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해 지금 읽어도 새로운 것은 쓰인 당시에도 새로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전이라고 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당대의 진부함과 싸워야마 했습니다. 고전은 당대의 뭇 책들과 놀랍도록 달랐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진부함과는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낡거나 진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들은 살아남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후대로 전승되었을 겁니다. (16쪽)
우리는 자기 자신과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변은커녕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요. (27쪽)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됩니다.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31쪽)
사람들은 흔히 환상에 빠져 현실을 잘못 보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일까요? 인간이 그것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현실에 너무 집착해 자기 내면의 정신적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문제는 아닐까요? (67쪽)
소설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라는 어떤 우월한 존재가 책이라는 대량생산품을 소비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이야기가 책이라는 작은 틈을 통해 아주 잠깐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와 영겁의 시간에 접속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바로 이야기이고, 이야기가 바로 우주입니다. 이야기의 세계는 끝이 없이 무한하니까요. (69쪽)
책을 읽는 매 순간, 우리는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읽겠다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해서 한 권의 책을 끝내게 됩니다. 완독이라는 것은 실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만 읽고 싶다는 유혹을 수없이 이겨내야만 하니까요. (84-85쪽)
강가의 오리나무와 버드나무는 그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의 눈을 통해 보여진다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독자는 그뒤에 의미가 감춰져 있다고 믿기 때문에 허투루 보아 넘기기 않습니다. (87쪽)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은 것은 고유한 헤맴, 유일무이한 감정적 경험입니다. 이것은 교환이 불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한 편의 소설을 읽으면 하나의 얇은 세계가 우리 내면에 겹쳐집니다. 저는 인간의 내면이란 크레페 케이크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 위에 독서와 같은 정신적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을 이루며 쌓이면서 개개인마다 고유한 내면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104쪽)
한갓 독자에 불과한 제가 작가의 무의식을 파헤치려고 노력하고 소설을 작가가 읽기를 원한 대로 읽지 않으려 애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소설을 읽는 행위가 끝없는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소설은 일종의 자연입니다. 독자는 그것의 일점일획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자연을 탐험하면서 독자는 고통과 즐거움을 모두 느낍니다. (136-137쪽)
우리는 우리를 언제나 잘 모르고 있습니다. 소설이 우리 자신의 비밀에 대해 알려주는 유일한 가능성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그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것임에도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새로운 괴물을 만나기 위해 책장을 펼칩니다. (176-177쪽)
류슈디가 통찰했듯 책은 독립되어 있을지 몰라도 그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는 물이나 바다처럼 유동적이빈다. 그것은 흘러다니고 합쳐지고 나눠지고 인간의 내부를 `가득 채우`곤 합니다. 그러므로 독자가 된다는 것은 이야기의 바다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물을 받아 마실 수 있는 `계약자`가 되는 것입니다. (192-193쪽)
그렇다면 소설을 읽는 것은 바로 이 광대한 책의 우주를 탐험하는 것이빈다. 우리는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처럼 하나의 책을 통해 그 우주에 들어갑니다. 책은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이자 다른 책으로 연결해주는 징검다리입니다. 소설과 소설, 이야기와 이야기, 책과 책 사이의 연결을 찾아내는 것은 독자로서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면서도, 그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의 연결점을 찾아나가고, 그런 경험을 쌓아나가면서,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소설과 소설 사이의 유사점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독자는 자기만의 책의 우주, 그 지도를 조금씩 완성하게 됩니다.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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