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내어 읽는 즐거움 - 삶을 바꾸는 우리말 낭독의 힘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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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단지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닿고 싶은 마음은 아직 그리움이 아니다. 사무쳐야 그리움이다. 쓰라려야 그리움이다. 마침내 그리움과 나를 분리시킬 수조차 없어야 그리움이다. 그 감정의 뿌리가 그리움인지도 모른 채 한참을 방황하다가 비로소 인생의 어느 참혹한 문턱에서 그 황망함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이 그리움이다. 그리하여 그리움은 어쩌면 감정이 아니라 시간일지도 모른다.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시간, 영원히 멈출 수 없는 시간, 마침내 마음이라는 액자 속에 영원히 박제되어버린 시간. 그것이 내게는 그리움이다. (28쪽)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닫는다. 태어났잖아. 자라왔잖아. 지금, 살아 있잖아. 스스로를 달랜다. 살아 있다는 것만큼 눈부신 권력이 있을까. 타인에게 군림하는 권력이 아니라 오직 살아 있다는 이유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자유. 그것이 살아 있음의 권력이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것이 바로 출세다. 그 이상의 어떤 출세도 사족일 뿐이다. (91쪽)

반드시 그 사람과, 반드시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그 하나뿐인 순간의 맛을 알기 위해 얼마나 길고 아픈 기다림이 필요할까. (111쪽)

우리는 아내에게, 남편에게, 연인에게, 친구에게, 자식에게, 그리고 부모에게 가는 가장 가까운 마음의 길을 과연 알고 있는 것일까. 그저 `그 사람 마음은 대충 이런 모양이겠지`하고 짐작하고 예단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주 가깝다는 이유로, 매우 오래 보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찬찬히 관찰해보는 첫 마음의 조심스러움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152쪽)

소리내어 읽기는 너무 빨리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글마저 대충 대충 인터넷 화면 넘기듯 읽어버리는 우리의 무딘 영혼을 깨우는 몸짓이다. 글자 한 자 한 자 새겨 마치 하얀 눈발 위에 첫 발자국을 새기듯 읽어가다 보면, 이 한 줄의 문장을 쓰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인생을 걸었을 작가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고 눈물자국이 만져지는 듯하다. (195쪽)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된다는 것, 그것은 내 상처가 무엇인지, 내 결핍이 무엇인지, 내 한계가 무엇인지를 명징하게 깨닫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주변 환경은 무엇인지, 내가 끝내 혼자서 해쳐나가야 할 삶의 장애물은 무엇인지를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된다는 것은 거대한 미디어와 우리 손에 닿지 않는 정치적 권모술수에 내 삶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함부로 분석하고 재단할 수 없게, 그들이 우리 삶을 함부로 통제하고 장악할 수 없게 저마다 삶의 터전을 탄탄히 갈고 닦는 것이다. (226-227쪽)

나를 잘못 간직했다가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으미; 소리내어 읽으면, 다산의 마음씨가 보인다. `나`를 나답게 지키기 위해, 그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았던 크고 깊은 마음이 보인다. 나를 지키기 위해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할 때마다 새삼 꺼내 읽고 싶은 글이다.
*여기서 글은 정약용 [수오재기]

어떤 얼굴은 지울수록 더 선명하게 살아난다. 어떤 부담은 덜어내려 할수록 더 무거워진다. 어떤 사랑은 떨쳐내려 할수록 더욱 악착같이 심장에 달라붙는다. 어쩌면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지우려 애쓸수록 더 선연하게 살아나는 당신의 모습을, 평생의 짐처럼 등에 대단 채 살아가는 것. 그것은 어쩌면 인생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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