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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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그는 만으로 일흔두 살이 되었으나 진 루이즈는 늘 아버지가 50대 중반 어디쯤을 맴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보다 더 젊었던 적은 떠오르지 않았고, 더 늙어 가는 것 같지도 않았다. (29쪽)

알렉산드라는 그게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오히려 몹시 화났다. 요즈음 젊은이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건방 떠는 이 태도, 인생에서 가장 중차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바당들이기를 거부하는 이 태도에는 짜증과 동시에 화가 났다. (57쪽)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그걸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뉴욕에서 살고 있으면 흔히 뉴욕은 그 세계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다시 말해서, 집에 오면 그 세계에 돌아오는 기분이고, 메이콤을 떠나면 그 세계를 떠나는 것 같아. 웃기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런데 더 웃기는 건, 메이콤에서 살면 완전히 돌아 버릴 것 같다는 거야.]
헨리가 말했다. [돌지 않을 거야. 답을 달라고 조를 생각 없어 - 가만 있어 봐 - 하지만 한 가지만은 결정을 내려야 해. 앞으로도 여기가 변하는 걸 보게 될 거야. 우리 생애에 메이콤이 완전히 변하는 걸 보게 되겠지. 그런데 너의 문제는 말이야. 먹은 과자가 손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이지. 시간을 멈추고 싶지만 못 하는 거고 조만간 메이콤인지 뉴욕인지 결정해야 할 거야.] (110쪽)

진 루이즈는 남자들의 일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었지만, 입에서 오물을 토해 내는 사람과 아버지가 한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참석했다고 오물이 조금이라도 깨끗해지나? 아니다. 그것은 용납을 의미했다. 속이 메스꺼웠다. 위장이 멈추고, 몸이 떨려 왔다. (157-158쪽)

청렴, 유머, 참을성. 이 세 개의 단어는 애티커스 핀치를 대변해 주었다. 그를 대변해 주는 구절도 있었다. 메이콤 군과 그 근방에서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애티커스 핀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돌아오는 대답, [나의 제일 좋은 친구입니다]가 그것이다. 애티커스 핀치의 삶의 비결은 너무 간단해서 오히려 심히 복잡해 보이기까지 했다. 규범을 정하고 그에 따라 살고자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애티커스는 호들갑 떨지 않고, 허세 부리지 않고, 인생의 의미 같은 것도 따지지 않고 그저 성실히 자신의 인생을 살았다. 그에게 규범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신약 성서의 윤리였으며, 이로써 돌아오는 보상은 그를 아는 사람들의 존경과 헌신이었다. 적들조차 애티커스를 좋아했는데, 이는 그가 그들을 적으로 인저앟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티커스는 결코 부자가 아니었지만, 그의 자식들이 아는 한 가장 큰 부자였다. (163-164쪽)

진 루이즈는 실제로 독립했지만, 뒤에서 받쳐 주고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적 힘이 되어 준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이를 의심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아빠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입장을 굽히지 않고 완강히 버틸 때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버지 때문임을 깨닫지 못했다. 품위 있는 인격과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게 한 그 모든 것은 아버지가 심어 놓은 것임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는 가지가 아버지를 숭배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168쪽)

그녀는 어제의 일에 조심스레 손을 댔다가 도로 움츠렸다. 나는 지금 그것에 대해 생각할 용기가 없다. 그게 충분히 멀리 떨어지기 전에는, 이상한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몸의 고통과 같은 게 틀림없어.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면 몸음 스스로 방어 기제를 갖추어 의식을 잃어 버리고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들 하니까, 하나님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시련을 주신다. (201쪽)

그들은 어째서 소름이 돋지 않지? 그들은 어떻게 예배 시간에 듣는 모든 것을 독실하게 믿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말들을 하고 그런 말들에 귀를 기울이는데 토나오지도 않나? 나는 내가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나는 다른 무엇이지만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껏 옳거나 그르다고 생각해 온 모든 것은 그들이 내게 가르켜 준 것인데. 똑같은 사람들, 바로 이 사람들. 그러니까 내가 문제인 거야, 그들이 아니야,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234-235쪽)

그런 생활을 해보지 않았으면 몰라. [이것은 진실이야]라고 말한 그 누군가를 믿었다가 진실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면, 우리는 실망하고 그런 식으로 또 곤란을 겪지 않으려고 반드시 조심하게 되지. 그러나 그 눈군가가 진실에 따라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가 살아온 인생의 가치를 우리가 믿어 왓다면, 그런 그가 우리를 실망시킨다면, 그것은 단순히 우리를 경계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를 파산시키지. 그래서 내가 거의 제정신이 아닌가 봐......(251-252쪽)

[이 점을 기억해.] 그가 말했다. [나는 뭐든 내가 가진 것을 얻어내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했어. 나, 광장 건너편 그 가게에서 일했잖아. 거의 항상 피곤에 절어서 수업을 따라가는 데 급급했어. 여름에는 집에 내려가 엄마가게에서 일했고, 거기서 일하지 않을 때는 집에서 열심히 공부했어. 진 루이즈,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너나 젬이 당연하게 누려 오던 것들을 위해 돈을 차곡차곡 모아야 했어. 네가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어떤 것들은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내가 의탁할 대상은 오직 나 자신밖에 없었어.][누구나 다 의탁할 대상은 자기 자신밖에 없어, 행크.][아냐, 그렇지 않아, 여기는 달라.][무슨 말이야?][너는 할 수 있어도 나는 그냥,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거야.][어째서 내가 그런 특권을 가진 인물이지?][너는 핀치 집안사람이니까.][네 말대로 나는 핀치 집안사람이야.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그래서 너는 마음 내키면 멜빵바지를 입고 셔츠 자락을 내놓고 맨발로 읍내를 활보할 수 있는거야. 메이콤 사람들은 핀치 집안 피가 어디 가나, 저아이는 원래 저래,라고 말하지. 그리고는 씩 웃고 자기들 할일이나 하는거야.](326-327쪽)

[하지만 헨리 클린턴이 규범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 봐, 그러면 메이콤 사람들은 클린턴 집안 피가 어디 가나, 라고 하지 않고 쓰레기의 피는 어쩔 수 없어, 라고 해.][행크. 그건 사실이 아니야, 너도 알잖아. 그건 부당해, 옹졸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실이 아니야!][진 루이즈, 그건 사실이야.]헨리가 다정하게 말했다. [네가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보지도 않아서 그렇지.][행크, 너 무슨 콤플렉스 있구나.][그런 건 전혀 없어. 그냥 나믄 메이콤을 잘 알 뿐이야. 그 점에 대해 전혀 예민하지도 않아, 하지만, 아 젠장, 나는 확실히 알고 있어. 메이콤에는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고 내게 속삭이지, 만약 내가--] (327쪽)

핀치 박사는 엄지와 다른 두 손가락으로 담배를 잡았다. 그는 생각에 잠겨 담배를 보았다. [너는 색맹이야, 진 루이즈.] 그가 말했다. [너는 언제나 그랬고, 또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거야. 네가 보는 사람들 간의 차이는 오직 생김새나 지력, 인격 같은 것들에 있지. 너는 한 번도 사람을 인종으로 보도록 부추김을 당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인종 문제가 현재 가장 논란이 많은 시급한 사안인데도 아직까지 인종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있어. 네게는 사람만 보이는 것이지.] (379-3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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