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는 서울에 눈이 내렸다. 조그마하고 따뜻한 공간에서 친구의 친구가 전시한 "좋아요 LIKE 사진전"을 갔다. 몇십년 만의 또 다른 친구도 만났다. 보고 싶었단다. 네명의 얼키고 설킨 수십개의 교집합의 원소들을 나누는데 창밖에서는 눈이 펑펑 내렸다. 좋.아.요를 몇번이나 되뇌었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를 따뜻하게 해주고 용기를 주는 말이다. 그러고보면 우린 좋아요를 듣기 위해 얼마나 많은 착한 눈빛과 착한 행동을 했는지. 그 많은 원소들은 모든 이가 말하는 좋아요의 합집합이었다. 그런 좋아요를 못 들을까 봐 조마조마도 했었지... 이젠 그러고 싶지 않아. 그 중 단 한사람의 좋아요로도 괜찮다고. 아니 아무도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눈오는 길을 걸으며 다짐했다. 

어제는 무기력, 무료함, 나이듦. 권태. 공허. 노인의 적나라한 삶을 보여 주는, 보기에도 불편하고 이해 안되는 장면까지, 정말로 youth하지 않은 영화, YOUTH를 보았다. 준비해서 살 수 있는 건 그 어떤 것도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만나는 사람이나 일은 그때 그때 살아내야 한다. 비켜 갈 수도 있지만 만나는 수도 있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만났다면, 차라리 만나지 않았다면, 하필 그때 그사람을, 그 일을 하다니, 이 모든 걸 운명이라 하기엔 우연에 더 가까운 거 같다. 노인들의 시선을 통해 젊음은 나이와 몸의 청춘이 아니라 끝나지 않을 아름다운 순간들을 잡고 있는 현재나 미래의 열정이나 열망이었다. 
그리고 보고싶다와 보고싶어를 주고 받은 문자들, 먼 거리와 시간으로 이러 저러하지 못하고, 감정에 자꾸 파묻힐 거 같은, 어디선가 끈을 놓친 듯한 시점에서. 또 다른 단톡에서 친구의 나가는 행동까지, 꼭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무지 피곤했다. 또 다른 빙점이었다. 마음이 어는 점은 다른 말로 하면 녹는 점도 되는데... 녹는 점이 좋아. 사람들과의 밀당과 피곤, 은유와 어중간한 느낌은 싫어... 얼게 만든이 보다 녹게 만드는 사람이 좋다. 나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좋.아.요를 말할 수 있는 관계에 집중하고 싶다. 아니 집중받고 싶어서 그 친구가 나간 걸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주기 보다는 받는 게 더 좋다. 그래서 좋아요에 목이 매이게/ 메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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