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문학작품에 열광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의 독서일기를 통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책읽기를 배웠다. 나는 장정일의 독서와 사유에 편승했다. 착각이어서 부끄럽지만 내가 읽지도 않았던 많은 책을 읽었다고 생각했다. [독서일기]에 수록된 책을 읽으며 작가의 감상이 내 것이라 믿었다. 미숙했지만 뜨거운 가슴으로 책을 읽던 시대의 추억이다. (7쪽)
내가 시에서 희곡으로, 희곡에서 소설로 마구 장르 이동을 하게 된 이유도 어쩌면 나의 삶을 독재자처럼 휘둘렀던 그 변신 욕망, 여러 겹의 삶을 살고 싶다는 안타까운 욕망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비록 내 삶을 뿌리부터 ‘갈이‘하지는 못하였으나 장르 이동은 시인이 아니라 극작가로, 극작가가 아니라 소설가로 살 수 있게 해주었다. (19쪽)
하루키의 소설에 대책 없이 등장하는 플로베르, 테너시 윌리엄스, 헨리 제임스, 카잔카키스, 로맹 롤랑, 피터 폴 앤 메리, 밥 딜런 등의 옛 가수는 하루키의 주인공들이 상실의 세계를 버팀하는 양식으로 일용하는 문화적 할부일 뿐 아니라, 하루키가 독자를 유인하는 미끼이다. (25쪽)
물론 [즐거운 사라]가 이러한 선의의 해석을 감당할 만큼 수준 높은 작품이 아닐는지 모른다. 그러나 함께 문학을 하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종종 간과되는 문제로써, 특정 작품의 수준이나 미적 형상화가 미흡하다고 해서 그 작품이 표현과 출판의 자유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실 이러한 구실은 이념문학이 수난을 받던 80년대에, 긴급구제를 바라는 작품에 대한 서명을 피하는 핑계로 흔히 쓰였다. (34쪽)
요즘 말로 하자면 신라는 세계회가 가장 늦게 진척된 후진국이다. 그런데도 삼국 통일은 신라가 했다. 김용옥은 그 까닭을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 168쪽에 언급해놓았는데 나는 그것이 아주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 신라가 불교를 가장 늦게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만큼 토착성이 강했다는 것이고 그 줏대(주체성)가 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저력이자 동력이었다. 이 사실은 새로운 천년을 맞는 한국인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216쪽)
서른여섯 명의 표류자들을 받아들인 조선 왕실은 벽안의 표류자들을 신기한 구경거리로 삼아 술잔치의 어릿광대로 이용했을 뿐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고 빼낼 수 있는 기술과 정보에 대해 눈감았다. 그래서 강준식은 조선에서의 13년간을 일지로 기록했던 하멜의 [하멜표류기]와 그것의 해제를 담은 이 책에다 다소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우리는 코레아의 광대였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220쪽)
똑같은 책을 ‘자투리 독서‘로 한 달이 걸려 읽은 독자와 한달음에 읽어치운 독자는, 엄밀히 말해 다른 책을 읽은 것이다. 동일한 책이되 두 사람이 받은 임팩트가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그 책을 밤새도록 읽었다‘라든가 ‘나는 이 책을 들자마자 손에서 놓지를 못했다‘는 경험은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우리 인생은, 특히나 청춘은 그렇게 응축된 몇 개의 경험만을 나열할 수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243쪽)
그(전태일)는 많이 봐줘 봤자 고작 중학교 1학년 정도의 학력밖에 지니지 않았지만, 마르크스가 평생 런던의 왕립도서관을 출입하며 버렸던 노동의 원리와 변증법을 혼자서 깨달았다. (32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