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이란, 내 고통을 누군가에세 토해내는 일이란 기본적으로 모모가 마음의 이완과 함께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이를 바닷속에 둔 채로 숨을 쉬고 있는 엄마 아빠들에게는 그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죠. 당연한 얘기예요. 내 자시그이 생사 여부에 온몸의 신경이 빨랫줄처럼 팽팽하게 곧두서 있을 때죠.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도 아이를 찾고 나서 죽자는 마음이 드는 상태죠. 아이를 찾을 때까지는 자신에게 최소한의 이완도 허용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상황입니다. (31쪽)
그래서 치유란 그 사람이 지닌 온전함을 자극하는 것, 그것을 스스로 감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래서 그 히믕로 결국 수렁에서 걸어나올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거죠. 내가 가진 전문가로서의 역량이 있다면 오로지 그걸 하는 데 모두 쏟아야 한다고 느껴요. 내 지식, 내 힘, 내 명민함, 나의 분석과 계몽, 내가 배운 치유기법 등으로 사람이 구해지지 않더라고요.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고 기능적인 존재가 아니니까요. (56쪽)
그래서 그런 갈등을 털어놓고 나면 또 내 고통은 유가족들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데 내가 엄살을 부린다는 자책감이 들면서 괴로워지기도 하죠. 그런 갈등과 딜레마를 유지하면서 함께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거예요. 제대로 된 사람이라서 그런 겁니다. 남들보다 공감을 잘한다는 증거예요. 건강한 갈등과 모순을 견뎌야 오래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지금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나 하나만 돌볼 수 있겠어, 지금 내 삶은 좀 희생해야지‘ 그러면 길게 가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어요. 심리적 공익근무만으로 오래 버티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적인 욕구와 욕망을 완전히 탈색하고 살 수 있는 인간은 없으니까요. (102-103쪽)
그러다보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기가 더 늦어지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몰라서 못 돌아오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충분히 그리워하고 기억하고 슬퍼할 수 있으면, 슬픔도 그리움도 충분히 느꼈다는 느낌이 들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빨리 잊어야지, 내가 그러면 안 되지, 빨리 털어버려야지, 정신 차려야지, 하다보면 오히려 충분한 애도과정을 거치지 못해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더 오래 걸립니다. 그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은 거죠. (133-133쪽)
전문가를 이상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삶에 그닥 관계없는 분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일상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우리 삶이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빛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 존재다, 그걸 아는 게 사람 공부의 끝이고 그게 치유의 출발점입니다. 그게 사람 공부에 대한 제 결론입니다. (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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