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하고 딸년은 내 사는 꼴이 지저분하다고 부끄럽다지만...... 그것이 무엇이 부끄러운가? 내가 아는 부끄러운 것 중에 그런 것은 없어. 산 사람의 살림이 오만 잡종인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25쪽)
청계천을 사이에 둔 세운상가와 청계상가를 잇고 그 위를 사람들이 오가게 만들어 도심에 활력을 부여하고 기술자들을 발굴해 세운상가 일대를 새로운 명소로 재정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여소녀가 이해하기로는, 일단 지나가는 사람들을 늘리려는 프로젝트였다. 지나가다가. 그것이 다시 가능해질까? 지나가는 사람 자체가 없어 많은 가게들이 영업을 접었지만 여소녀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미적지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오간다고? 흠. (66쪽)
여기를 재생하려면 거짓말하지 말고 그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들이 되살리려는 것을 그들이 제대로 알아야 했다. 제대로 알려면 말이지 제대로 하려면...... 최소한 이 공간에서 인생을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 정도는 펼쳐져야 하는 거 아니냐...... 그들이 각자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는지 여행은 몇 번을 가보았는지를 알아보고 가족도 다 만나고 그들의 자녀는 어떤 학교를 다니고 어떤 직업을 얻었는지, 그중에 비정규직은 몇퍼센트인지까지도 다 알아봐야 했다. 그 이야기들로 두루마리를 만들어 이 거대한 상가의 내벽과 외벽을 몽땅 덮어버려야 했다. (68쪽)
이렇게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거나 움직일 때,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생각하지 않을 때, 나는 죽음을 느껴요. 매우 정지된 지금을요. 너무 정지되어서, 지금 바로 뒤를 나는 상상할 수 없고요. 궁금하지도 않아요. 지금이라는 것은 이미 여기 와 있잖아요. 그냥 슥...... 그렇죠 아저씨 말대로 이미 슥...... 따로 상상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나는 이 세계 이후의 저 세계라는 것을 상상하지 않습니다. 내가 현재나 과거를 생각할 때, 그것은 매번 죽음이고, 죽음을 경계로 이 세계와 저 세계로 나뉘는 것이 아니고 죽음엔 죽음뿐이며, 모든 죽음은 오로지 두 개로 나눌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격되거나 목격되지 못하거나. 그렇지 않나요? (80쪽)
같은 모델이라도, 그 기기를 다룬 사람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고 여소녀는 말했다. 세상에 그거 한 대뿐이니까, 빈티지를 고치려는 사람들은 고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살린다고 말하지. (101쪽)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어주기 위해 결혼한 게 아니라는 말을 간신히 삼키고, 그녀는 사진에 눈길을 주었다. (113쪽)
그녀는 그에게 묻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회적 약자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고통을 낱낱이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는 그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의 고통에는 어떻게 그렇게 무감각할 수 있는지. (140쪽)
그는 누군가에게 분노하기 전에 항상 그것이 부당한 것인지 아닌지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애썼다. 왜냐하면 자신은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므로 모든 일을 감정적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60쪽)
자랑거리가 된다는 것, 그게 중요했다. (250쪽)
어린 시절의 환경이나 유전적 기질로 원인을 추적할 수 있겠지만 그건 일부일 뿐이다. 폭행 사실이 밝혀졌다는 건 평생을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는 뜻이다. 딱 한 번의 순간적인 실수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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