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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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것은 참을성을 잃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기 오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11-12쪽)

끝을 자꾸 늦추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생각했지...... 어떤 사람이 제멋대로 나를 침범하고 휘젓는 것을 묵묵히 견디게 하는 건 사랑이지만, 또 그 이유로 떠나가기도 하지.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31쪽)

그녀는 이제 어떤 사랑에도 생로병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상대에 따라 그 단계들을 유보시킬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41쪽)

그 말은, 잘못될 가능성이 50퍼센트라는 거잖아요?...... 살리려는 의논은 크게 말할 수 있어도, 죽이려는 의논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을 억지로 연장하는 게 능사는 아니지 않느냐고도 했다. (73쪽)

연애 때는 다 그런 건데. 사실 불타오르는 남녀 사이에 말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겠니. (105쪽)

믿게 하는 것. 통역은 그런 것이었다. (115쪽)

누구를 사랑하는 건 감출 수가 없는 일이었다. (126쪽)

단단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들, 부서지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는 동안 해가 완전히 사라졌다. (130쪽)

마지막까지 원은 없으실 분이야. 한 노인이 말했다. 자다가 죽었다고 해서 고통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지 않느냐고 누군가 말을 받았다. 고통이라고? 다른 노인이 반문했다. 무어든 찰나에 스쳐가버렸다는 게 복이지. 더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137쪽)

진즉 이혼을 단행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하는 수 없었다. 결저으이 순간에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방식으로 결정해버리고. 전생애에 걸쳐 그 결정을 지키며 사는 일이 자신이 자초한 삶의 방식이라고. (139쪽)

그들의 사랑이 불투명한 도기 주전자에 담긴 뜨거운 청주 같은 것이었다고 의심해야 했다. 한 잔씩 따라 달게 홀짝이다 보면 이윽고 비어버리는 것. 퍼내어도,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술병은 없었다. (151쪽)

어떤 사람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입 밖에 내는 일에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주 무시된다. (152쪽)

대화가 없어도, 음악이 없어도, 라디오 소리가 없어도, 사랑이 없어도, 세상 모든 소리와 빛이 사그라진 곳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관계였다. (182쪽)

집을 산다는 것은 한 겹 더 질긴 끈으로 삶과 엮인다는 뜻이었다. 부동산은, 신이든 정부든 절대 권력이 인간을 길들이기 위해 고안해낸 효과적인 장치가 분명했다. (184쪽)

상대적 불안감을 해소해주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203쪽)

고통은 울퉁불퉁한 자갈길에서 맨발로 혼자 버둥거리는 것과 비슷해서, 누가 손을 내밀면 조금 덜 어렵게 빠져 나올 수 있어요. (219-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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