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예찬 - 번역가의 삶과 매혹이 담긴 강의노트
이디스 그로스먼 지음, 공진호 옮김 / 현암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번역가가 하는 일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글을 쓴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고쳐 쓰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원래 A라는 언어로 쓰인 문학 작품을 B라는 언어로 쓰는 것입니다. 그럴 때 B언어(제2의 언어)의 독자 즉 번역서의 독자가 정서적으로나 예술적으로 A언어(제1의 언언)의 독자가 맛본 심미적인 경험에 필적하고 상응하는 원문의 맛을 보길 바라는 것입니다. (17쪽)

번역가는 원문에 마음의 귀를 기울여 원작자의 음성을 듣는 청자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번역문, 즉 제2의 원문을 들려주는 화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번역가가 들은 것을 다른 언어로 재생하는 것입니다. (20쪽)

제2의 작품인 번역을 제1의 작품인 원작의 의도에 최대한 가깝게 만드는 것은, 원작의 느낌과 효과에 대한 번역자의 충실성이라는 관념에 본질적입니다. 유능한 번역가라면 흔들리지 않고 그 목적에 헌신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번역으로 읽는 책은 번역가의 글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잊어서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42쪽)

문학 번역가는 두 갈래로 나뉘는 경향이 있는데, 하나는 원작자의 의도를 중시해야 한다는 오리지널리스트이고 다른 하나는 번역문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액티비스트다. 전자는 아주 미세하고 사소한 원문상의 차이까지 존중하여 번역어로 최대한 정확하게 되살리려 힘쓴다. 후자는 자의적 정확성보다는 조옮김한 음악과 같은 새 작품의 매력에 관심을 기울인다. 훌륭한 번역가라면 양쪽을 모두 겸비해야 한다. 번역은 언어와 언어 간 의미의 이동이 아니라 두 언어가 주고받는 문답이라고 페비어는 썼다. (59쪽)

독자에게나 작가에게나,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의 위협적인 혼선과 폐쇄된 국경을 넘어서 상호이해의 가능성에 들 수 있는 길 중 하나가 번역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겁니다.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외면할 수 없는 가능성입니다. (71쪽)

번역에 항상 따라다니는 절대적으로 이상향적인 이상은 충실성입니다. 그러나 충실성을 직역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직역은 어설프고 도움이 되지 않는 개념으로, 번역과 원본의 복잡한 관계를 심히 왜곡하고 지나치게 단순화합니다. (79쪽)

하지만 지금 저는 두 언어로 된 동일한 원문을 다루는 일이 아직도 신비롭다는 것을 그리고 번역과 원작의 아리송한 관계를, 은유적인 방법으로밖에 불러일으킬 수 없는 역설적인 상관관계를 표현할 길을 모색했지만 헛수고였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번역하고 개고하며, 특정 원문의 번역본은 원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바보들을 향해 투덜댈 때 머릿속 어느 구석엔가 도사리고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번역을 할 때 나는 정확히 무엇을 쓰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모방일까, 사색일까, 병치일까, 아니면 완전히 다른 무엇일까? 실제로 그 원문은 어떤 언어에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그 원문과 어떤 관계일까? 이런 질문들입니다.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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