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좋을 그림 - 여행을 기억하는 만년필 스케치
정은우 글.그림 / 북로그컴퍼니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지만 생각해보라. 언제든 바뀌거나 또 사라질 수 있는게 소속감이다. 나이 오십 전에 모두 퇴사한다고 가장했을 때 우리는 소속이 없는 상태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속이나 지위가 없어졌을 때 `나`도 없어졌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우리가 혼자 잘할 수 있는 것, 스스로 재미있게 즐기며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5쪽)

하지만 우리의 행복과 무관심에 누군가는 마음 아플 것이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우리로 인해 아파한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안 했다고 말하는 게 과연 떳떳한 일일까? (53쪽)

여행지에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든 내가 살던 곳과 다른 것들뿐이다. 그 여행이 언젠간 끝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정신이 각성되지 않을 도리도 없다. 그러다 보면 거대한 성채 못지않게 작은 들꽃, 수상한 저녁노을, 길가의 돌멩이, 산책하는 여자와 개, 그 모든 것이 돌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86쪽)

많은 자가용 통근자가 아침마다 졸린 눈을 부비며 도심으로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고, 자기 몸무게의 스무 배가 넘는 쇠덩이를 힘겹게 끌고 가기 위해 인생의 주요한 시간과 번 돈의 대부분을 지출하며 알 수 없는 슬픔에 빠진다. 자동차는 결코 이동수단의 승리가자 아니었다. (97쪽)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생각에도 한계가 없었겠지. 때론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외려 우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104쪽)

우리가 정작 걱정해야 하는 것은 윌 곁의 세계문화유산에는 무관심하면서 유럽의 고풍스러운 도시나 성당 앞에 서면 그게 뭐가 됐건 일단 감성을 과소비하고 보는 문화사대주이다. 그게 부끄러운 일인 줄도 모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111쪽)

오랜 시간이 흘러도 쉬이 없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 그것을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다. 물론 어렵겠지만. (134쪽)

도시가 일종의 유기체인 이유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걸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삶은 다르다. 도시의 모습에서 그곳 시민들의 철학을 읽어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144쪽)

그럼에도 지구 곳곳에서 아직도 도시의 상징으로 타워를 짓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 도시민 누구에게나 어디에서 바라보건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뭔가를 필요하다는 암묵적 동의 때문 아닐까. 신경숙의 말마따나 그 자리에 항상 같은 모습으로 곁에 있는 무언가는 인간에게 위로를 준다. 그게 사람인지 타워인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 한결같은 빛을 뿜어내며 곁에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무엇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인간은 타워를 지어왔고 지금도 짓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을 것이다. (189쪽)

나는 문득 이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한때임을 깨달았다. 귀한 줄 모르고 쉽게 흘러보낸 시간, 사람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려왔다. (24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