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를 다녀왔다. 소울메이트, 그녀와는 1986년, 2001년, 2016년 여행을 했다. 발렌타인 30년산의 광고를 빌려 소감을 밝힌다. In 30 years, I've become older and wiser, but I'm still me. 30년의 세월은 내게 연륜과 지혜를 가져다 줬지만, 내 본질은 여전히 그대로다. - 그대로라는 것, 한결같다라는 것, 이거 무지 힘든 일인데, 우린 그대로였다.
홍차와 커피의 향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면, 그러면서 평생을 보아 온 눈과 앞으로 볼 눈까지 보았다. 눈이 시리도록 눈을 보았다. 여기의 눈과 거기의 눈은 달랐다. 오가며 읽은 '미술관에서 읽은 시'가 떠올랐다. 풍경을 보며 달리는 버스가 터널을 통과하면, '국경의 긴 터널를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셨다.'라는 설국의 첫장면과 닿게 된다. 특히, 장석주 [수그리다]와 이인상 [설송도](214-215쪽)가 여행내내 맴돌았다. 수그려야만 보이는 눈. 눈. 눈. 꽃피는 머리를 수그릴 때야 사람도 나무도 보였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눈. 내리다 멈추다를 반복하는 눈을 보며, 닿고 싶어도 닿을 수 없고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알고 싶어도 절대 알 수도 없는, 그런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마음 속에서 녹았다.
러브레터의 그녀처럼, '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를 몇번이나 외쳤지만 여전히 마음의 울림뿐, 그저 마냥 좋은 그 사람은 묵묵부답이었다. 어쩌면 평생을 산다는 게 눈을 두고 저만치 서있는 것 일수도... 윤의섭의 청어에서는 '기다린다는 건 기다리지 않는 것들을 버려야 하는 일. 등 푸른 눈구름이 지나가는 중이다. 국적 없는 눈송이들의 연착륙들이 이어졌고. 가로수의 가지들만이 하얀 속살 사이에 곤두서 있다. 버스를 기다렸으나 이 간빙기에서는 쉽게 발라지지 않았다.(142쪽)' 여행은 이처럼 버리는 연습을 하는 거지만, 기다리는 사람까지는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냥 좋아, 만나면 그냥 좋아를 떠오르게 하는 그 사람까지는 마음에서 내 몰 수 없다. 쉽게 발라지지 않는다.
어제는 여전히 꿈을 꾼 것 같은, 꿈만 같은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을 만났다. 풍수원성당을 거닐며,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간절히 그곳을 방문했을까.. 그때 그 사람을 만났다면 이와 같을 거 같은, 누구나에게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소원을 들어주는 그런 곳이였다. 주님이 걸어가신 동산도 올라 갔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그리스도, 지옥으로 내려가다]와 최지인 [아직도 우리는](116쪽)이 떠올랐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을 것 같다...뒤틀린 몸보다 곤혹스러운 것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낀다는 것.(118쪽)' 그리고 오딜롱 르동 [침묵하는 그리스도]와 이성복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244쪽)도 생각났다.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토록 피해 다녔던 치욕이 뻑뻑한, 뻑뻑한 사랑이었음을(245쪽).' 이곳에서 이뤄졌을 수많은 뻑뻑한 사랑을 확인하며, 오가는 모든 풍경들이 그림과 시가 되었다. 제임스 휘슬리 [회색과 금색의 야상고, 첼시에 내린 눈]과 안미옥 [너는 가장 마지막에 온다](276쪽)를 읽으며 나에게 가장 마지막에 오는 건 무엇일까?가 궁금해진다. 혹시 치욕으로 끝날 뻑뻑한 사랑도 하나쯤 남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