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과거의 원인에 주목해서 상황을 설명하려 든다면, 모든 이야기는 저절로 `결정론`에 도달하게 되네. 즉 우리의 현재, 그리고 미래는 전부 과거 사건에 의해 결저오디고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지, 아닌가? (33쪽)

"어떠한 경험도 그 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즉 트라우마-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37쪽)

청 년
감정에 지배받지 않고, 과거에도 지배받지 않는다?

철학자
가령 어린 시절에 부모가 이혼한 사람이 있다고 하세. 이는 사계절 내내 18도를 유지하는 우물물과 같이 객관적인 사실이지? 하지만 그것을 차갑게 느끼는냐 뜨겁게 느끼느냐는 `지금`의, 그리고 주관적인 사실이라네. 과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상태가 정해지는 거지.

청 년
문제는 `무엇이 있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석하느냐`라고요?

철학자
그렇지. (45쪽)

철학자
내가 내 키에 대해 느낀 열등감은 어디까지나 타인과의 비교-다시 말해 인간관계-를 통해 만들어낸 주관적인 감정이었네. 만약 비교해야 할 타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내 키가 작다는 생각 때위는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자네도 지금 이런저런 열등감에 괴로워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객관적인 `열등성`이 아니라 주관적인 `열등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키에 관한 문제조차 주관이 개입하지.

청 년
요컨대, 우리를 괴롭히는 열등감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이라는 건가요?

철학자
그렇지. (88쪽)

청 년
그러면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모든 인간은 대등하다, 같은 길을 걷는다. 그래서 거기에는 `차이`가 있죠? 앞서 걷는 사람은 뛰어나고, 뒤에서 쫓아가는 사람은 뒤떨어지는, 결국은 우열의 문제에 다다르지 않을까요?

철학자
그렇지 않네. 앞서 걸으나 뒤에서 걸으나 관계없어. 쉽게 말해 우리는 세로축이 존재하지 않는 평평한 공간을 걷고 있네. 우리가 걷는 것은 누군가와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지금의 나보다 앞서 나가려는 것이야말로 가치가 있다네. (107쪽)

철학자
분노를 제어하는 것이 `참든다`는 것을 뜻하나? 그러지 말고 분노라는 감정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배우게. 분노란 어차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며 도구니까.

청 년
음, 어렵군요.

철학자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분노란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고 아울러 화내지 않는 커뮤니케이션도 가능하다는 사실이네. 우리는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나를 받아들이게 할 수 있네. 경험을 통해 그것을 알게 되면 자연히 분노의 감정도 나오지 않을 걸세. (121쪽)

철학자
공부하는 것은 아이의 과제일세. 거기에 대고 부모가 "공부해"라고 명령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에, 비유하자면 흙투성이 발을 들이미는 행위일세. 그러면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지. 우리는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네.

청 년
분리해서, 어떻게 한다는 거죠?

철학자
타인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그것뿐일세. (160쪽)

자신의 삶에 대해 자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믿는 최선의 길을 선택하는 것`, 그뿐이야. 그 선택에 타인이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 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이고, 자네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일세. (168쪽)

공동체, 즉 남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 타인으로부터 `좋다`는 평가를 받을 필요 없이 자신의 주관에 다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러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네. 지금까지 논의했던 `공동체 감각`이나 `용기 부여`에 관한 말도 전부 이와 연결되네. (236쪽)

자기수용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면, 배신이 타인의 과제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고, 타인을 신뢰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을 걸세. (269쪽)

인간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에만 자신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다. 단 그때의 공헌은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감각, 즉 `공헌감`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철학자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즉 행복이란 `공헌감`이라고. (291쪽)

그리고 찰나인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춤추고, 진지하게 사는 걸세. 과거도 보지 말고, 미래도 보지 말고, 완결된 찰나를 춤추듯 사는 거야.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고 목적지도 필요 없네. 춤추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하게 될 테니까. (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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