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벌레고개에서 행해지는 모험의 등급도 고갯길의 등고선에 따라 나뉘었다. 아랫동네 소년들은 집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았고 부모 몰래 불량 냉차를 사 먹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축이었다. 반대로 윗동네 소년들은 극히 불온하고 위험해, 모험이라기보다 범죄에 가까운 짓거리에 물들어 있었다. 결국 소년다운 모험은 삼벌레고개 중턱 소년들의 몫이었다. `높이의 모험`과 `넓이의 모험`은 중턱 소년들이 즐기는 모험의 씨실과 날실이었다. 높이의 모험은 윗동네 꼭대기에서 이루어졌고, 넒이의 모험은 아랫동네 개천가에서 이루어졌다. (13쪽)
그러나 은철에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옛날 부모들이 무섭게 먹을 걸 밝혔다는 점이었다. 한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 하고, 가을에 앵두가 먹고 싶다 하고, 고기가 먹고 싶다, 흰쌀밥이 먹고 싶다, 식탐이 한도 끝도 없었다. 어떤 효자는 병든 부모가 고기가 먹고 싶다 하여 자기 허벅지 살을 손바닥만 하게 잘라 맛난 양념을 하여 너비아니로 구워 올렸다 하고, 어떤 효자는 병든 부모가 소나 돼지도 아니고 콕 집어 개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여 개를 잡으러 나섰다가 마침 큰 개를 물고 가는 호랑이를 만나자 호랑이게게 개 대신 내 몸뚱이를 뜯어 먹고 개는 제발 나 달라고 몸부림을 쳤다고도 했다. 물론 살을 도려낸 효자의 허벅지는 금세 씻은 듯이 나았고, 호랑이 앞에서 몸부림친 효자는 심한 몸부림에 놀란 호랑이가 개를 떨구고 도망가는 바라멩 개를 메고 와 부모에게 삶아 먹여 병을 씻은 듯이 낫게 하였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은철은 덜컥 겁이 났다. (138-139쪽)
가을이 깊어가면서 삼벌레고개에도 단풍이 한창이었다. 마당이 넓은 아랫동네 주민들은 단풍을 자랑하기 위해 서로의 정원을 제한적으로 개방하기도 했다. 윗동네로 갈수록 수목을 키울 공간이 없어 판잣집 주변에서는 단풍을 보기 어려웠지만, 판잣집들 너머 택지로 개발 안 된 삼악산 수목의 단풍은 아랫동네 정원의 예쁘장한 단풍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웅장하고 수려했다. 우물가의 오래된 은행나무도 노랗게 물들었다. 그러나 우물집은 여전히 못 쓰게 된 우물 안처럼 조용했다. (219쪽)
순분은 두 아이를 안고 눈물을 훔치면서 원이 던진 수수께끼 같은 말을 생각했다.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고, 그렇게 다 있다고 했지. 눌은 놈 덜 된 놈 찔깃한 놈 보들한 놈. 순분은 그게 마치 사내들에 대한 형용 같다고 생각했다. 서슬이 퍼래서 당장 빨갱이 집을 쫓아내자고 설치고 다니는 통장 박가 같은 놈은 어떤 놈일 것이며, 밤마다 불안감에 사로잡혀 세댁네를 어떻게 내보낼 수 없을까 궁리하는 자기 남편 같은 놈은 어떤 놈일까. 같은 놈일까 다른 놈일까. 눌은 놈도 덜 된 놈도, 찔깃한 놈도 부들한 놈도, 어차피 그놈이 그놈 같았다. (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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