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우리는 항상 두 가지 시간 사이에 있다. 육체의 시간과 의식의 시간이 그것이다. 따라서 모든 문화권에서는 육체와 정신사이의 구별이 존재한다. 정신이 우선시되며, 무엇보다도 정신은 육체의 시간과 구별되는 또 다른 시간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17쪽)
그러나 모든 죽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그 유대에 속하긴 한다. 그들은 더-이상-삶이-없는-모든-존재로 거기 있다. 죽은 자들은 산 자들의 상상에 의해 존재한다. 죽은 자에게 이 변연은 산 자에게와는 다르게 어떤 경계도 장애도 아니다. (22쪽)
그림들이 보여주는 천재성 때문이 아니다. 그 그림들이 연유된, 그리고 그림들이 표현하고자 한 삶의 경험들-세상의 역사만큼 끈질기게 스스로 드러나는 욕망, 세상의 끝 같은 미묘함, 낯익은 몸에 대한 사랑을 마치 처음처럼 끝없이 재발견해 가는 눈-이 모든 것들은 말 이전에 다가와 말의 영역 너머로 옮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32쪽)
역사적 혹은 개인적 사건들에 의해 이미지의 중요성은 물론 변하지만 그려진 내용은 변함이 없다. 같은 병으로부터 같은 우유를 따르며, 바다의 파도는 변함 없이 같은 모양이고, 얼굴과 미소 역시 변함이 없다. 회화는 순간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것은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 왜냐하면 사진이 찍히는 순간과는 달리 그림이 그려지는 순간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화가 순간을 담아낸다는 말은 맞지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회화는 본질상 그 순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34-35쪽)
그러나 우리의 경험은 쉽사리 폐기될 수 없다. 시계만을 보면 시간은 느리게 가지도 빨리 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에 의해 시간의 흐름이 단일 과정이 아닌 서로 대치되는 두 개의 역동적 과정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축적과 낭비가 그것이다. 어느 한순간을 깊이 경험할수록 경험은 더 많이 축적된다. 그런 순간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 경우 낭비로서의 시간의 흐름은 저지된다. 살아 있는 시간은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와 밀도의 문제다. (48쪽)
시각은 눈을 의미한다. 눈은 보이는 것과 보는 존재가 만나, 관계를 이루어내는 곳이다. 하지만 그 보는 존재가 인간일 경우, 시간이나 거리 때문에 눈이 보지 못하거나 결코 볼 수 없는 것이 잇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과거에 보았던 것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이른바 부재의 시각적 경험 역시, 시각에 대한 인간의 이런 양면성을 가진 인식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하나의 사람짐을 마주한다. 사라지는 것, 보이지 않게 되는 것, 그런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을 부인하게 되는 것, 우리 존재를 무시하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을 이겨내기 위한 하나의 투쟁이 뒤이어 일어난다. 따라서 시각은 비가시적인 것 역시 실재한다는 믿음을 갖게 하고, 한번 본 것들이 공간이라는 복병에 의해 부재 속으로 사라지는 것에 영구히 맞서 보전하고 조합하고 정리하는, 내면적 눈을 기를 것을 촉구한다. (64-65쪽)
당신 편지 봉투에 씌여진 글자를 보면서, 당신 목소리를 듣는다. 목소리를 듣는 것과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은 다르다. 기억은 회상이다......목소리는 우선 몸에 속하고 다음으로 언어에 속한다. 다른 언어로 말하더라도 목소리는 동일하다. (67쪽)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 강요됨 없이 선택한 이 습관들은 그 자체로는 일시적이지만 반복을 통해서 다른 어떤 숙소보다 더 영속적인 주거처를 제공한다. 집은 더 이상 주거의 장소가 아니라 거기 살고 있는 삶의 숨겨진 이야기일 뿐이다. 혹독하게 말한다면, 집은 단지 그 사람의 이름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름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83쪽)
사랑은 모든 거리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분리와 공간이 아예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이든 사랑받는 사람이든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공간과 사랑 사이에는 원초적인 대립이 존재한다. (113쪽)
언어는 일어났던, 그리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인간 경험의 전체성을 낱말들을 통해 껴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위한 공간도 허락한다. 이런 면에서, 언어야말로 잠재적으로 인간의 유일한 집인 동시에 인간에게 적대적일 수 없는 유일한 주거지이다.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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