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을 들고 삼십년 전의 추억을 친구와 찾아 갔다. 첫발령을 받은 P여고, 샛파란 초임 때 갖고 있던 울렁거림을 잊게 만든 아주 작아진 학교를 눈 앞에서 만났다. 사진 한 컷을 찍었다. 그리고 옆길을 돌아 빈집으로 남아 있는 하숙집의 담벼락을 쓸어 줬다. 쓸쓸함이 묻어났다. 북부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을 걸어 아라비카 환호점에서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셨다. 그때의 학교는 무지 막지하게 큰 거인같았는데, 지금의 모습은 에게게 겨우 이정도였다. 학교보다는 하숙집이 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건물만 있어서... "바다는 다 같은 바다인데 내가 선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는 아우성이 있고 통영에는 흐느낌이 있다.(박경리 파시 중에서)" 해맞이 공원 벤치까지 우리를 이어 준 점과 선같은 수많은 인연들을 추억했다. 육거리와 오거리, 죽도시장까지 바다냄새가 생생히 넘쳐나는데, 그때는 들국화와 해바라기 노래로도 역부족이였던 힘듦과 외로움으로 가득했었다. 아리비카 본점의 아이리쉬 커피는 엄청 맛있었다.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어 보정과 교정을 거쳐 핸폰에 저장되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걱정말아요 그대 중에서)" 그 긴거리를 걸으면서 아직도 조금씩 자라고 있는 우리를 보았다. 이 긴 세월이 없었다면 택도 없는 일이었다. 역시 실물보다는 사진이 예쁘다. 그래야 한다. "모든 사진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는, 다시는 되돌아보기 싫은 풍경이나 시간을 찍으려고 하지 않는다.(안도현 사진첩 중에서). 사진첩속에 남아 있는 사진들은 먼훗날 내삶의 추억이 되고, "추억이란, 존재의 뿌리다.(안도현 사진첩 중에서)" 나의 일부로 남게 될 것이다. 그것을 펼쳐 볼 지는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