.

그리고 저자의 실패 목록(76쪽/103쪽) 중에서 전화 한 통 넣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권 완독하기/ 자기 기만의 강력한 유혹에 저항하기/ 책 귀를 접거나, 맹인을 치거나, 크리스티앙 보뱅의 책을 사는 지경까지 나를 놓아 버리기/ 후회하기/ 등이 흥미롭다.

덧붙여 나의 실패에 위로가 되어 준 71쪽 글이 있다. '나는 글을 쓰면서 실패하기 때문에. 혹은 글을 쓰면서 실패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삭제하고 다시 쓸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비단 글 쓰는 사람만이 아니라 다시 쓰는 사람recrivain이 되어야 한다.' 

[각별한 실패]를 각별하게 강력하게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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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별한 실패 - 글쓰기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힘
클라로 지음, 이세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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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llir‘, 이 동사는 뭔가를 행하는 것인 동시에 행하지 않는 것, 실패인 동시에 아무것도 심지 않는 것이다. (11쪽)

베케트의 저 유명한 문장을 어찌 인용하지 않을 수 있으랴.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가. 더 낫게 실패하라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하지만 이 수수께끼 같은 명령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 더 낫게 실패하라니? (19쪽)

번역은 실패의 명문 학교다. 프루스트 말마따나 질투가 사랑의 진실인 것처럼, 번역이 문학의 진실일 수도 있다. (33쪽)

카프카의 작품은 미완으로 얼룩지고 결함에 침식당하고 파편적으로 흩어진 채로도 그 필사적이고도 견실한 노래로 감동을 준다. 그 노래는 글쓰기를 불가능한 구원을 연결하는 것만큼 확실하게 실패를 삶과 연결한다. 다른 작가들이 보잘것없는 성공에 만족할 법한 지점에서 카프카는 멋지게 실패해 낸다. (중략) 이 실패는 창조의 조건이다. 카프카는 실패에 저항하여 글을 쓴 게 아니라 실패와 더불어 썼다. (94쪽)

페소아는 습관의 인간이었다. 글쓰기만이 중요하고, 자신이 정해 놓은 작업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무조건 두려워하고 보는 인간, 그렇지만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정부, 도시, 가까운 이들마저도. (140쪽) 물론 이명異名 문제도 페소아가 자아를 고정하고 목소리를 통일할 수 없도록, 나아가 그럴 능력이 없었음을(거부했음을?) 보여준다. 수많은 인물로 이루어진 이 놀라운 파편화는 불안을 자아내는 그의 근본적 공허를 내보인다. 만약 그가 여러 명이라면 한 사람으로서는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141쪽)

자기로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실패이지만 타자들로서만 존재하는 것도 실패감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페소아는 이 두 가지 실패의 마찰에서 무한히 열려 있는 작품, 끊임없이 폭발하여 재구성되면서도 안정된 작품, 믿을 수 없는 다면체의 광시곡을 창조할 수 있는 거의 초월적 힘을 끌어냈다. ([불안의 책]은 그 뚜렷한 증거다. 페소아는 이 책에 최종적 형태를 부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프랑스어 번역본만 해도 판봉이 네 가지나 된다.) 페소아의 다극성 무기력은 사실 놀라운 폭발력을 지닌 엔진이었다. (151쪽)

콕토는 모든 것에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중략) 실패의 미학이야말로 유일하게 지속 가능한 미학이다. 실패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이미 졌다. (중략) 콕토의 실패는 실패감과 분리되지 않는다. 혹은 콕트의 경우는 실패감이 실패 그 자체보다 훨씬 더 격렬하고 현실적이라고 하겠다. (중략) 그렇다면 이 끝없는 실패감은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실패는 어떻게 미학을 정초할 뿐 아니라 콕토처럼 이름난 작가가 가장 잘 간직한 비결이 되었을까? (중략) 영원히 이해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이름깨나 날리는 동료 예술갇르과 어울리면서 더욱 심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콕토는 일종의 삐뚤어진 질투에 시달렸다. 그는 프루스트, 피카소, 주네가 되기를 꿈꾸지 않았다. 차라리 그랬으면 나았을 것이다. (159-161쪽)

그렇지만 사랑받고 싶다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의해 움직이고, 때로는 댄디즘에 매몰되며, 때로는 유행에 호되게 두들겨 맞으며, 세상이 가볍게 여겼던 콕토는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았을까? 콕토는 실패의 불안정한 미학을 자기 것으로 삼으면서 과격한 경계와 유행의 조롱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진심으로 자기 시대의 천재가 되기를 원했으나, 언론과 동료 예술인들은 그를 재주 좋은 광대, 뛰어난 제작자, 변덕스러운 도깨비 역에 한정시켰다. 20세기의 가장 놀라운 시 중 하나인 [레퀘엠]을 쓴 콕토는 그의 방어적 교만으로 인하여 사교계의 잠자리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의 가장 큰 실패는 이 현실을 무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168쪽)

