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당연히 알게 되는 것이고 알게 될 거라 여겼다. 안다는 것은 스스로 익히거나 경험을 하거나 가르쳐 줘서 배우거나, 그래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늦게야 알았다. 그 나이가 되면 이런 상황에서는 적어도 이 정도는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여지없이 깨어질 때가 있다. 도무지 듣지도 보지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을 어찌 알까, 그래서 어떤 가정에서 성장하고, 부모 형제가 누구이고 등등을 헤아리게 된다. 우리 부모님은 우리가 스스로 알아 가기를 많이 바랐던 거 같다. 어쩌면 초등학교만 다녀서 당신들이 경험하지 못한 학교라는 상황이 무척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어찌됐던 오남매가 모두 당신들이 바라던 가르치는 사람들이 되었으니, 최강의 부모님을 만났다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았지만... 그러면서, 가끔은 이제서야 말한다며, 자라면서 섭섭했던 부분들을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내가? 그랬다고? 하면서, 네가 그렇게 여긴다면 지금이라도 미안이라는 말밖에 할 게 없다. 그래도 서로 살아 생전 주고 받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마음' 으로야 얼마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 '마음'을 알아 주는 이가 있다면, 머리에서 마음까지 얼마나 많은 길을 돌아 돌아 서로에 대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는. 꼬여가고, 엇갈리고, 때론 비수가 되어 서로를 힘들게 했던 그 마음들, 난 그런 상황이 와도 아닐거야,라는 마음이 누구에게도 비껴갈 수 없다는 것, 스스로를 용인하고 수용하는 범위를 아주 날카롭고, 얇게, 얕아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서까지 힘들게 하는 게, 그리고 우리가 서로 만나 같은 일을 할지라도 내마음과 네마음은 비슷할 수 있지만 같을 수는 없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어떨까... 말 또한 상황, 자존심으로 아낄 수 있다... 그래서 상처는 부메랑처럼 더 큰 상처로 되돌아 온다... 어떻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