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오는 밤에 늦게까지 읽은 라히리의 글에는 인간관계의 모든 양상이 나온다. 그리고 관계에서 파생되는 사랑, 갈등, 낯설음, 익숙함까지. 특히, 사랑하고 있는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글이었다. 슬쩍 스쳐간 손길과 눈길, 따뜻하게 섞은 말, 목소리, 모습, 기억들로 만나 점점 선선선 면면면으로 연인에서 가족이 되었지만 점선에서 실선까지 면으로 되기까지 서로는 모르는 부분이 아주 많다. 그래서 서로 연결되려 하고 겹치고 싶고 많이 알고 싶고 알게 된다. 그러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아니면 아주 많이 알게 되어 포만감에 차게 되었을 때가 그들 사랑의 유통기한이 된다. 그때까지 사랑하게 된다. "사랑해"란 말이 누군가에게는 깊이 새겨진 말이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의미없이 임시방편으로 내 뱉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말이 될 수 있다. 그때, 그때 말이야, 무슨 말 했는지 기억나? 나의 기억과 너의 기억을 맞추었을 때 딱 맞아 떨어지는 퍼즐의 한 조각이 된다면, 지금 이 순간 너와 내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경험 속에 있다면, 서로에게 여전한 모름이 알고 싶은 욕망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면, 또 함께 나눈 조각의 추억들이 지금의 힘이 된다면,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소통할 수 있는 서로가 될 수 있다. 이 먼 시간까지 살아 남았는데 서로에게도, 자식에게도 자랑스레 말 할 수 있다. "그 모든 게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나의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309쪽)" 그래서, 그럼에도, 그래도 사랑하려고 해야 한다. 모든 수고와 노력과 애씀이 사라질지라도... 비가 오니 가을에 떨어지는 나뭇잎같이 이 꽃들이 모두 떨어질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다. 비때문에 떨어지는 게 아니라 꽃들이 이파리들이 스스로 떨어지는 거 같다. 봄비가 왔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