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를 살기보다 자꾸 예전으로 가서 후회를 반복하고 있고 앞으로 일은 걱정을 하고 있다. 최근 엄마의 생신을 조율하면서 이제야 많은 걸 알았다. -언제나 늦게, 그것도 아주 늦게 알게 되는 주변과의 관계- 언제부터 맏이라는 나의 말이 규준과 규칙이 되어 버렸고, 말 하나에 많은 무게가 실려있음을 알게 되었다. 언제나 새로운 시선과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했다고 하는데도, 지나보니 타인들의 이해로 이만큼 관계가 유지된 것이다. 일단 가족내에서 부터 조금씩 권력?을 분산시키려 애쓰고 있다. 눈치보지 않는 환경을 만들려고 애쓰는데, 끝에 가서 한마디 뱉고 나면 다시 힘의 균형이 기우려고 하여, 다시금 지원하고 인내하고 있다.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도록, 일부의 나의 미성숙한 부분으로 지금의 현상보다 주관적이지 않도록 감정을 잘 조절하려고 한다. 이미 주어지고 가지고 있는 것을 놓아버리는 건 아주 어렵다. 실지로 내가 할 수 있는게 나에 대해서조차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데도...  낮은 인문학도 한 몫 단단히 했다. 타인을 내 삶의 중심으로 삼는, 배움의 목적은 남의 입장이 되는 것과 행복은 실로 주관적인데 객관적인 수치로 따지려 들다니. 우리의 삶에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결국 싸움의 목적은 소중한 것을 찾으려는 걸까. 과거는 끊임없이 기억하고 반성하고 성찰과 교육하여야 온전한 치유의 기회를 맛보고, 특히 부끄러운 기억까지. 타인을 보는 새로운 눈은 나의 경험의 눈과 사고의 틀이 아니라 그들의 눈으로 현실적 맥락으로 볼 수 있는, 나의 욕망의 투사로 바라 본 타인과 다른 문화가 아니라, 특히 라틴아메리카를 바라 본 시선을 주변의 타자로 배치시켜보면 나의 프리즘으로 가득 차 있다. 자기로부터의 탈출은 과연 될 수 있을까. 머물러 힘을 유지하고 행사하고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서 벗어나 존재양식의 삶을 추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 알아채는 거까지. 지금 여기에서 이전의 존재와 결별하는 상징적인 죽음을 경험하고 다시 지금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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