읽기를 배우는 것과 읽을 줄 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 말하자면 극과 극이다. (중략)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내가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깨닫는다. 나는 나를 만나러 오는 것, 내게 닥치는 것을 여전히 읽을 줄 모른다. 이것이 시의 아주 위협적인 장점 중 하나다. 우리를 다시 한번 텍스트에 부딪히는 어린아이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 (186-187쪽)

실제로 읽는다고는 하지만 읽지 않을 때가 더러 있다. (중략) 그렇다. 의미는 결코 떡하니 주어지지 않는다. 의미는 때로 거부당하고 때로 부재한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페이지를 마주한다. 우리는 읽지 않을 수 없다. (중략) 우리는 말이 이해력의 세상을 버리고 떠났는지, 아니면 우리가 말의 마법에 공명하지 못하는 것인지 알고 싶다. 카프카의 말마따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처럼 파고들기에 실패한 것은 페이지와 우리 가운데 어느 쪽인가. (202쪽)

그래서 나는 기꺼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어가면서 실패한다. 완전히 제로도 아니고 제논을 추종하는 거북이처럼 모든 행에서 하나하나 축적해 간다. 그렇지만 텍스트 앞에서 - 행 앞에서, 시구 앞에서, 페이지 앞에서 - 좌초할 때도 텍스트를 읽으면서 읽지 않는 때만큼은, 혹은 그 이상으로 배우는 바가 있다. 텍스트는 펜 가는 대로, 오직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인 것처럼 보인다. (중략) 저항하는 책 안에서 버티는 것도 의미가 단어들의 지평 너머로 저물어 버린 때에 황혼의 횡단을 경험하는 것이다. (205쪽)

꿈꾸던/ 원하던/ 생각했던 책의 실패야말로 그 책이 구현 과정의 어느 시점에서 부딪히게 되는 이 무능 혹은 불가능성이야말로 기회라고 나는 믿는다. (선택은 아니지만!) 책은 혼란스러운 충동들의 소굴에서 태어나 생생한 이미지들을 먹고 자라며, 의도 혹은 상상의 부양을 그럭저럭 받지만 우연성의 불가피한 시간을 마주하는 것은 오롯이 책 자신의 몫이다. (239쪽)

실패하고자 노력하기 (중략) 글을 쓴다는 것은 실은 글 쓰는 방법을 모르면서 인생을 바치는 것. 끊임없이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나는 글을 쓴다고 믿으면서 필사했따. 그들을 추종한다고 생각하면서 모방했다. 계속 쓴답시고 방향을 바꾸었다. (중략) 나는 실패의 미묘한 기쁨을 발견했고, 어쩌다 가끔 듣는 찬사에 취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중략) 나는 제법 사랑받았고, 책들은 내게 그늘이 되어 주고 내 곁에서 함께했다. (중략) 나는 말을 하는 대신 글을 쓸 수 있었고, 다르게 실패할 수 있었다. (중략) 그 고장난 욕망으로 내게 유일하게 중요한 한 가지를 해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리라. 책 한 권 쓰기. 책들을, 무한히 써내기. 마지막 책은 언제나 끝에서 두번째 책이라는 마음으로. (242-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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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번은 가보고 싶다, 그 길을 걷고 싶다,에서 도저히 못 갈 거 같다. 못 가겠다. 안 가겠다,로 바뀐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저자가 까미노를 걸으면서 수집한 사람들의 말을 글로써 체험한다. 

사람들이 남겨 둔 여러 언어로 된 다양한 말에서 저자가 선택했지만, 그 말에서 내가 또 선택한다.

말, 말, 말이 너무 많다. 넘쳐 나는 세상에 또 끄적거려 보탠다.

누구에게 긍정이든, 부정이든 닿는 말이기를 바란다. 


우리말로 읽을 때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THE'의 의미가 '그'는 맞지만..

WHEN YOU LOSE THE MEANING OF THE WAY, 

REMEMBER WHAT YOUR CAMINO SHOULD BE, 

NOT "THEIR" OR "THE"

길의 의미를 잃었을 때, 

'당신의' 까미노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기억하세요. 

'그들의'나 ''가 아니라(78쪽)


*이 참에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이라도 가볼까,싶다.

*어마 무시하게 비가 온다.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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