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아버지가 루마의 일 얘기를 다시 꺼냈다. "일은 중요하다, 루마야. 경제적인 안정도 주지만 정신적인 안정도 있다. 내 평생, 열여섯 살 때부터 난 쭉 일을 해왔다." (50쪽)
하지만 죽음 또한 경외감을 일으키는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알고 있었다. 사람이 몇 년이고 살다가, 생각하고 숨 쉬고 먹으며, 수백 가지 걱정과 감정과 생각을 지니고, 이 세상에서 조그만 공간을 차지하고 살다가 한순간 존재를 그치고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60쪽)
그는 다시 가족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복잡함과 불화, 서로에게 가하는 요구, 그 에너지 속에 있고 싶지 않았다. 딸 인생의 주변에서, 그 애 결혼 생활의 그늘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잡동사니로 가득 찰 커다란 집에서 사는 것도 싫었다. 그동안 소유했던 모든 것. 책과 서류와 옷가지와 물건을 최근에 정리하지 않았던가. 인생은 어느 시점까지 규모가 불어난다. 그는 이제 그 시점을 넘겼다. (68쪽)
"야, 난 그저 도우려는 것뿐이야." "누나더러 누가 도와달라고 했어? 누나가 뭘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내 인생은 이대로 너무 좋다는 거 혹시 생각이나 해봤어?" (170쪽)
그녀는 더 이상 자기를 신뢰하지 않을 남편과 이제 막 울기 시작한 아이와 그날 아침 쪼개져 열려버린 자기 가족을 생각했다. 다른 가족들과 다르지 않은. 똑같이 두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210쪽)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보다 끔찍한 건 없었어. 그 이후에 오는 허탈감은 그 당시 우리를 짓누르던 무게에 비하면 견디기 쉬운 거였어. (324쪽)
그들이 아직 헤어질 수 없는 건 서로에게 분명했다. 몇십 년 동안 보지도, 생각지도, 찾지도 않았지만 뭔가 귀중한게 거기 있음을 느꼈다. 이 새롭게 생긴 감정이 그대로 방치되어서는 안 되고, 분명 정성을 다해 돌보아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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