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변화 - 하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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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그녀를 위해서 사회적인 지위와 시민적인 관습, 나를 사랑하는 아내와 가정을 포기했네. 유디트는 나를 위해 포기한 것은 없었지만 모든 희생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어. 어쨌든 행동을 취한 사람은 그녀였지 않은가. 어느 날 기다림이 행동으로 바뀐 거야. (397쪽)

그러다 그 변덕의 근원이 내가 밝힐 수 없는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네. 그 근원은 바로 가난이었어. 유티트는 지난 기억과 싸웠네. 때로는 가슴 뭉클할 정도로 격렬하게 말일세. 그러나 가난이 그녀와 세상 사이에 쌓아 올린 둑이 무너지면서 그 영혼은 홍수에 휩싸였네. 유디트는 내가 자진하여 제공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 더 빛나는 것을 원한 게 아니라 무조건 `다른 것`을 원했어.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406-407쪽)

인생의 모든 것은 어쨌든 형식을 갖추어야 하네. 반란도 마찬가지지. 결국에는 모든 것이 삶의 진부함에 이르기 마련이네. (411쪽)

어린 시절의 불빛, 소리, 기쁨과 놀라움, 희망과 두려움, 우리가 사랑하는 것, 언제나 변함없이 찾는 것은 바로 그 기다림일세. 어른들은 그 기대에 찬 가슴 떨리는 기다림을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조금 돌려받을 수 있을 걸세. 사랑, 그러니까 침대와 침대에 속하는 것만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를 찾는 순간,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동안 기다리게 되는 순간들 말일세. (424-425쪽)

서로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되는 법일세. (441쪽)

나는 부자로서의 삶을 배워야 했어. 경외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배우고, 학교에서 교리문답을 익히듯이 달달 외웠어. 그러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저런 옷이나 넥타이가 아니라 다른 것. 완벽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 그들은 완벽해지기 위해 온 열정을 바쳤어. 모든 것에 있어 완벽하길 너무 바라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야. 그게 부자들의 병이 아닌가 싶어. 부자들은 못 몇 벌이 필요한 게 아니라 옷을 아예 몽땅 수집해야 하고, 또 한군데서 수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집안에 식구가 여럿이면, 옷도 식구 수대로 수집해야 하거든. 옷을 입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가지고 있기 위해서 말이야. (506쪽)

부유하다는 것은 건강이나 질병처럼 어떤 상태가 아닌가 싶어. 부유한 사람이 있고 부유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 부유한 사람은 희한하게도 늘 부유하고, 부유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돈방석에 올라앉아도 진정한 부자가 되지 못해. (516쪽)

내 경험으로 보아서 부자들은 엄청 교활하기 때문에 아주 조심해야 하거든. 게다가 부자들은 강인해. 왜 그러는지 무슨 수로 알겠어. 다만 부자들이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확실해. 잠옷 문제만 보아도 알 수 있어.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가 잠옷을 그런 식으로 펴놓게 하겠어. 그들은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 잘 알아. 밤이고 낮이고 똑똑히 알고 잇어. 가난한 사람이 그들과 마주치는 경우에는 성호를 긋는 게 좋아. 하지만 다시 한 번 분명히 말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돈만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진짜 부자들 이야기야. 돈만 많은 사람들은 별로 위험하지 않아. 그런 사람들은 유리구슬을 자랑하는 아이들처럼 돈을 내보이는데, 사실 그런 돈은 구슬처럼 사라져버리거든. (5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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