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문학적인 소양은, 내가 더 강해져 남을 쉽게 이기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일생 동안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을 배웁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배우는 이유는 나 자신을 벗어나 남의 입장에 서보는 연습을 함으로써 인간 마음에 내재한 ‘컴패션‘을 ‘밖으로 꺼내기e-ducation‘ 위함입니다. 최고의 인문학적 소양이란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암기나 이해가 아니라, 바로 자신을 없애고 타인을 내 삶의 중심으로 삼는 ‘컴패션‘입니다. (35쪽)
즉 내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배경에 있는 가장 큰 요소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내가 컨트롤하지 못합니다. 손 하나 다친 것도 내 맘대로 어떻게 해보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내 생각에 대해서도 적용시켜야 합니다. 즉 내 생각이라고 해서 내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믿고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하면 감당이 안 됩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 생각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안 돼서 우리가 다 고민하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미운 감정 하나도 내 맘대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인지해야 합니다. (77-78쪽)
또한 일본 문제와 별개로 과거에 대한 우리들 자신의 자세에 대해서도 성찰을 해볼 만합니다. 우리는 치욕적인 친일 매국의 과거에 대해, 군부의 쿠데타와 독재의 과거에 대해 어떠한 자세를 취하고 있을까요? 50년대 독일이 그러했던 것처럼 ‘화합‘의 미명 아래 지나간 과오를 성급하게 덮어버림으로써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171쪽)
사람들을 소유하고 소비하는 데서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것들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예속된다. 따라서 소유양식은 주체와 객체 모두를 ‘물건‘으로 만들어버리고 여기에서 주체와 객체의 관계는 죽은 관계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소유양식의 반대가 존재양식인즉, 존재양식의 삶을 살 때 사람들은 다른 인간들이나 사물들과 대립되는 협소한 자아에서 탈피해 자신뿐 아니라 다른 모든 존재자의 신성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와 함께 다른 인간드들과 사물들에 대해서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며 그들의 성장을 도우려고 합니다. (304쪽)
새롭게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전 존재와의 결별, 혹독한 오늘의 시련과 고통이 필요한즉,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할 것임을 굳게 믿어라. (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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