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늘 `그`때를 기억한다. 그리고 현재 글을 쓰는 나의 가슴을, 앞으로도 영원히 뭉클하게 만들 미래를 고집한다. (25쪽)
주전자의 물이 끓어오르면서도 넘치지 않는, 그 절도 있는 열렬함으로 사랑하라고 시인 김수영이 말했던가? 나는 왜 다른 것들은 다 그렇게 사랑할 줄 아는데 왜 사람하고 사랑할 때만 늘 그 물을 성급하게 넘치게 했을까? 결국 그 흘러넘친 물이 나를 달아오르게 하던 불길마저 꺼트리고 난 뒤에도, 나는 오랫동안 식지 않는 미련의 뜨끈함을 생의 옷자락으로 동동 감아 안곤 했다. (62쪽)
하지만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아버지는 머리핀 하나 안 사주신 대신, 내가 마음껏 울고 소리치고 대들 수 있도록 늘 침묵하면서 한 번도 나를 피하지 않고 내 주변을 서성거려 주셨다는 사실을, 내가 마음껏 미워해도 그 증오의 화살이 다른 사람들을, 혹은 세상을 향해 빗나가지 않도록 아버지는 기꺼이 내 유일한 과녁이 되어 주셨다. (93쪽)
쿠르베의 그녀(쿠르베 `세계의 기원`)도 별다를 것 없다. 체모의 풍성함이 누구누구보다 더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으려나? 이 비범하면서도 평범한 성기는 늘 쉬쉬하는 대상이 되어왔다. 아마도 책임 못 질 생식에 대한 우려가 이런 유의 이미지를 내내 억압한 탓도 있겠지만, 먹는 일에는 관대하면서도 싸는 일에 대해서는 호들갑을 떠는 우리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이중성 탓도 있다. 덕분에 헤어진 연인들은 늘 `그의 얼굴, 그의 손길, 그의 따뜻한 말투`만 그리워하지, 죽어도 그의 `성기`를 그리워한다고는 고백하지 않는다. (124쪽)
가난이 죄가 아니듯, 날 때부터 유복한 부모를 둔 이들에게도 죄는 없다. 다만 가난을 세습할 수밖에 없도록 내버려두는 사회적 시스템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할 누군가가 있어야 하겠지만, 그를 위해 다인의 취향까지 비난할 수는 없다. (148쪽)
"예술이란 게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제대로 해준 게 뭐가 있냐?"고 따지는 사람들에게는 오르세에 한번 가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밀레의 [만종] 앞에서 어떻게든 사진 한 컷을 찍으려고 타인의 시선은 무시한 채 떼를 지어 몰려들어 금지된 플러시를 터트리고야 마는 한국관광객들의 모습을 보라고. 그 한국관광객들이 흘린 돈은 어쩌면 가난한 파리 노숙자들을 위한 근사한 보금자리의 착공기금에 뵅질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한 현실참여가 어디 있을까.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 잘해내느냐이다. 밀레는 잘해냈다. (149쪽)
맞다. 내 말엔 줄곧 끝나고, 끝나고, 시작하고, 시작하고가 난무했다. 하지만 세상일 어떤 것도 그렇게 자로 줄을 긋듯 설명되지 않는다. 어느 시대에나 엄격함과 야들야들함은 병존한다. 다만 어느 하나가 살짝 우세해 보일 뿐이다. 사람 마음도 그렇다. 완강하고 금욕적으로 사는 사람에게도 야수같이 거칠고 폭발적인 감성이란 게 함께 있다. 다만 외부에서 강요하는 눈에 맞추어 자신을 포장하고자 그가 선택한 모습은 완고함쯤이었을 것이다.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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